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줍니다.(When you want something, the whole Universe conspiresto help you realize your desire.<연금술사(The Alchemist)>’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 경남 의령 의병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흑백으로 펼쳐졌다.

 

▲ 지난해 30여 년의 경찰 공직 생활을 마감한 김도주 사진가의 ‘절벽에 꽃 피운 천년의 미소’ 사진전이 10일부터 15일까지 의병박물관 특별초대전으로 열리고 있다.

 

김도주 마애불 사진전

1월 15일까지 의령 의병박물관에서 열려

2017년 한 해가 시작되고도 십여 일이 지난 13일. 새해를 맞아 새롭게 결심을 하면서도 정작 지난해 정작 다사다난한 일들로 고생한 나를 제대로 위로하지 못했다. 1층 박물관을 거쳐 올라가 2층 전시실 문을 열자 부처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불교 신자이던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지난해도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숨 한 번 크게 쉬세요. 새해 새날에도 당신을 응원합니다.’며 이심전심과도 같은 부처님의 마음, 염화미소(拈華微笑)가 전해진다.

전시실에는 백제의 미소라고 하는 서산 마애불상을 비롯해 전국의 마애불상을 찍은 사진이 은은한 조명 속에 빛난다. 지난해 30여 년의 경찰 공직 생활을 마감한 김도주 씨의 ‘절벽에 꽃 피운 천년의 미소’ 사진전이 10일부터 15일까지 의병박물관 특별초대전으로 열리고 있다.

 

▲ ‘장수 사진 찍어 주는 경찰관’ 김도주 사진가가 7년 전부터 전국 각지의 마애불상을 찾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김도주 씨는 ‘장수 사진 찍어 주는 경찰관’으로 유명한 경찰공무원이다. 수사과 감식계에서 시체를 담당하면서 장수 사진도 없이 돌아가신 분들이 안타까워 한 장, 두 장 찍어준 게 1,500장이 넘는다. 700여만 원의 돈을 들여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함께할 장수 사진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런 그가 7년 전부터 전국 각지의 마애불상을 찾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은 어느 곳이든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마애불을 만든 이들도 바윗돌을 정과 망치로 쪼아 만든 게 아니다. 바위 속에 깃든 부처님의 모습을 정과 망치로 겉으로 드러냈다. 불교 신자도 아닌 김도주 사진가도 카메라 앵글에 담아 우리에게 바위 속에 깃든 부처의 마음을 보여준다.

김제 문수사 마애여래 좌상과 하동 쌍계사 마애불 좌상 속 부처님은 친근한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닮았다. 사진가도 큰 바위 부처님 얼굴처럼 닮아가는 것일까. 얼굴이 사진 속 부처님을 닮았다.

 

▲ 광주 용진산 마애여래 좌상 속의 부처님은 얼굴에 비해 큰 코와 꽉 다문 입술, 가늘게 뜬 눈과 눈썹 사이가 좁아 찡그린 인상이다. 묵묵히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묻어나는 동네 할아버지를 보는 듯하다. (사진제공=김도주)

 

광주 용진산 마애여래 좌상 속의 부처님은 얼굴에 비해 큰 코와 꽉 다문 입술, 가늘게 뜬 눈과 눈썹 사이가 좁아 찡그린 인상이다. 묵묵히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묻어나는 동네 할아버지를 보는 듯하다.

 

▲ 사진4. 영월 무릉리 마애불은 내 눈에는 닭이 알을 품은 모양새다.(사진제공=김도주)

 

옆에는 신경림 시인이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주천강가의 마애불-주천에서’ 중) 물방울 같다고 한 영월 무릉리 마애불이 보인다. 내 눈에는 닭이 알을 품은 모양새다. 마애불을 찍기 위해 두 번이나 찾았다는 사진가는 신선이 논다는 요선정 정자부터 마애불 너머 주천강 전설까지 찰지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 옛날 주천면의 어느 곳에 술이 솟는 바위샘(주천)이 있었다. 샘은 방문자 신분에 따라 양반이 잔을 내밀면 청주를 주고, 백성이 오면 막걸리를 쏟아냈다. 백성이 양반 복장을 하고 청주를 기다렸으나 술샘에서 탁주가 솟아나자 화가 나 샘을 부순 뒤부터 술샘에서는 술 대신 맑은 물이 솟아나 주천강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옅은 안개에 가려 주위 산세가 보이지 않지만, 전설 따라 올 여름에 풍광을 찾아 휴가를 떠나고 싶은 바람이 생겼다.

 

▲ 이천 소고리 마애삼존불상은 서유기를 표현한 기분이다.(사진제공=김도주)

 

이천 소고리 마애삼존불상은 남미 마야 문명에서 만나는 형상이다. 전체적으로 균형 맞지 않는 불상은 익살스럽다. 어찌 보면 손오공 같기도 하다. 가운데 손오공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사오정, 오른쪽으로 저팔계를 표현한 느낌이다. 더구나 오른편 저팔계 코는 누군가 쪼아 더욱 그런 기분을 자아낸다.

 

▲ ‘5cm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주 열암곡 마애불 입상(사진제공=김도주)

 

지난해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모든 국민이 놀랐다. ‘5cm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주 열암곡 마애불 입상도 옛날 옛적 지진으로 입상의 바윗돌이 넘어졌다. 아슬아슬하게 부처님의 코가 지면에서 불과 5㎝ 떨어져 엎드려 있다. 2007년에 경주 남산 열암곡 석불좌상을 재정비하면서 발견된 무게 70t, 높이 6.2m의 바위 앞면은 정교한 솜씨로 부처의 얼굴을 돋을새김했다. 지진으로 서 있던 부처님이 땅으로 처박힌 셈이다.

 

▲ 남원 여원치 마애불 좌상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불상은 오른쪽 머리와 왼쪽 손이 잘렸다. 오히려 장애에 굴하지 않게 굳건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꾹 다문 입에서 느껴진다.(사진제공=김도주)

 

남원 여원치 마애불 좌상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불상은 오른쪽 머리와 왼쪽 손이 잘렸다. 오히려 장애에 굴하지 않게 굳건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꾹 다문 입에서 느껴진다.

▲ 서산 마애불에서 걸음을 멈췄다. 불상 속 부처님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것이니 두려워 말라’고 격려한다.(사진제공=김도주)

 

전시실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천천히 걸었다. 서산 마애불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래 입상의 미소는 부드럽고 푸근해 마음을 넉넉하게 다시금 채워준다. 더구나 오른손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이고 왼손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여원인(與願印)이다. ‘원하는 것을 다 이룰 것이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전해진다. 올 한해도 건강하게 살아갈 희망을 엿보았다.

전시실을 나서자 천 년 시간 속으로 산책 다녀온 기분이다. 언제 가도 나를 위로해주는 내 고향 같은 풍경들이다. 중생들이 마음으로 쉬어갔던 그 길, 진실한 염원이 사진에서 나와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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