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적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아버지는 사망하고 그의 아들은 크게 다쳤다. 아들은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런데 환자의 얼굴을 본 의사는 그 사람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친구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여러 가지 답을 생각해 봤지만, 그 의사가 아이의 어머니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친구로부터 ‘정답’을 듣고 난 뒤 당혹스러웠다. 의사는 당연히 남자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여성을, 이성애 중심적으로 생각해 성소수자를 배제한 셈이었다. 그간 나는 여러 활동을 통해 비교적 성평등한 사고를 한다고 생각해서 충격은 더 컸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이런 편견을 가지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존의 미디어가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여의사’는 있고 ‘남의사’는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의사’를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병을 고치는 걸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여의사’를 찾아보면 ‘여자 의사’라는 뜻이 나온다. 그러나 ‘남의사’라는 표제어는 찾을 수 없다. 여성 의사는 늘어나고 있고 그 수가 적지 않지만, 의사는 여전히 ‘남성의 직업'이다. 사람들이 여성 의사를 지칭할 때 ‘여의사’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남성 의사를 지칭할 때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의사’는 곧 ‘남의사’다.

이외에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남중생’, ‘남고생’, ‘남경’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발행하는 국립국어원은 "통합과 소통에 이바지하는 쉽고 바른 국어를 만들어 나간다"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통합과 소통에 여성은 없다.

▲ 노트와 펜 (사진 = pixabay)

된장녀, 김치녀, 신상녀, 개똥녀. 우리 사회에는 온갖 ‘녀’ 들이 넘쳐난다. 이런 말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채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서 유통하는 것은 언론이다. ‘나영이 사건’, ‘가방녀’, ‘트렁크녀’, ‘캣맘 사건’, 심지어는 ‘대장내시경녀’까지. 일련의 ‘녀’ 들은 모두 범죄의 피해자다. 그러나 각종 매체에서는 가해자인 남성은 드러내지 않고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것만을 선정적으로 부각하며 ‘XX녀’로 이름 붙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름으로 피해자를 부른다.

기존의 글은 이렇게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며 사람들에게 이를 더욱 견고하게 내면화시킨다. 여기에 반기를 드는 것이 여성주의적 글쓰기다. 2017년 9월 진주여성민우회에서 주최한 '딸들을 위한 페미니즘: 여성주의적 글쓰기' 강좌를 통해 여성주의적 관점의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었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여성주의적 글쓰기가 고정관념의 벽을 부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하며, 그 언어는 여성주의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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