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구석구석] 함양 상림공원

위로가 필요로 한 나를 위해 이 가을 훌쩍 떠나고 싶다면 경남 함양 상림으로 가자. 누군가 못내 그리워지는 이 가을, 붉은 마스카라 칠한 여인의 속눈썹처럼 요염한 유혹에 즐겁게 넘어갈 수 있다. 붉은 물감을 확 뿌려 놓은 듯 붉게 빛나는 꽃무릇 레드카펫에 이르면 이 세상의 중심에 선 기분을 느낀다.

▲ 함양 상림공원 들머리 고운광장에 있는 금호미손.
▲ 연잎들은 비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방울방울 고운 이슬을 만들어 제 몸 한가운데도 모으고 깜냥보다 많으면 쏟아내곤 했다.

민족의 명절 추석 다음 날 아침부터 비가 주적주적 내렸다. 경남 함양 상림공원에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로 붐볐다. 근처 비 내리는 하늘을 향해 호미를 힘차게 움켜쥔 <금호미손>이 있는 고운광장에 차를 세웠다.

함양 상림공원 들머리에 자리한 고운광장에도 산책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연밭에 연잎들은 비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방울방울 고운 이슬을 만들어 제 몸 한가운데도 모으고 깜냥보다 많으면 쏟아내곤 했다. 연밭을 지나 작은 개울을 지나 천년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온통 붉게 물들었다. 사방이 석산이 붉은 카펫을 깐 듯 붉게 빛났다.

▲ 폭 80~200m, 길이 1.6km로 약 21만㎡(6만3000평)의 면적의 경남 함양 상림은 지금 붉은 물감을 확 뿌려 놓은 듯 붉게 빛나는 꽃무릇으로 가득하다.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함양 상림은 폭 80~200m, 길이 1.6km로 약 21만㎡(6만3000평)의 면적의 상림은 신라 말기 진성여왕 때 함양 태수를 지낸 고운 최치운 선생이 위천이 자주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한 인공 숲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계명대학교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는 최치원 선생이 조성한 인공림 아니라 자연림이라고 했다. 숲의 가치를 깨닫고 지키고 가꾼 것이라고 했다.

여하튼 숲은 대홍수로 둑의 중간이 잘려나가 숲은 상림(上林)과 하림(下林)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다시 마을이 점차 커지면서 하림은 없어지고 현재의 상림만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숲은 천년 넘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각종 풍상을 겪은 셈이다. 상림에는 100~500년 된 느티나무, 신갈나무, 이팝나무, 층층나무 등 120종 2만여 그루의 활엽수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키 큰 나무인 활엽수 밑으로는 멍석딸기, 복분자딸기, 인동 등이 숲의 식구로서 더불어 살고 있다.

▲ 무리를 이루어 핀다고 ‘꽃무릇’이란 별칭으로 더 유명한 석산은 상사화가 아니다.

무리를 이루어 핀다고 ‘꽃무릇’이란 별칭으로 더 유명한 석산은 상사화가 아니다. 상사화가 칠월칠석 전후로 잎이 진 뒤에 연분홍이나 노란 꽃이 피는 데 반해 석산은 추석을 전후로 꽃이 핀다. 꽃이 진 뒤에 잎이 나와 꽃과 잎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열매도 알뿌리만 번식한다.

▲ 석산은 추석을 전후로 꽃이 피는데 꽃이 진 뒤에 잎이 나와 꽃과 잎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열매도 알뿌리만 번식한다.

단풍도 이보다 고울 수 없다. 가느다란 꽃줄기 위로 여러 장의 빨간 꽃잎이 한데 모여 말아 올린 자태가 마치 빨간 우산을 펼친 것 같다. 폭죽처럼 핏빛 꽃망울을 일제히 터뜨린 꽃무릇은 숲으로 걸어가는 걸음을 가볍게 한다.

석산보다 내 마음이 먼저 더 빨갛게 익어간다. 단풍 들어도 이렇게 곱고 붉게 빛날까. 붉고 고운 빛깔에 취해 그네 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약수터에서 먼저 시원하게 물 한 사발로 꽃 멀미를 달랬다. 굵은 모래를 깔아놓은 땅은 사각사각 내 걸음에 맞장구를 친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중년의 사내가 팔짱을 낀 여인이 꽃무릇을 가리키며 곱제라고 묻는 말에 퉁명스럽게 내지른다.

▲ 석산보다 내 마음이 먼저 더 빨갛게 익어간다. 단풍 들어도 이렇게 곱고 붉게 빛날까.

숲길 양옆으로 빨간 우산처럼 가느다란 꽃줄기 위로 여러 장의 빨간 꽃잎이 한데 모여 말아 올린 자태로 아주 불게 열렬히 반기는 통에 황송할 뿐이었다. 꽃 밖으로 곱게 치켜 올라간 수술들은 붉은 마스카라 칠한 여인의 속눈썹처럼 요염하다. 활짝 핀 요염한 눈길을 한몸에 받는 까닭에 마음은 뛰고 걸음은 술 취한 듯 갈지자다.

 

▲ 연등처럼 기다랗게 산책길 따라 핀 꽃무릇을 따라가다 이은리 석불에 이르렀다.

여기 산책 나온 모두가 갈지자다. 여기에서, 저기에서 카메라로, 휴대폰으로 사진 찍기 바쁘다. 연등처럼 기다랗게 산책길 따라 핀 꽃무릇을 따라가다 이은리 석불에 이르렀다. 고려 시대에 만든 석불의 은은한 미소에 절로 합장한다. 마음이 평안해지자 저 너머 싸리나무꽃이 진분홍빛깔이 곱게 눈에 들어온다.

▲ 함양 상림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귓속에 졸졸졸 젖어든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귓속에 졸졸졸 젖어든다. 개울 사이 징검다리로 아이는 기어코 지나가며 맑은 물에 발을 담근다. 개울에서 부는 바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폭죽이 소리 없이 붉게 내려앉은 곳, 내 마음도 함께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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