페미니즘 브랜딩 속의 '여성억압들'

최근 주변의 페미니스트들과 ‘페미니즘 브랜딩’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페미니즘 브랜딩이란 작년 한 패션 브랜드에서 ‘We should be a feminist’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선보였던 것처럼 자신들이 생산해내는 콘텐츠나 상품에 페미니즘적 요소를 가미하는 걸 말한다. 

미국에서는 최근 유명 팝 스타들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며 자신의 경험을 페미니즘적으로 해석한 노래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면 얻는 이득보다 위험이 크지만, 당당히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고 페미니즘 요소를 덧대어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으니 여성인권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의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모델은 키 180 센티미터에 몸무게가 50킬로그램도 되지 않는다. 이들은 이러한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요당하며, 각종 식이장애를 겪기도 한다. 모델에게 ‘이상적 몸매'를 유지하라고 강요하면서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티셔츠 한 장 제작했다고 패션업계가 페미니즘적 사고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 진주여성민우회 광고 모니터링 보고회(사진제공 : 진주여성민우회)

이 같은 문제는 지난 10월 31일 진주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여성혐오 광고 모니터링 보고회에서 피임약 CF ‘마이보라’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여실히 느꼈다. 무수한 여성혐오 광고를 접하다가 광고 모델이 ‘내 몸은 내가 선택해!’라며 여성의 몸에 대한 주체성을 강조하는 피임약 CF를 보니 반가웠다. 이 때문에 모니터링 보고회에서 이 광고는 주체적이라고 말했다가 보고회에 참여한 패널, 참석자 분들께 숱한 지적을 받았다. 

지적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많은 남성들이 피임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남성이 소거된 채 여성의 주체성만을 강조하는 광고는 현실의 한계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남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피임 도구인 콘돔의 광고는 대체로 피임 효과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고 발기 지속 등과 같은 성적 측면만 강조된다. 그러나 피임약의 경우 ‘여성의 주체성’만을 강조해왔다” “피임약 광고들에서 흔히 접하는 여성의 주체성은 사실 피임을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기는 것에 그친다”

깊이 공감 되었다. 현재 한국에서도 페미니즘 브랜딩이 제법 활성화 되고 있다. 진주여성민우회 모니터링단이 모니터링 한 광고들 가운데 일부에서도 페미니즘적인 요소들을 끼워 넣으려 한 시도가 엿보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마이보라’ 광고처럼 맥락을 제대로 읽어보면 여성에게 피억압적인 요소가 가미된 광고가 적지 않았다. 

사회 곳곳에서 페미니즘 브랜딩이 이뤄지는 것은 일견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지만, 페미니즘 브랜딩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이번 모니터링 보고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페미니즘 브랜딩이 진정 페미니즘적 관점을 관철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페미니즘 브랜딩’이라는 말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고, 여성인권 향상에도 기여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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