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을 하루 앞둔 2월 3일, 봄 마중을 떠났다. 경남 하동군 하동읍 내 어디서든 접근이 쉬운 하동공원으로 점심을 먹고 올랐다. 햇살은 따사롭다. 아파트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랐다. 숨이 헉헉거린다. ‘개조심’이라는 안내판과 달리 누렁이는 그저 목을 기다랗게 내밀어 나를 구경한다. 앞서서 아이와 함께 올라가는 가족들이 서로 맞잡은 손이 정겹다.

 

▲ 하동군 하동읍 내 어디서든 접근이 쉬운 하동공원으로 점심을 먹고 봄 마중을 떠났다.

 

▲ 아파트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랐다. 숨이 헉헉거린다. 불과 5분의 수고는 나중에 공원에서 바라보는 풍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저만치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박차고 팝촌처럼 팡팡 터질 채비를 마친 매화나무들이 보인다. 벌써 팝콘처럼 고소한 꽃을 피운 매화가 사박사박 걷는 이 길을 더욱 설레게 한다.

전망대 앞에는 탐스러운 복숭아를 닮은 바위가 있고 앞에 있는 작은 바위에는 읍내를 내려다보며 가부좌로 명상에 빠진 이가 있다. 드라마<식객>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펼쳐지는 풍광은 한 편의 드라마와 영화 장소로 전혀 손색없다.

 

▲ 하동공원 전망대 앞에는 탐스러운 복숭아를 닮은 바위가 있고 앞에 있는 작은 바위에는 읍내를 내려다보며 가부좌로 명상에 빠진 이가 있다.

 

사방으로 트여 있는 전망대에서 먼저 서쪽으로 보자 백운산과 섬진강, 너뱅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섬호정을 바라보는데 다소곳하게 서 있는 소녀가 눈에 들어온다. 궁금증은 한달음에 그곳으로 내달리게 한다. 그러나 걸음은 쉬이 옮길 수 없다. 사박사박 걷는 동안 봄이 내 곁에서 이쪽으로, 저쪽으로 연신 고개를 돌리게 한다.

 

▲ 야트막한 하동공원은 한달음에 둘러보지 못하게 아름다운 풍광이 발을 붙잡는다.

 

곳곳에 있는 정자는 걸음을 붙들고 쉬어가라 유혹이다. 매화정을 지나 충혼탑에 이르렀다. 하동 출신 호국영령 757위의 위패를 봉안한 곳에서 잠시 머리 숙였다.

 

▲ 하동공원 곳곳에 있는 시비와 조각품은 마음마저 평안하게 만든다.

 

다시 걸음을 돌려 나오자 ‘시의 언덕’이라는 선간판이 반기는 곳에는 아름다운 시어가 물고기처럼 펄렁인다. 먼저 눈에 들어온 온 시는 ‘입산시(入山詩)’라는 최치원 선생의 시였다. ‘스님이 산이 좋다 말하지 말라/ 산이 좋을 진 재 어찌 산을 나서는가/ 훗날 내 자취를 두고 보시오/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 나오지 않으리니/’ 시를 따라 읽는 나 역시 이곳에서 나가기 싫었다.

 

섬호정을 향해 걷다가 대숲으로 잠시 방향을 돌렸다. 대나뭇잎이 사각사각 정겹게 인사를 건네다. 덩달아 마음마저 시원하게 맑아진다. 공원은 어디를 걸어도 햇살이 곱게 들어오고 바람이 든다. 섬호정에 이르지 못하고 걸음을 멈췄다. 붉게 봄을 물들인 홍매화들이 저 앞에서 손 흔든다. 나는 오늘 봄을 보았다. 땅에도 나무에도 봄 내음이 한 움큼씩 들어온다.

 

▲ 섬진강을 향해 수줍은 듯 고개 사락 내린 하동공원 내 최평곤의 작품 ‘누이’

 

섬호정 바로 아래에는 수줍은 듯 고개를 살짝 내리고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소녀를 만났다. 키가 아주 큰 소녀는 말이 없다. 소녀는 마치 봄을 기다리는 양손을 다소곳이 가운데 모은 모양새지만 말이 없다. 최평곤의 작품 ‘누이’다. 소녀 옆에 서서 덩달아 나도 흉내 내며 섬진강을 본다. 조각품 옆에 있는 안내판 따라 김용택 시인의 ‘누이야 날이 저문다’를 읊조린다.

‘누이야 저 물의 끝은 언제나 물가였다/ 배고픈 허기로 저문 물을 바라보면 안다/ 밥으로 배 채워지지 않은 우리들의 멀고 먼 허기를/ 누이야/ 가문 가슴 같은 강물에 풀꽃 몇 송이를 띄우고/ 나는 어둑어둑 돌아간다/~’

아쉽다. 중천에 떠 있는 해가 원망스럽다. 해가 기울어 강물 속에 스며들 때면 더욱 누이처럼 넉넉한 섬진강 풍경을 구경할 수 있으련만.

 

▲ 팝콘처럼 고소한 꽃을 피운 매화가 사박사박 걷는 이 길을 더욱 설레게 한다.

 

아쉬움은 섬호정으로 올라간다는 생각을 잊게 한다. 굽이치는 섬진강이 한눈에 보이는 볕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았다. 가져간 캔커피를 섬진강 물줄기와 한번, 스쳐지나는 바람에 한번, 햇살에 한번씩 마신다. 몸이 싱그럽다. 마음이 상쾌하다.

<어린이 명상>이라는 전성희의 작품 속 아이가 잔디밭에서 고개를 뉘이고 있다. 옆에서 나도 따라 뉘이며 언덕 너머를 보았다. 흙내음과 함께 봄 냄새가 물씬 몰려온다. 조각들을 둘러보다 섬호정에 올랐다. 어디를 봐도 아름답지 않은 풍광이 없다.

 

▲ 하동공원에서 봄에 물들었다.

 

정자를 내려 햇살에 샤워하듯 걸었다. 참새 한 마리 종종거리며 앞서 걷는다. 하동공원의 넉넉한 풍광에 안겼다가 떠난다. 붓을 닮은 목련 겨울눈은 하늘을 도화지 삼아 붓을 붓 모양을 한 목련 겨울눈이 술렁술렁 배웅한다.

 

▲ 하동공원을 사박사박 걷는 일상은 봄을 보고 느끼는 시간이다.

 

이제 나는 마을로 돌아간다. 당신 품에 안겨 봄을 보고, 느끼고 간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봄물에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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