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휴천마을 영귀정을 거닐며

봄이다. 발걸음도 가볍다. 2월 26일, 살포시 숨어 있는 봄의 숨결을 찾아 경남 함양군 병곡면 휴천마을로 아내와 봄마중 나섰다.

옛 88고속도로가 지났던 휴천마을로 들어섰다 휴촌(休村)마을은 조선 시대 세조 때 세종대왕의 12번째 왕자인 한남군이 엄천골에 유폐 당해 가다가 하룻밤 머물고 쉬어갔다고 해서 둔터, 쉼터라고 했다. 이것을 한자로 휴촌이라 부른다고 한다.

▲ 봄이다. 발걸음도 가볍다.

 

▲ 함양 휴천마을 들머리에 있는 ‘선비 9명이 풍류와 시를 즐겼다’는 등구정(登九亭)

 

휴천마을 들머리에 함양 선비 9명이 풍류와 시를 즐겼다는 등구정(登九亭)이 있다. 1932년송평과 휴촌 선비들이 건립했다. 등구정 앞 넓은 운동장은 1931년 등구정 계원 9명이 면민에게 땅을 기부해 현재에 이른다.

 

▲ 갯버들이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살랑 흔든다.

 

휴촌교를 건너자 다리 아래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다리 건너 강둑을 따라 올라갔다. 개울에서는 아이들이 뭐가 좋은지 노는 소리 즐겁다. 한편에는 부부가 밭을 덮은 검은 비닐 사이로 마늘에 비료를 준다. 갯버들이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살랑 흔든다.

 

▲ 함양 영귀정

 

시멘트 포장 농로를 따라 좀 더 올라가자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 정자가 놓여 있다. 영귀정(詠歸亭)이다. 영귀(詠歸)라는 말은 ‘춘추 시대 말기 증자(曾子)의 증점이 공자(孔子)를 모시다가 각자 제 뜻을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고 “봄날 옷이 만들어졌으면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沂水)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의 대 아래서 바람을 쐬면서, 시를 읊조리다가 돌아오고 싶다.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고 대답해 칭찬을 받았다.’는 말에서 따왔다. (<중국역대인명사전>)

 

▲ 영귀정 옆에는 바위가 하천에 우뚝 서 있다. 여름이면 이곳에서 멱을 감기 좋았다는 아내의 추억담이 아니더라도 시원하게 다이빙하기 좋은 곳이다.

 

영귀정 옆에는 바위가 하천에 우뚝 서 있다. 여름이면 이곳에서 멱을 감기 좋았다는 아내의 추억담이 아니더라도 시원하게 다이빙하기 좋은 곳이다. 영귀정 정자에 올라 증점처럼 봄이 익어갈 무렵이면 도시락 싸 들고 이곳에서 시를 읊조리며 놀고 싶다.

 

▲ 샛노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며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양산처럼 받쳐 든 소나무들이 영귀정을 시원하게 한다. 영귀정을 나와 휴천마을로 마실을 떠났다. 샛노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며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검은 비닐봉지가 깃발인양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휘날린다.

 

▲ 함양 휴천마을 휴천정 앞에는 장정의 품삯을 결정하는 들돌이 놓여 있다.

 

휴천정 앞에는 어른이 두 손으로 들기에 약간 버거운 동그란 돌이 있다. 들돌인 모양이다. 들돌을 어깨 위로 넘기면 온 품값을 받을 수 있어 어른이라 했고 두 번 넘기면 장사, 세 번 넘기면 품삯을 곱절로 받았다고 한다. 머슴들의 힘 세기를 알아보기도 했단다.

 

▲ 함양 병곡초등학교 정문 옆에는 작은 연못과 정자가 있다.

 

다시 다리를 건너 옛 88고속도로 지나 불과 승용차로 3분 이내에 있는 병곡초등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 바로 옆에는 작은 연못과 정자가 있다. 세종대왕상 옆 학교 버스 승하차 장소라는 팻말 아래에는 살짝 입 다문 채 큰 눈으로 바라보는 돌조각이 있다. 개학과 함께 곧 봄 노래 부르며 등교할 아이들을 반갑게 맞을 요량으로 다정하게 운동장을 바라본다.

 

▲ 함양 병곡초등학교에는 살짝 입 다문 채 큰 눈으로 바라보는 돌조각이 있다. 개학과 함께 곧 봄 노래 부르며 등교할 아이들을 반갑게 맞을 요량으로 다정하게 운동장을 바라본다.

 

지난겨울 동안 움츠려 있던 우리 몸과 마음도 봄 기지개를 켤 때가 되었다고 넌지시 시골 학교는 일러준다. 봄이 팝콘처럼 터지는 길목에서 귓가를 스치는 바람으로 봄 향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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