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다. 겨울이 저만치 가면서 자신을 잊지말 라고 흔적을 남긴다. 바람이 세차게 분 날이다. 겨울을 기억하기 위해 바람이 이끄는 대로 2월 10일, 길을 따라 들어갔다.

거울같이 맑은 경호강을 가로지르는 내리교를 지났다.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웅석봉(熊石峰)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자 바람은 멈춘 듯 고요하다. 지당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다 세진교(洗塵橋) 창건비 앞에서 멈췄다.

 

▲ 경남 산청 지곡사터를 알리는 세진교 창건비

 

창건비 맞은편 길 아래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햇살에 물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넓적한 바위가 나온다. 바위에 세진교라 새겨져 있다.

 

▲ 경사진 암반 위에 턱이 난 곳과 맞은편 계곡의 턱 진 곳으로 연결되는 무지개 형태의 석교를 건너 산청 지곡사를 출입했다고 한다. 경사진 암반에 걸쳐진 무지개다리는 1936년 여름 장마에 떠내려가고 세진교(洗塵橋)라는 글자만이 흔적을 전한다.

 

진주불교유적답사회에서 펴낸 <잃어버린 절을 찾아서> 따르면 예전에 지곡사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지당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세진교 창건비가 위치한 계곡 아래의 경사진 암반 위에 턱이 난 곳과 맞은편 계곡의 턱 진 곳으로 연결되는 무지개 형태의 석교를 건너 출입했다고 한다. 경사진 암반에 걸쳐진 무지개다리는 1936년 여름 장마에 떠내려가고 세진교(洗塵橋)라는 글자만이 흔적을 전한다.

 

▲ 산청 지곡사터를 알리는 거북 머리 비석 받침대 2기와 부서진 석탑 조각, 주춧돌.

 

내 안의 티끌을 씻어보려는 마음으로 계곡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내리 저수지를 지나자 느티나무 아래 넓은 평상이 나온다. 옆으로 곰 모양 음수대가 있다. 음수대 옆으로 돌덩이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한때는 300여 명의 승려가 머물고 물방앗간이 12개나 될 정도로 큰 절로 성장해 선종(禪宗) 5대 산문의 하나였던 지곡사는 이제는 거북 머리 비석 받침대 2기와 부서진 석탑 조각, 주춧돌 등이 남겨져 있다.

 

▲ 한때는 300여 명의 승려가 머물고 물방앗간이 12개나 될 정도로 큰 절로 성장해 선종(禪宗) 5대 산문의 하나였던 지곡사는 사라지고 1958년 중건한 ‘지곡사’가 나온다.

 

지곡사는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진주성 대첩의 숨은 공신이다. <진주수성승첩장>에 따르면 진주 목사 김시민이 진주성 전투에 대비해 170여 점의 조총과 화약을 제조했다. 김성일도 산청 지곡사에서, 호남에서 모은 숙련공을 통해 조총을 제조했다고 한다.

 

▲ 1958년 중건한 산청 지곡사.

 

잃어버린 절을 찾는 마음으로 계곡을 따라 좀 더 올라갔다. 1958년 중건한 ‘지곡사’가 나온다. 옛 가람 배치와 달리 아주 소박한 절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지곡사’라는 표지석 뒤로 일주문도 없이 바로 절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 너머에 바로 산신각이다. 산신각 바로 옆에 대웅전이 붙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허리를 낮추면 전각에 있는 부처님이 보인다.

 

▲ 박새 한 마리가 놀라는 기색없이 오히려 다가서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당 한쪽 종각 옆으로 향나무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옹골차게 서 있다. 절을 둘러보고 나와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박새 한 마리가 지곡사 축대에서 바람을 피해 햇살에 샤워 중이다. 2~3m 거리까지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다가서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 경남 산청 웅석봉으로 가는 길.

 

겨울 끝자락을 움켜쥔 얼음 아래로 웅석봉 선녀탕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흐른다. 봄을 부르는 소리에 맞춰 지나가는 겨울을 회상하듯 바람이 휭~하고 분다. 바람에 잠시 몸을 숙였다. 추울수록 그리운 건 사람이고 가족이다.

 

▲ 겨울 끝자락을 움켜쥔 얼음 아래로 웅석봉 선녀탕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흐른다.

 

한편 지곡사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웅석봉군립공원으로 가다가 공용 화장실이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300m 정도 올라가면 심적사가 나온다. 심적사 주차장 모퉁이에서 산으로 이어진 작은 길을 따라가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심적사 추파당 대사와 한암 대사 승탑(僧塔)과 탑비(塔碑)가 옆으로 나란히 숲속에 있다.

 

▲ 산청 심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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