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축제 유료화, 이젠 그만 둬야"

이 땅에 축제가 없는 곳은 없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과 10월 상달을 전후해 크고 작은 축제가 고을 곳곳에서 치러진다. 오래 전부터 그랬다.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정월 대보름 동제와 모내기를 끝내고 한 숨 돌리는 8월 초·중순의 마을잔치 등은 지난 세월 농경사회의 대동축제였다. 칼국수가 한 그릇씩 돌려지는 점심 어름이면 흥겨운 풍물놀이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막걸리 한 잔에 모두들 얼굴이 붉어져 어깨를 들썩인다. ‘가무음곡’이라 했으니 여기에 노래가 빠질까. 무반주로 한 목청씩 빼다 보면 어느덧 해가 저문다. 자식이나 배우자의 손에 이끌려 아쉬움을 남기고 집으로 하나 둘 퇴장하면서 축제는 마무리된다.

비용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칼국수는 십시일반 끓여내면 되고 형편 닿는 대로 돈을 갹출해 돼지를 잡았다. 동네 양조장에서는 막걸리를 아끼지 않고 내놓았다. 파전은 아낙들이 재능기부로 구워냈다. 저렴하게 축제를 즐긴 것이다. 요즘 용어로 가성비가 높았다고나 할까.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 그리고 진주의 유등축제... 시대와 모양이 약간씩 다를지언정 제 지내고 춤추고 노는 것은 같았다. 굳이 위지동이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랜 세월 우리는 노는 데 익숙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 박흥준 <단디뉴스> 상임고문

진주 남강은 축제를 즐기는 데 최적의 장소이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적당한 너비에 진주성이 어우러져 천혜의 경관을 이루고 있다. 형형색색의 유등이 잔잔한 수면에 동양화처럼 떠 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강변에 살랑이며 살갗을 간질인다. 짙푸른 밤하늘 별빛이 추억을 머금는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좋은 사람들과 마주앉는다. 파전 한 장과 동동주 한 동이에 흥취가 살아나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다.

유등축제의 유료화가 뜬금없는 건 시민들이 이미 십시일반을 충분히 했기 때문이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형편이 닿는 대로 비용을 치렀다. 담뱃세이든 부가세이든 갑근세이든,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이 땅에 없다. 심지어는 노숙자조차도 천 원짜리 컵라면 한 개 사서 말아먹으면 세금이 저절로 납부된다. 그런데도 별도의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축제장에 들어갈 수 없다니... 돈을 더 내지 않으면 진주시민은 주말축제를 즐길 수 없고 외지인들 역시 국세이든 지방세이든, 직접세이든 간접세이든 낼 건 다 냈는데 멀리 와서 손님대접을 받기는커녕 추가납부를 강요당하고 있다.

인류가 만들어 낸 훌륭한 문화유산, 축제는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내일의 건강한 노동을 예비한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자원을 재분배한다. 팍팍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살아볼 만 하다는 느낌을 선사한다. 서로 이름은 모르지만 이웃임을 확인하고 친밀감을 더한다. 사람구경은 덤이다. 돈을 강제로 더 내기 전까지만 그렇다.

진주시는 같은 실수를 지금 3년째 하고 있다. 유료축제는 축제가 아니다. 그냥 장사 행위일 뿐이지.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게 분명한데도 유료를 고집하는 건 바보나 할 짓 아닌가. 졸지에 축제의 주인자리를 잃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시민들의 원성이 올해도 하늘을 찌르고 분노가 땅을 뒤덮고 있다. 남강 주변 업소들과 풍물시장에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들어온 상인들은 한숨을 일제히 내쉰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차고도 넘친다.

입장료에 머뭇거리는 시민들은 울분을 삭인다. 출렁다리(부교) 이용료 천 원이라면 줄 서서, 웃으며, 흔쾌히 낼지언정 입장료는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아니다. 초등학교 동창회 행사에 가수 현숙이나 송대관이 왔다고 입장료 낸 동문에게만 교문 통과를 허락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민들은 지금 그나마 점잖은 편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짐한다. “정말 이런 식이라면 진주시는 각오하라. 선거혁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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