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길을 타고 바람과 함께 들어온다. 절로 움츠러든다. 봄에 들어섰다 믿었다가 이런 낭패가 없다. 길 너머 봄을 향해 가는 내 마음을 멈추게 막지 못한다. 2월 9일,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볕은 따뜻해 길을 따라 산으로 갔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 청소년수련관을 지나 경호강을 건너 산으로 들어갔다. 산청 지곡사터를 알리는 곳을 지나자 최근 만들어진 지곡사가 나온다. 

 

▲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볕은 따뜻해 길을 따라 경남 산청 웅석봉으로 향했다.

 

지곡사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웅석봉군립공원으로 들어가다 갈림길이 나온다. 심적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오른편으로 올라갔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옆으로 작은 개울은 하얀 얼굴로 내민다. 모두 꽁꽁 얼었다. 시멘트로 포장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 산청 심적사 주차장 모퉁이에서 산으로 이어진 작은 길을 따라가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심적사 추파당 대사와 한암 대사 승탑(僧塔)과 탑비(塔碑)가 옆으로 나란히 숲속에 있다.

주차장 모퉁이에서 산으로 이어진 작은 길을 따라가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심적사 추파당 대사와 한암 대사 승탑(僧塔)과 탑비(塔碑)가 옆으로 나란히 숲속에 있다. 새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이겨내고 고요하게 잠든 추파당 대사의 승탑은 ‘구연탑(九淵塔)’이라 새겨져 있다. 부도 맨 꼭대기에는 연봉오리 모양의 보배로운 구슬(寶珠)가 반원으로 붙어 있다.

 

추파당 홍유(泓宥) 부도와 비는 1836년(헌종 2)에 건립되었다. 호가 추파 또는 경암(鏡巖)인 홍유는 불교 선종과 교종 모두에 능통했는데 만년에 선종에 귀의했다. 유교에도 밝아 불교와 유교를 비교한 저술을 남겼다. 1774년(영조 50) 5월 13일에 57세로 입적했다. 한암은 1845년(헌종 11)에 건립되었는데 홍유와 비슷한 시기에 머물러 선종에 귀의했지만 자세한 활동은 알려져 있지 않다.

 

▲ 산청 심적사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좀 더 위쪽 절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에서 나와 절로 올라가는 길 왼편에 중창복원비(重創復元碑)가 있다. 해인사 말사인 산청 심적사는 통일신라 경순왕 3년(929년)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부경남 지역 최초로 오백나한상을 모신 기도도량으로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1950년 6·25전쟁 때 암자가 화재로 전소되어 버리자 이 절에 모셔 두었던 22나한상을 인근 삼봉산 동룡동(東龍洞)으로 옮겼다. 1976년에 절을 중창한 뒤 다시 가져와 모셨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나한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 산청 심적사 오백나한전

 

대웅전으로 가는 길옆으로 오백나한전이 보인다. 나한은 최종 깨달음을 얻어 번뇌가 다 한 ‘아라한’을 줄인 말이다. 곧 성자를 뜻한다. 나한전으로 가는 길옆에 탑이 있다. 탑을 가운데 두고 복스러운 표정의 달마가 웃는다.

 

▲ 산청 심적사에는 일본 에도시대 지게를 지고 다니며 공부를 해서 성공했다는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를 닮은 동상이 있다. 특유의 근면성으로 36세에 지방 관리가 되어 일본 각지의 황무지 개척과 농촌 재건에 성공했다. 친 일본 대부분 소학교(초등학교)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정한론의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옆에는 나무를 지게 가득 해가면서 책을 읽는 아이의 동상이 보인다. 일본 에도시대 지게를 지고 다니며 공부를 해서 성공했다는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와 비슷하다. 보통 긴지로라 불리는 니모미야 손토쿠는 1787년 가나가와현 오다하라시(神奈川県 小田原市)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부모를 여였다. 특유의 근면성으로 36세에 지방 관리가 되어 일본 각지의 황무지 개척과 농촌 재건에 성공했다. 친 일본 대부분 소학교(초등학교)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정한론의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 산청 심적사 오백나한전에 붙어 있는 현액.

 

씁쓰레한 기분을 안고 오백나한전에 이르자 오백나한전 현액 좌우에 도불원인(道不遠人) 인자원인(人自遠矣)이 적혀 있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사람이 스스로 멀리한다’는 말이다. 기둥인 주련에는 ‘四向四果早圓成 (사향사과조원성) 三明六通悉具足 (삼명육통실구족) 密承我佛受敎囑 (밀승아불수교촉) 住世恒爲眞福田 (주세항위진복전)’라 적혀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어서 부당한 노력으로 복 밭을 가꾸라는 뜻이다.

 

왼편에 수처작주(隨處作) 입처개진(立處皆)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어디서나 주인공이 된다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모두 진실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현판 사이로 재미난 글이 있다.

 

‘공부합니다. 공부 안 하려고 공부합니다. 밥 먹고 공부합니다. 공부 하려고 밥 먹고 공부합니다. 공부도 안 하고 밥도 안 먹으려고 공부합니다.’

 

▲ 산청 심적사 오백나한전에 모셔진 나한상

 

읽고 읽으면서 전각 앞으로 들어갔다. 오백나한상은 각각 다른 얼굴들이다. 근엄하거나 자비로운 부처님이나 보살상과 달리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친근하다. 우리 이웃의 모습을 닮았다. 삼배를 올린 뒤 대웅전으로 향했다.

 

▲ 산청 심적사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편에는 두꺼비 위에는 새끼 두꺼비가 등에 올라타 어디로 즐거운 마실 이라도 가는 모양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좌우에는 돌로 만든 두꺼비가 있다. 왼편의 두꺼비 위에는 새끼 두꺼비가 등에 올라타 어디로 즐거운 마실 이라도 가는 모양새다. 대웅전을 옆 산신각까지 둘러 본 뒤 숨을 골랐다.

 

▲ 산청 심적사 통일기원 불사리탑

 

옛날 강원도에서 난리를 피해 모셔왔던 나한불이 동짓날 외로이 절을 지킨 스님에게 마을에서 팥죽을 시주받아 먹였다는 전설을 떠올리며 종루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통일기원 불사리탑'으로 향했다. 사각거리는 대나무 사이를 잠시 걷다 보면 금방 나온다. 둥근 사리탑에서 저만치 드리운 구름과 해가 보인다. 저 아래 인생을 닮은 길을 따라 마을이 있다. 여기에는 잘난 사람도, 1등도 없다.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 산청 심적사에서 아래를 보았다. 저 아래 인생을 닮은 길을 따라 마을이 있다. 여기에는 잘난 사람도, 1등도 없다.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햇살 좋은 곳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내 삶을 살짝 가린,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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