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특리 동의보감촌을 찾아

바야흐로 떠날 때다! 가을, 어디로든 떠날 때다. 성큼 다가온 가을을 즐기기 위한 특별한 방법을 찾아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특별한 동네를 9월 20일 찾았다.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면 경남 산청군 특리에 있는 동의보감촌이 딱이다.

경복궁 근정전을 닮은 동의보감촌 동의본가 동의전에 이르자 마치 임금이라도 된 양 기분이 좋다. 기와 담장 아래 하얀 구절초가 소담하게 피었다. 

▲ 산청 특리에 있는 동의보감촌 전경

 

동의전 뒤 북쪽 산기슭에 있는 가락국 제10대 왕의 능이라 전하는 ‘전(傳) 구형왕릉’에서 유래한 왕산이 있다. 왼편으로는 산봉우리가 붓끝을 닮았다는 필봉산이 감싸고 있다.

 

▲ 산청 동의보감촌 동의본가에 있는 동의전

 

동의전 누대로 올랐다. 돌로 만든 말 조형물이 입을 꽉 다물고 큰 눈망울로 바라본

다. 천정이 뚫린 근정전과 달리 동의전은 기체험을 할 수 있도록 3층으로 나뉘었다. 먼저 명상 체험할 수 있는 건물답게 들어서자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쪽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을 살짝 벌리고 천천히 호흡을 5회 반복해 숨을 토하며 내 안의 스트레스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라는 명상법이 적혀 있다. 가만히 앉아 들숨과 날숨을 5회 반복하자 평안해진다.

 

▲ 동의전에서 바라본 동의보감촌

 

3층 온열 체험장으로 올라갔다. 먼저 3층 높이에서 바라보는 특별한 동네 특리의 마을 전경이 시원한 구름 조각과 함께 밀려온다. 우엉차로 구수하게 마음을 적셨다. 앉은 상 한쪽에는 모래시계가 있다. 여유를 가지기 위해 차를 마시면서 모래시계를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했다. 급한 내 마음과 달리 모래시계는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온열체험 등을 30분 단위로 체험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여느 모래시계보다 조금 더 크고 느리게 내려간다.

 

▲ 동의전 3층에 있는 온열 체험장

 

‘빨리, 빨리’에 익숙한 내 조바심에서 30분도 견디기 어렵다니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온열체험장 긴 의자에 몸을 뉘었다. 발부터 배까지 따뜻한 열기가 전해진다. 뒤로 손깍지를 하고 누워 천정을 바라보자 ‘천지가 공막 하여 아무런 징후가 없는데도 이곳은 만물이 태어나려는 기운으로 삼 연 하도다’라는 상량문이 띈다. 만물이 태어나려는 기운을 받고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랫목처럼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중에 위로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지난다. 얼마나 누웠을까. 약초 내음이 코를 맑게 한다. 향기 주머니 만들기 체험장에서 사용하는 당귀며 박하, 용뇌, 팔각, 천궁이다. 향긋한 당귀에 쌈 싸먹을 생각에 괜스레 침이 고인다. 맑은 향내에 코는 더욱 평수를 넓히자 창 너머 구름처럼 하늘을 둥둥 떠다닌다. 하늘빛처럼 마음도 푸르다.

 

▲ 동의전 뒤편에 맞닿은 127톤의 귀감석은 신비로운 기 체험 바위다.

 

온열체험을 끝내고 건물을 나와 기체험장으로 향했다. 동의전 뒤편에 있는 무게 127톤의 귀감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 아래 좋은 일이 모두 적혀 있다는 이곳에서 모두 신비로운 체험을 바라며 기운을 빌었다. 귀감석과 맞닿은 동의전의 화려한 단청과 맞물려 공포와 살미, 첨차가 일렁이는 파도처럼 기운을 북돋운다.

 

▲ 동의전의 화려한 단청과 맞물려 공포와 살미, 첨차가 일렁이는 파도처럼 기운을 북돋운다.

 

귀감석에서 다시 석경으로 올랐다. 가는 길에 기가 잘 통한다는 문을 지나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사춘재 정자에 이르렀다. 정자 지붕은 붓다를 상징하는 탑 모양을 하고 있다. 댕강나무들이 올라가는 길을 하얗게 밝힌다. 좋은 기를 받으려는 사람들의 이마가 바위에 닿은 부위가 만질만질한 석경에는 벌써 여러 사람이 기 체험 중이다. 석경 뒤편에는 등골나물이 거제에서 놀러 왔다는 할머니 두 분을 내려다본다.

 

▲ 석경 뒤편에 핀 등골나물.

 

기를 받고 내려가는데 조그만 약수터 근처에 사람들의 바람이 하나하나 쌓여 있는 돌무지를 만났다. 지난 9월 12일과 19일 지진에도 무너져 내리지 않고 견딘 모양이다. 맨드라미와 일가가 되는 개맨드라미가 내려오는 계단 끝에서 반긴다.

 

‘허준 순례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전망대에 이르렀다. 순례길 옆으로 아직 구절초는 하얀 꽃을 피우지 않았다. 9월 30일부터 10월 10일까지 열리는 산청한방축제 기간에는 비밀정원 같은 동의보감촌의 구절초 꽃동산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을 수채화를 그릴 모양새다.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밀려오는 시원한 바람 사이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황금빛 거북이 등 위로 햇살이 따사롭게 지나간다.

 

▲ 산청 동의보감촌 내 한의학박물관 내부.

 

각종 약초와 동의보감 발간 과정 등을 살필 수 한의학박물관은 한걸음 내딜 때마다 건강과 행복이 쌓인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 선생은 직접 소변 맛을 본 경험을 쓰기도 했단다. 일본의 제8대 쇼군인 도쿠가와 오시무네가 역병을 퇴치하고 사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동의보감』 25권을 간행한 사연도 엿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 주제관으로 가는 길에 포인세티아, 포체니아가 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주제관 앞에는 하얀 빙수를 닮은 설악초가 잠시 한낮의 무더위를 잊게 한다.

 

▲ 산청 동의보감촌 내 한의학박물관 내부.

 

동의보감촌은 눈길 머물고 발길을 끄는 아주 특별한 동네다. 가쁘게 쉼 없이 걸어오며 지친 우리에게 잠시 숨 고르고 또 걸어갈 기운을 얻는다. 지친 마음에 쉼표를 그리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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