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이 아름다운 산청군 단계면

어느새 2016년 한해도 무르익어간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겨울바람은 스산하다. 세상사 시름도 잠시 잊고 마음속 찌꺼기도 훌훌 털어버릴 한 해를 보듬는 겨울 풍경을 만나러 산청 단계를 찾았다. 작은 면 소재지인 단계에서는 고려 시대 불상도 있고 조선 시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도 있다. 무엇보다 세월을 품은 정다운 돌담길이 함께한다.

 

▲ 작은 면 소재지인 산청 단계에서는 고려 시대 불상도 있고 조선 시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도 있다. 무엇보다 세월을 품은 정다운 돌담길이 함께한다.

12월 7일, 경남 진주에서 산청 가는 일반국도 3호선에서 원지에서 합천 방향으로 빠져 신등면쪽으로 향했다. 신등면보다는 ‘단계’라고 하면 더 많이들 안다. 고려 성종 때 단계현으로 불렸다가 조선 세종 때 단계현과 강성현을 합쳐 단성현으로 불리다가 1914년 단성면 법물면을 신등면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이르는 동안 사람들은 단계라는 말을 더 친숙하게 여긴다.

 

▲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중일 때 합천에 있는 권율 도원수를 만나러 가면서 단계 천변에서 쉬어간 곳에 세워진 ‘이순신 추모공원’.

 

신등면 면 소재지인 단계리에 들어서는 지마고개를 넘자마자 산청소방서 신등지역대를 지나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이순신 장군을 만난다. 119안전센터에서 불과 10여 m 거리에 있는 이순신추모공원이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중일 때 합천에 있는 권율 도원수를 만나러 가면서 이곳 단계 천변에서 쉬어간 곳이다. 장군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 아침 일찍 단성을 떠나 여기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장군은 민폐를 걱정해 단계마을을 통과하지 않고 마을 옆 시냇가에서 쉰 것이다.

 

겨울눈을 한가득 품은 목련 뒤로 ‘충무공 이순신장군상’이 나온다. 장군상 옆으로는 거북선이 어른 크기의 유리 상자 속에 진열되어 있고 뒤로는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 추모탑’이 있다. 추모탑 뒤 부처님이 있다. ‘산청 단계리 석조여래좌상’이다.

 

▲ ‘산청 단계리 석조여래좌상’

 

예부터 냇물이 넘쳐 물난리가 잦아 부처의 힘으로 물난리를 막고자 불상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불상은 보통 부처의 머리 위에 혹과 같이 튀어 오른 부처의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肉髻)가 큼지막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닳아 없어져 또렷하지 않다. 볼은 통통한 타원형이다. 상반신 오른쪽은 거의 떨어져 없다.

 

부처 몸에서 나오는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를 꽂는 촉이 불상 뒷면에 뚫려 있다. 광배는 깨어져 근처에 있다는데 보질 못했다. 고려 시대 전기에 제작된 불상은 묵묵히 이순신 장군상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다.

 

▲ 단계초등학교 기와지붕의 교문에 ‘삭비문(數飛門)’이라는 현액이 걸렸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이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하라’는 논어(學而編)에 나온 말을 옮겨놓았다.

부처님과 장군님을 먼저 뵙고 난 뒤 겹겹이 쌓인 시간을 묵묵히 견딘 한옥들이 고즈넉한 돌담길에서 만날 수 있는 마을 속으로 향했다. 단계초등학교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학교 앞 단계루에 올라 잠시 오가는 차들을 구경하고 교문을 바라보았다. 기와지붕의 교문에 ‘삭비문(數飛門)’이라는 현액이 걸렸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입춘방 옆에 여조삭비(如鳥數飛)가 적혀 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이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하라’는 논어(學而編)에 나온 말을 옮겨놓았다. 비단 아이들뿐일까. 배우기를 끊임없이 하라는 말씀에 나 역시 배우기를 쉼없이 하자 다짐하며 기와로 만든 학교 담장을 따라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구불구불 조붓한 고샅이 이끄는 대로 가다보면 세월을 거슬러 시간 여행 온 기분이다.

 

▲ 산청 단계마을의 옛 담장은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는데 담장 아래에 큰 돌을 60~90cm 정도 쌓은 다음 그 위에 좀 더 작은 돌과 진흙을 교대로 쌓아 올렸다.

 

담장은 2m 정도로 안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그러나 장작 타는 냄새는 높이에 굴하지 않고 구수하게 담장을 넘나든다. 돌담과 토석담이 어우러진 돌담길은 약 2200m 정도다. 단계마을의 옛 담장은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는데 담장 아래에 큰 돌을 60~90cm 정도 쌓은 다음 그 위에 좀 더 작은 돌과 진흙을 교대로 쌓아 올렸다. 담장 위쪽에는 돌출된 기와를 받치도록 판판한 돌을 담장 안팎으로 6~7cm 정도 내밀어 쌓았다.

 

▲ ‘산청 단계리 권씨 고가’는 대문채를 제외하고 모두가 팔각지붕이다.

 

돌담 따라 걷다가 문 앞에 자전거 덩그러니 놓인 집 앞에서 멈췄다. ‘산청 단계리 박씨 고가’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인 박씨고가는 1918년 세워진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 대문채, 곳간채가 ‘ㅁ’자형(字形)으로 배치되어 있다. 아쉽게도 문 앞에 세워진 자전거의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대답이 없다. 마당 한가운데 300년도 더 되어 보이는 향나무가 서 있다. 까치발로 여기저기 구경만 하다 돌아섰다.

 

▲ ‘산청 단계리 박씨 고가’는 1918년 세워진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 대문채, 곳간채가 ‘ㅁ’자형(字形)으로 배치되어 있다.

 

박씨고가를 나오자 한방족욕체험도 할 수 있는 산청율수원이 나오고 그 옆으로 돌담길을 따라 걷자 솟을 대문이 나온다. 솟을대문 옆으로 열린 작은 문을 따라 들어가자 사랑채에는 뉴스 소리가 들린다. 주인아저씨의 허락을 받아 건물을 구경하고 나왔다. 아저씨가 일러준 삼거리로 가자 권씨 고가가 나왔다.

 

▲ 1급수 맑은 물이 흐르는 산청 단계천 변.

 

맞배지붕의 대문채는 닫혀 있고 담장 옆으로 난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시멘트 벽돌로 변형된 행랑채 해체 후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안채에서는 겨울 김장 김치 치대기에 분주하다. 허락을 구해 집을 구석구석 구경했다. 대문채를 제외하고 모두가 팔각지붕이다. 천석꾼 살림살이는 안채 옆에 있는 나락 재는 곳간채 크기에서 짐작이 갔다.

 

▲ 야간에는 물레방아를 돌려 소수력 발전으로 얻은 전력으로 가로등과 정자 조명을 밝힌다는 산청 단계리 물방아재공원이다.

 

돌담이 품은 세월에 머물다가 단계천으로 나왔다. 1급수 맑은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10여 분 차황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간에는 물레방아를 돌려 소수력 발전으로 얻은 전력으로 가로등과 정자 조명을 밝힌다는 물방아재공원이다. 정적이 감도는 공원을 바람처럼 한 바퀴 휙 돌아 단계초등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용담 박이장 선생을 기리는 용담정사를 지나갔다. 다시 차에 올라 합천 방향으로 5분 더 올라가 장승배기 공원에서 차를 세우고 공원을 나 혼자 전세 낸 양 유유자적 거닐었다.

 

▲ 산청 장승배기 공원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겹겹이 쌓인 시간을 묵묵하게 견뎌낸 돌담길이 아름다운 단계에서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도 만나고 조선 시대 이순신 장군의 흔적도 만났다. 돌담이 이어진 마을에서 옛집의 향기도 맡으며 몸과 마음을 푹 맡기고 쉬었다가면 어떨까. 햇살 따스한 날 찾고픈 산청 단계 돌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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