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거기서는 우리말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겨루고 있다. 얼굴을 아는 이들이 나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아파트가 서너 번 흔들린다. 웬 일인가 싶다. 특보가 쏟아지지 싶었는데 아직은 아니다. 조금 있으니 특보가 뜨기는 뜬다. 지진이 났다는 것이다. 지진이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천재(天災)와 인재(人災), 이 두 낱말이 머리를 스친다.

지진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천재를 당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텔레비전에서는 지진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영상들이 쏟아진다. 정확히는 지진 앞이 아니라 자연 앞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진도 5.1과 5.8 그리고 이어진 여진들이다. 지진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래선지 놀란 가슴들에는 아직도 여진으로 울렁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진은 사람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다만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사회 체제가 절실히 필요함을 새겨야겠다.

지진이라는 천재는 인재를 동반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자연 앞에서 겸손하지 않은(못한) 인간이 저지른 것들 때문이다. 제일 먼저 원자력발전소를 생각했다. 진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원전이 안전해야 할 터인데, 과연 안전할까? 경주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있는데, 거기는 안전한가? 문제의식이 없지는 않겠지만 평소에는 없이 못사는 것-엄밀히는 없이도 사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고 본다-들이 천재와 더불어 엄청난 인재로 닥칠 수 있음을 제대로 알고 살아야 한다.

고층 아파트에서 느끼는 흔들림은 더 심했던 모양이다. 황급히 거기를 벗어나려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사람도 있었단다. 지진 대비에 얼마나 소홀하고 미숙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쌓음이라는 문명이 천재에는 얼마나 취약하고 미미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으면 한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 다시 그 높은 층까지 올라가는 이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얼마나 오래 갈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전쟁이 나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지진은 천재지만 전쟁은 가장 흉악한 인재가 아닌가? 이번 지진으로 사망자가 없다고 하니 다행하지만 일어나지 않는 것만 못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진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와는 달리 전쟁은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전쟁이라는 인재는 막아야 한다. 지진과 비교도 되지 않을 피해가 생긴다.(지진으로 인한 피해와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전쟁은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 피해가 막심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무기를 쌓는 야만이 벌어지고 있으니, 뭐라고 해야 할까?

한 시간 더 지나고 여진이 이어질 즈음, 텔레비전 아래에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글자가 꼬리를 문다. 사태가 얼마나 긴박한지 알 수 있겠다. 그래야지 싶은 글자 행렬도 있지만 그럴까 싶은 글자 행렬도 없지 않다. 그 가까이에 있는 원전들에는 피해가 없고 정상 가동되고 있단다. 참으로 발 빠른 알림이다. 그렇게 기민한 대비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 장면에서 2014년 4월 16일 오전, 지금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진하게 남아 있는 그 자막 ‘전원 구조’가 생각난 것은 왤까? 일단 지르고 보자는 건 아니라야 한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지진 대피 요령’이 보인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하는 연습은 필요하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대피하는 요령을 알고 신속하게 대피하여 피해를 줄이는 훈련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지진에 견딜 수 있는 시설물이라야 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 더 우선하는 일이 있다면 ‘전쟁 회피 방안’이 아닌가 싶다.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무기는 전쟁을 억제하는 정도만으로 넉넉하다. 그럼에도 전쟁을 전제한 무기를 갖추려는 야만은 거부해야 한다.

천재는 그 피해를 줄이고, 인재는 그 존재를 거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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