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도시 진주라는 이름도 이제는 허명이 된 것 같아"

'진주성 촉석루 특별전'이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2층에서 지난 11일부터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평생 촉석루만 그린 효석 조영제 화백의 작품을 중심으로 내고 박생광, 죽파 정중유 등이 그린 100여점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류범형 씨(78)가 지난 40여년 동안 수집한 그림을 공개하며 이루어졌다. ‘단디뉴스’는 27일 전시장을 방문해 작품을 둘러보고 류범형 씨를 인터뷰했다.

Q. 진주성 촉석루만을 주제로 전시회가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어떤 취지로 이 같은 전시회를 열게 되셨습니까?

A, 촉석루는 전국 3대 누각 중 하나입니다. 3대 누각에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평양 부벽루가 있는데, 평양은 갈 수가 없고 영남루는 촉석루를 본떠 만든 것입니다. 촉석루의 의미가 크다고 하겠죠. 저는 진주에서 나고 자라 진주에 대한 애정이 많습니다. 가구점을 운영하며 평생 문화예술사업에 관심이 가졌습니다. 진주의 랜드마크가 촉석루 아닙니까. 촉석루와 촉석루의 역사를 알리는 게 일차적인 목적입니다. 한편으로는 한 때 국보였던 촉석루가 다시 국보로 지정됐으면 하는 마음이 커 이번 전시회를 열게 됐습니다.

▲ 진주성 촉석루 특별전을 연 류범형 씨(78)

Q. 효석 조영제 화백의 그림이 많이 전시됐는데, 조영제 화백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십니까?

A. 조영제 화백과는 꽤 오래 전부터 알음알음 알고 지내던 사이입니다. 제가 사업 차 일본을 드나드는 일이 많았는데 당시 물감을 사달라는 부탁을 자주 해서 사다주곤 했지요. 사실 저도 조영제 화백을 꽤 오랜 기간 옆에서 지켜봤지만, 이렇게 뛰어난 화가인 줄은 작고하신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아 들렀던 서울의 한 전시회에서 조영제 화백을 크게 칭찬하더군요. 그 때부터 더 열성적으로 조 화백의 그림을 수집했죠. 얼마 전에는 조영제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경남도립미술관 등에서 조 화백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Q. 본래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아니면 어떠한 계기로 관심이 많아지신 건가요?

A.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더군요. 젊은 시절부터 화백들과 교류를 하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제 영향을 받아 딸 아이도 미학을 전공했어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서울에서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지방에서 자라 하버드까지 가는 사례가 잘 없는데(허허)... 저희 딸 아이 자랑 좀 했습니다.

Q. 많은 그림을 수집하고 관리하시려면 비용이 상당히 들 텐데, 집안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A. 저기 옆에 우리 아내 있죠? 반대도 하고 그랬죠. 그렇지만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설득하니 군말 없이 따라줬습니다. 그래서 이 많은 작품들을 소장할 수 있게 됐고요. 여기는 100점 정도가 전시돼 있지만 제가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은 더 많죠. 모두가 진주의 문화적 자산입니다.

▲ 진주성 촉석루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과기대 100년 기념관 2층

Q. 연세가 꽤 있으신데, 나중에 미술품은 어떻게 처분하실 생각이십니까. 가보로 물려주실 생각이신지, 아니면 다른 계획이 있으십니까.

A. 시립미술관이 있다면 나중에 모든 작품을 기증하고 싶어요. 문제는 진주에 시립미술관이 없다는 겁니다. 개인 이름이 들어간 시립미술관이 있는데, 그건 시립이라고 말하기에 애매하죠. 천년도시,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진주에 시립미술관이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요. 문화사업, 특히 그림사업이 성공하려면 세 분야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 그림을 모으는 저 같은 사람, 그리고 미술관이죠. 미술관이 없다 보니 저도 이곳 경남과기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 겁니다.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Q. 진주시나 진주문화원에서 홍보라든지, 어떤 도움을 주던가요?

A. 안타깝게도 홍보나 지원은 물론 전시회를 찾는 시장, 시의원도 없습니다. 아, 시의원 한 명이 다녀가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 어찌 됐든 진주성 촉석루를 홍보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전시회인데 시장이나 시의원의 관심이 없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시청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한 명 다녀가긴 했는데, 참.. 전시회가 열린다길래 한 번 들러나 봤다고 말하더군요. 어찌 보면 시나 문화원이 해야 할 일을 제가 하고 있는 것인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커녕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문화예술의 도시 진주라는 말도 이제 허명이 된 것 같습니다.

▲ 죽파 정중유의 작품, 1909년 작.

Q. 100여점의 작품 중 관객들이 꼭 봤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요?

A. 저는 이 두 작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1909년 작인데 죽파 정중유가 그린 겁니다. 남강다리가 놓이기 전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죠. 이런 작품들은 그 당시의 진주 풍경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고 박생광의 작품인데, 박생광은 현대 화백 중 1인자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많죠. 그림이 그려진 시대에 따라 촉석루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Q. 어떤 분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주면 좋을 것 같습니까?

A. 어떤 분이든 진주, 촉석루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가져주시면 늘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얘기하자면 학생들이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교육이란 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학생들은 영어, 수학 공부 하느라, 과외 받느라 바쁜데 그런 게 과연 좋은 교육일까요? 이런 전시회에 참여해 문화적 소양도 함양하고 창의성도 기르고 하는 그런 것이 참교육 아닐까요? 제가 해외에 여러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다녀봤는데 외국에선 학부모들이 아이 손을 잡고 박물관과 전시회를 많이 방문합니다. 우리도 그런 문화가 생겨나면 좋겠어요.

▲ 엽서에 깃든 조영백 화백의 촉석루 춘하추동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류범형 씨는 9장의 엽서를 건넸다. 엽서에는 전시된 작품들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는 4장의 엽서를 꺼내 들고는 조영제 화백이 그린 촉석루의 춘하추동이라며 아름답지 않냐고 물었다.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10월15일까지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2층에서 계속된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다. 류범형 씨는 전시회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엽서와 따뜻한 차 한 잔을 직접 대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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