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대첩광장 지하주차장 조성 신중해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진주성은 사실 진주성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 때 어떤 목적으로 복원을 급히 시작하고 전두환 정권 때 서둘러 마무리한 게 오늘의 진주성이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성이 아니라 사진 찍기 좋은 그냥 공원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을 들은 지는 오래됐고 현재의 진주성 촉석문이 임진왜란 당시에도 그 자리에 있었냐는 질문에는 웬만한 역사지식이 없고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워 낯을 붉히게 된다. 여기에다 치열한 공성전이 전개되고 김시민 장군이 왜군을 막느라 민.관.군과 함께 수염을 휘날렸던 장소가 실은 진주시내 한복판인 중앙사거리 부근이라는 주장을 접하면 도대체 지금 진주성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저절로 든다.

▲ 박흥준 상임고문

성은 보통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는데 지금의 진주성은 내성이다. 내성은 임란 이후 만들어졌다. 따라서 진주대첩 때는 내성도 없었고 촉석문도 없었다. 내성 바깥의 외성(당시의 진주성)은 시외터미널 부근 또는 진주교가 연결되는 지점, 그리고 더욱 가깝게는 진주대첩 기념광장의 지하주차장 예정지 등을 지났다는 설이 있다. 외성 바깥에는 대사지(연못)가 있어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못) 구실을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의 집터를 만들려고 메워졌고 일제가 내성 일부와 외성을 허물어 여기에서 나온 성돌과 토사를 대사지 매립에 사용했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분노하게 된다. 지금 진주교육지원청과 진주경찰서, 진주우체국 등이 들어서 있는 곳이 바로 대사지였다.

외성은 그렇다 치고 내성은 어떨까.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내성의 각종 시설물들도 임란 당시의 것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흔적은 남아 있어야 하는데 군사와 행정의 중심이었던 경상우병영의 경우 병마절도사의 집무실인 운주헌과 그 부속건물인 관덕당, 공진당 등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촉석루 역시 지난 60년대에 재건하면서 원형을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국보의 지위를 잃은 상태이다. 영남포정사 문루(망미루)와 북장대 정도가 원형이 비교적 보존돼 있는 시설로 꼽힌다.

진주성이 엉터리로 복원됐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학계의 정설이다. 각종 시설물이 있던 곳이 잔디밭으로 바뀌어 진주성이라는 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 7만 민관군의 서사가 자랑스러운 도시, 진주에 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의 근거이자 진주를 대표하는 유적인 진주성이 이처럼 엉터리였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해야 하나.

요즘 진주대첩 광장의 지하주차장 설치 문제로 지역사회가 연일 시끄럽다. 진주시의 계획은 얼마 전 보상이 끝나고 기존 건물이 모두 철거된 촉석문 앞 2만5천 제곱미터의 너른 땅에 ‘비움’을 개념(컨셉)으로 하는 광장을 만들고 지하에 주차장을 설치해 중앙지하상가와 연결함으로써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 침체된 도심의 상권도 되살리는 것으로 요약된다.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광장 지하에서 유구와 유물이 나올 가능성과 언젠가는 시도해야 할 외성 복원 문제 등을 들어 지하주차장 조성에 반대하고 있다. 형평운동기념탑 존치 문제도 뜨거운 논란의 중심이다.

얼핏 보면 지하주차장 설치 문제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공사과정에서 외성의 유물과 유구가 파괴되고 그 결과 외성의 위치가 왜곡돼 훗날의 연구와 사적의 원형복원, 후세 교육 등에서 발목을 잡는다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진주성을 엉터리로 복원한 것 이상으로 추후 진주대첩 광장에 비난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진주대첩 광장을 둘러싼 지금의 논란은 어쩌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일 지도 모른다. 개념 설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지금이라도 되돌아 볼 수 있고, 진주성(외성) 복원 문제와 연계해 큰 틀에서 사업을 다시 설계할 수 있어서 그렇다. 시간은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을 기다렸는데 앞으로 몇 년 더 기다리는 게 문제일까. 오류의 가능성을 없애고 역사를 바로잡는 데 심사숙고는 당연한 절차이다. 그게 더 중요하다.

진주시는 신중해야 한다. 아울러 학계와 시민단체의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자문기구 하나 달랑 만들어 의견을 듣는 모양새만 내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무엇보다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실에서 서두르다 침몰을 앞당겼다. 이런 사례는 역사에서 부지기수로 발견된다. 역사에 접근할 때는 무엇보다 조신해야 한다는 게 지금의 진주성이 우리 모두에게 일러주는 가르침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서두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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