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 어화등등 사랑 불 밝혀라'

 

 

▲ 10월 1일부터 15일까지 경남 진주 남강에서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

 

‘진주에 가면’ 막차를 타고 싶다는 이광석 시인의 시처럼 ‘아침이슬보다 더 고운 진주여행’은 지금 절정이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 어화 등등(燈燈) 불 밝혀 온통 붉다.

 

▲ 진주남강유등축제장 내 음식점 부스는 그나마 사람들로 북적인다.

 

10월 10일 진주 시민의 날 저녁에 진주성 건너편 망경동 주택가에 차를 세우고 남강으로 걸었다. 촉석루 정면을 바라보는 중앙광장에 이르자 곳곳에는 노랫가락과 함께 정다운 이야기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난다. 간이좌탁을 펼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지만 붉게 물든 강은 훌륭한 안줏거리다.

 

▲ 진주 남강에 배를 타고 유등을 구경하는 관람객들

 

해학과 풍자의 거리라고 적힌 대숲은 이미 지역 오광대 등이 여기저기 대나무와 어우러져 반긴다. 대나무들이 뿜어내는 청량감에 더해 젊은 청춘들이 즐겁게 사랑을 꽃피운다.

 

▲ 진주 천수교 아래 남강을 가로지른 부교

 

본격적으로 유등축제장으로 들어갔다. 진주 유등축제의 매력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분이면 충분하다. 단 1분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야를 꽉 채우는 풍광은 말이 필요 없다. 깊은 숲에 들어온 듯 상쾌하다. 첫 연인을 다시 만난 듯 설렌다. 고즈넉한 남강에 오색물감을 풀어놓았다.

 

▲ 진주남강유등축제 소망등 터널

 

대자연이 그려낸 가을 명화가 남강에 펼쳐졌다. 신선한 가을 강바람이 머리 곁을 스치며 귓가에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남강을 가로지르는 부교를 건넜다. 어둠이 짙어지면 불빛은 더 밝아진다. 유등(流燈) 불빛은 어둠을 몰아내지 않는다. 더욱 어둠과 함께 빛난다.

 

 

 

▲ 진주 음악분수대 광장에 설치된 에펩탑 등. 주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등과 미끄럼틀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로 북적인다.

 

진주성을 에둘러 싼 남강을 따라 걷는 기분은 유쾌하다. 가을밤 달빛이 은은하게 비출 남강에는 유등이 덩실덩실 불 밝힌다.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진주성에서 바라보는 남강은 진하게 붉게 물들었다.

 

▲ 진주 천수교 아래 남강을 가로지른 부교

 

공북문 뒷편 넓디넓은 잔디에 펼쳐놓은 등불은 잠시 나를 과거로 이끈다. 진주성과 남강을 묵묵히 지켜온 선조들의 정신과 역사를 한 번쯤 떠올려 보기를 권한다. 진주성에서 바라보는 남강을 화려하게 밝힌 유등이 새로운 감동으로 찾아든다.

 

▲ 7만 민관군이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국한 당시를 재현한 계사순의등

 

“진주에서 남강에 띄우는 유등놀이는 우리 겨레의 최대 수난기였던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에 기원하고 있다”고 한다. 임진년(1592) 10월,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3,800여 명의 수성군(守成軍)과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여 명의 왜군이 벌인 제1차 진주성 전투는 무려 10일간 이어졌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진주성 수성군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남강에 유등(流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 전술로, 한편으로는 성 밖의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사용했다.

 

▲ 진주성과 남강을 묵묵히 지켜온 선조들의 정신과 역사를 한 번쯤 떠올려 보기를 권한다. 진주성에서 바라보는 남강을 화려하게 밝힌 유등이 새로운 감동으로 찾아든다.

 

계사년(1593)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오로지 구국(救國)의 일념으로 왜군과 항전한 7만 명의 민∙관∙군이 순국하면서 진주성(晋州城)은 임진왜란 국난극복의 현장이 된다. 후일, 진주사람들은 임진∙계사년(壬辰癸巳年) 국난극복에 몸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남강에 유등(流燈)을 띄웠다. 이 전통은 지역축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오다 2000년부터 특화해 진주남강유등축제(晋州南江流燈祝祭)로 자리 잡았다.

 

 

▲ 진주성안은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한 산책길이다. 남강 쪽과 달리 시내를 향한 북쪽은 한적하고 아름다운 숲길이라 사색하며 자분자분 걷기에 제격이다.

 

아쉽다. 7만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외적에 맞섰던 공동체 정신이 남강유등축제 유료화로 의미가 빛바랬다. 지금 유료 관중이 얼마인지, 지난 해보다 얼마나 더 늘었는지를 따지는 모양새는 보기 좋지 않다. 자치단체가 단순히 관광객 수에 따른 경제적 효과만 따지면 진주시민은 한 발 물러선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

 

▲ 진주성 내 설치된 세시풍속 등

 

진주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2015년 유료화 이전 사람의 물결 속에 느꼈던 체온이 그립다. 내년에는 사람과 자연, 역사가 어우러져 마음마저 더욱 풍성해지는 축제를 만나고 싶다.

 

▲ 진주성 촉석문 앞 풍등

 

아쉬움을 달래고 진주성을 걷는다. 성 안은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한 산책길이다. 남강 쪽과 달리 시내를 향한 북쪽은 한적하고 아름다운 숲길이라 사색하며 자분자분 걷기에 제격이다. 성곽 근처 벤치에 앉아 가져간 캔커피를 한 잔 마셨다. 삶에 지친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문득 각박한 현실에서 빠져나와 별천지에 온 기분이다.

 

‘진주에 가면 막차를 놓치고 싶다 / 남강다리 반쯤 걸어 나왔다 다시 돌아서서

촉석루 강변 통술거리로 발 길을 내민다 / 누구 기다려 줄 벗도 없는데···

말술 두렵지 않던 50대 / 술은 까마득한 여인처럼 내 고독을 키웠다

달빛도 취해 비틀거리는 남강물에 / 학춤을 추던 화인 월초

유등꽃 사이로 잔을 흔든다 / 진주의 밤은 이제 시작인데

안주 하나 더 시켜놓고 자리비운 / 촉석루 대밭 바람 소리

마산행 막버스를 세운다. -이광석 시인의 <진주에 가면>

 

▲ 진주교에 설치된 일명 앵두등 터널

 

막차 걱정은 잊어라. 지금 남강에는 가을이 진하게 번지고 있다. 가을의 절정을 만난 기분이다. 다음 기회는 없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15일까지다. 훅 가기 전에 찾아 가시라. 세상 붉음이 여기에 다 있다. 유등축제,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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