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조각공원·목아전수관·산골박물관을 찾아

온 누리를 물들일 가을 햇살이 너무 고와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발 닿는 곳마다 온통 붉게 물들 가을을 앞두고 조붓하게 걷고 싶었다. 느긋하게 다가올 가을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래서 경남 산청으로 9월 20일 길을 떠났다. 경남 산청여행의 일 번지는 동의보감촌이다. 불교 신자라면 성철스님의 생가터에 세운 겁외사가 먼저고 조선 선비의 기개를 찾는다면 남명 조식 선생의 산천재가 좋다. 아름다운 경치 구경하기에는 내원사 계곡이 딱 맞다. 나는 산청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조각공원과 목아전수관, 산골박물관을 다녀왔다.

 

▲ 산청군 생초면에 위치한 목아전수관

 

함양에서 산청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나면 왼편으로 굽어가는 경호강을 바라보는 야트막한 구릉에 산청국제조각공원이 있다. 산청군 생초면에 위치한 조각공원 들머리에는 목아전수관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인 목조조각장인 목아 박찬수 선생의 전통 나뭇조각의 맥을 잇기 위해 고향 산청에 2011년 건립되었다. 목아전수관 입구를 들어서면 왼편으로 얼굴 없는 불상을 만난다. 불상은 세모꼴의 작은 돌멩이가 얼굴을 대신한다. 기와 처마 밑에는 정면을 바라보는 동자승은 오른손에 방망이를 들고 마치 말을 타듯 봉황에 올라 하늘을 난다. 풍경은 이들을 내려다볼 뿐이다.

 

▲ 산청 목아전수관 기와 처마 밑에는 정면을 바라보는 동자승은 오른손에 방망이를 들고 마치 말을 타듯 봉황에 올라 하늘을 난다. 풍경은 이들을 내려다볼 뿐이다.

 

기와집으로 들어가면 목아 박찬수 선생의 목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교육 체험장을 지나자 소담한 전시실이 나온다. 우리나라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93.5㎝)과 거의 같은 형식을 닮은 일본 국보 1호인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에 소장된 목조 미륵보살반가상이 먼저 눈에 띈다. 물론 모작이다. 일본 미륵보살 반가상은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적송(赤松) 하나에서 깎아 만든 것이라 백제에서 건너간 유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작은 나무틀에 청동을 부어 만든 청동상이다. 모작이지만 일본 국보를 접하니 기분이 좋다.

 

▲ 산청 목아전수관에는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모작이 있다.

 

미륵반가상을 지나자 여의주를 문 용 등에 걸터앉은 아이가 악기를 연주하는 조각상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손 받침하고 기대앉은 조각상의 스님은 아주 평화로운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합장한 채 실눈으로 오후 2시쯤 고개를 기울여 위를 쳐다보는 동자승은 반소매 차림이다. ‘부처가 입을 열다’라는 작품은 가부좌를 하고 있는 부처님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양새다. 여느 절에서 보아온 잎 다문 부처님과 달리 친근하다. 입을 연 부처님 옆으로 작은 부처님상이 살짝 웃는 얼굴로 집게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왼손으로는 손바닥을 보인다.

 

▲ 목아전수관에 있는 작품 ‘부처님 입을 열다’

 

다양한 나뭇조각은 너무 매끈해 사포질한 듯싶지만 전혀 아니다. “칼로 시작해 칼로 끝난” 목아 선생의 전통 목공예란다. 걸음을 찬찬히 옮기는데 눈에 익은 조각상이 띈다.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모작이 반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모작을 여기서 제작했다고 한다. 또한, 모작은 훼손된 광배까지 복원해 전시해 약간 차이가 있다. 전통 목공예라 불교 조각상이 많지만, 공자도, 단군도, 예수도, 마리아도 만날 수 있다.

 

▲ 산청국제조각공원에 있는 경상대학교 교수 이갑열의 작품 <인간의 길>

 

전수관 건물을 나오자 언덕 위 두 팔을 양 끝으로 힘껏 뻗은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경상대학교 교수 이갑열의 작품 <인간의 길>이다. 마치 언덕을 박차고 푸른 하늘 위로 날아올라 가려는 로켓을 닮았다.

 

조각공원으로 걸음을 옮기자 “돌 굴러가유~”하고 소리칠 것만 같은 커다란 동전 모양의 돌 조각 3개가 먼저 반긴다. <산청03-천지인 STACCICL MAURO(이탈리아) 작>은 멀리서 볼 때는 통신사 위성전파 안테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발 200~240m 지점의 구릉지에 있는 조각공원을 한 바퀴 도는 데는 빠른 걸음이면 채 10분이면 돌 수 있다. 공원 조각품들은 1999년, 2003년, 2005년 산청국제현대조각심포지엄에 참여한 조각가들이 만든 현대 작품 20여 점이 지면패랭이들이 잔디처럼 뒤덮은 언덕에 있다.

 

▲ “돌 굴러가유~”하고 소리칠 것만 같은 커다란 동전 모양의 돌 조각 3개가 먼저 반긴다. <산청03-천지인 STACCICL MAURO(이탈리아) 작>은 멀리서 볼 때는 통신사 위성전파 안테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야트막한 언덕 중간에는 가야시대 고분군 2기가 있다. 생초면 면 소재지와 고읍들, 경호강에 시원한 풍광이 들어온다. 아름다운 풍광을 뒤로하고 진주 방향으로 향했다. 산청군 신안면 적벽산과 백마산 사이에서 갈전으로 들어갔다. 기독교 공동체로 널리 알려진 민들레 마을을 지나 대안학교인 간디중학교에 못 미쳐 경사 있는 산길을 올라가면 3층 높이 건물과 키 재기 하는 무화과 나무가 나온다. ‘산청 산골박물관’이다.

▲ 산청국제조각공원

양계장인 산골농장 이상호 회장이 사비 20여억 원을 들여 2015년 7월 문을 열었다. 1만7천893㎡ 터에 3층 규모의 박물관으로 들어가자 뒤주 위에서 발꿈치로 얼굴을 기대고 깊은 생각에 들어간 동자승 조각상이 반긴다.

 

전시실로 들어가면 높은 이들이 타고 다닌 가마의 일종인 평교자가 눈에 들어오는데 고관대작이 아니라 닭이 타고 있고 그 옆으로 닭과 관련한 세계 각지의 조형물과 작품들이 많다.

 

▲ 산청산골박물관


전시물을 찬찬히 구경하면 산청의 역사와 문화를 이곳에 한눈에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산골 생활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나오는 출구에는 매끈한 느티나무 목재가 나온다. 느티나무 속에 등에 아이를 업고 머리에는 자기 자신의 절반 정도의 양동이를 이고 가는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투박하고 거친 자귀나무 결과 함께 드러나는 <울엄마(박찬수 작)>가 보인다. 옆에는 나를 부럽게 만드는 아주 평안한 자세로 앉아 조는 듯 쉬는 동자승 조각상이 나온다.

▲ 산청 산골박물관 전시실

맞은편 전시실에는 기차 모양 연필깎이를 추억의 물건들이 즐비하다. 파일롯 잉크와 양은 도시락과 반찬통은 잠시 어릴 적으로 나를 이끌어간다. 창가에 의자 십여 개와 독서대 4개가 놓여 있다. 지하 민속전시실을 둘러본 뒤 2층으로 올라갔다. <산골카페>다. 수제 돈가스를 비롯한 볶음밥, 피자와 커피, 차를 마시며 창 너머의 풍경을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 느낄 수 있다. 카페 구석구석에는 각종 작품이 진열되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산청 산골박물관에서 바라본 풍경

 

옥상에 올라 양계장을 품은 풍경을 구경했다. 바람이 싱그럽다. 가을 햇살이 깊어가는 가을 산과 들을 넘어가고 있다. 잠시 숨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쁜 일상 탓에 계절의 변화조차 알지 못한 해 쫓기듯 살아왔다. 그리고 가만히 귀 기울여 우리가 미쳐 놓치고 지나친 물건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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