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뜰 수 없었다. 하늘은 시리도록 새파랗다. 바람은 등을 떠밀 듯 시원하게 불었다. 등 떠밀 듯 시원하게 부는 바람 덕분에 소담소담 걷기 좋은 산청 남사 예담촌 돌담길을 찾아 8월 29일 나섰다.

진주-산청 일반국도에 차가 오르자 곧 명석면 소재지를 지나자 급할 게 없는 나는 차를 세웠다. 용호정원으로 걸어갔다. 담벼락의 주황색 능소화를 지나자 연꽃들이 파란 하늘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진분홍빛 색을 더해가고 벌들이 향을 찾아 날아들었다. 연잎에는 밤새 내린 물방울들이 알알이 맺혀 움푹 패인 곳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당그랑, 당그랑’ 용호정원 한가운데 있는 용호정자 풍경 소리가 곱다.

 

▲ 산청 백마산과 적벽산

 

용호정원을 지나 산청군 신안면과 단성면을 가르는 경호강을 지나자 차를 세웠다. 햇살은 그림자를 친구로 만들어 적벽산과 백마산을 올려다보는 단성교 가운데로 함께 이끈다. 시원한 바람에 아름다운 야트막한 산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눈 닿는 곳 어디를 보아도 어깨를 맞댄 돌담이 아름다운 산청 예담촌

단성면 소재지를 지나 지리산 천왕봉 쪽으로 다시 차를 몰아 굽이진 고개 하나 넘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 1호로 선정된 남사예담촌이 나온다. 마을에 들어서자 고즈넉한 돌담길이 시작이다.

눈 닿는 곳 어디를 보아도 어깨를 맞댄 돌담이다. 한 집의 담을 따라가면 또 다른 집 담이 이어져 어깨동무한다. 돌담길에 햇살이 드리운다. 햇살은 돌담의 그림자와 함께 경계를 이룬다. 돌담이 속삭이는 햇살을 따라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걸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럴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김영랑)’

 

▲ 산청 남사 예담촌을 굽이도는 돌담길에서는 시간도, 바람도 천천히 흐른다.

마을을 굽이도는 돌담길에서는 시간도, 바람도 천천히 흐른다. 담장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능소화의 춤이 아름답고 돌담길에 붙어 더불어 박자를 맞추는 정성 어린 사랑이 느껴지는 범부채꽃도 예쁘다.

 

▲ 산청 남사예담촌 사양정사

솟을대문 예사롭지 않은 사양정사 고택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대문 앞에 있는 650년이 넘은 감나무 앞에서는 숙연해지기도 했다. 어깨를 맞댄 돌담길에서는 길이 막히는 돌아 나오는 수고조차 즐겁고 신난다. 담쟁이덩굴과 함께 돌아다니다 이씨 고택 앞 일명 부부나무라 불리는 회화나무를 만나기도 했다.

 

▲ 백의종군 중이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하루 묵고갔다는 산청 이사재

 

뚜꺼비를 닮은 바위가 반기는 실개천을 건너면 백의종군 중이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하루 묵고 갔다는 이사재가 나온다. 이사재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한때 전쟁의 영웅이라 칭송받았던 처지에서 한순간에 역적으로 몰린 장군의 마음을 헤아렸다.

이사재에서 ‘개구쟁이 길’을 따라 걸었다. 돌담길과 또다른 둘레길이다.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실개천 물소리가 맑게 노래한다. ‘배움의 길’이 지나자 소금을 뿌려놓았다는 봉평 부럽지 않은 메밀꽃들이 반긴다. 하얀 메밀꽃들 사이로 진분홍색 배롱나무가 이어달리기하듯 피어 걸음을 가볍게 하고 노란 달맞이꽃이 그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 산청 예담촌에는 돌담길과 또다른 둘레길이 함께한다.

 

실개천을 따라 핀 배롱나무꽃이 이끄는 데로 걷다 보면 저만치 기와집 두 채가 보인다. 조선 시대 선비이자 독립운동가 면우 곽종석 선생의 생가 ‘이동서당’과 ‘유림독립기념관’이다.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평화회의에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한 ‘파리장서’를 주도한 면우 곽종석 선생과 137명의 유림들의 결기를 느낄 수 있다. 아쉽게도 찾은 날은 월요일이라 기념관을 휴관이었다.

 

▲ 구불구불한 돌담으로 이루어진 정감 어린 산청 남사 예담촌은 엄마 품속처럼 따뜻하다.

 

다시 실개천을 건넜다. 마을 곳곳에 있는 숨터 의자에 앉았다. “따악~” 캔커피를 따는 소리와 함께 청량하게 구름이 흘러간다. 마음도 시원하게 흐른다.

구불구불한 돌담으로 이루어진 정감 어린 마을은 엄마 품속처럼 따뜻하다. 층층이 쌓아 올린 돌담은 포근하다. 걸음조차 느릿느릿 걷게 한다. 느린 행복이 조붓한 고샅을 따라 구불구불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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