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복원이 사랑에 앞선다?"

빛나는 조연들이 그의 옆에서 동분서주하지만 영화 <침묵>은 분명 최민식을 위한 최민식의 영화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두고 ‘법정영화’라고 했는데, 법정영화의 성격이 있지만 훨씬 ‘멜로드라마’로 기운다. 회장님으로 불리며 아내가 없는 중년 남자가 사랑하는 약혼녀와 골치 아픈 딸 사이에서 방향을 정한다.

최민식은 그 남자, ‘태산그룹’의 회장 ‘임태산’이다. 재벌그룹의 회장이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라니. 흔히 나오는 정경유착이나 물신자본주의의 표상이 아니라 사랑이라면, 대체 그룹의 회장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돈이 많고, 그 돈으로 사랑을 바라는 대로 이끄는 데는 유리하겠지만, 사랑의 속성이야 별반 다를 것이 있을까.

임태산의 사랑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닥친다. 약혼녀인 유나(이하늬)가 살해당하고 딸인 임미라(이수경)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유나는 이미 죽었으니 슬픔을 가누며 마음을 정리하면 될 것이다. 문제는 딸이 용의자로 법정에 섰으니 아버지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것.

▲ 영화 침묵의 한 장면

유나가 죽기 전에 임태산의 딸은 골칫덩이였다. 게다가 유나를 새엄마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영화는 유나와 미라, 그리고 임태산과의 관계에서 복선을 깔며 시작한다. 나중에 임태산의 판단과 결정이 어떻게 굳어 가는지 반전 형태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임태산은 물신자본의 전형도, 그렇다고 딸에게 아버지의 지극한 정 따위도 드러내지 않는다. 돈이 운신의 폭을 자유롭게 하지만, 그 돈으로 허세를 부리지도 않는다.

최민식은 이런 임태산의 캐릭터를 정교하게 창조한다. 18년 만에 조우한 정지우 감독과 충분한 의견이 오갔을 터이지만 최민식의 공이 크다. 그러니까 아주 속물도 아니고 악인도 아닌, 사회적인 통념으로 성공한 중년남자가 사랑(제도)과 법(질서)을 대하는 성격을 제대로 분석했다.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신중함과, 어떤 결정 앞에서 보이는 단호함은 이상적인 남성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왜 최민식이 유나에게서 미라에게로 사랑을 전이시키는가에 카메라를 집중한다. 그러나 설득력 있는 정황보다는 ‘아버지’라는 제도적인 신분과 심리에 기운다. 왜 돈의 가치나 기업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에 앞서 아버지로 나서고자 하는가. 그래서 영화 <침묵>은 거칠게 말하면 아버지의 사랑이라 할 수 있으나, 거기에 어떤 시대적인 징후나 반영을 읽기는 어렵다. 결국 가족은 복원해야 된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또한 결국 유나는 한 가족의 복원을 위한 희생양과 무엇이 다른가.

임태산은 물론 ‘돈이 중요하다’는 식의 대사를 많이 한다. 조심스럽게 말해보자면,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시작한 정지우 감독이 그동안 영화를 만들기 위해 분투한 과정에서 얻은 경험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영화 <침묵>은 한편으로, 돈이 있어야만 애비노릇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자본의 그물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자식이 있는 한 아버지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부러움과 씁쓸함이 교차했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