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배움터에서 신난 아이들 보면서…어른들 불안은 고정관념이라 깨닫게 돼

무수한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 행렬에 넋이 빠진다. 끔찍한 폭력과 폭행 사건 앞에서 기가 막힌다. 무지렁이 깜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부정부패와 불의에 분노하고 절망한다. 세상은 온통 미세먼지에 휩싸여 마음 편히 길을 나서기도 두렵다. 살아있음이 살아있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아슬아슬한 곡예타기이다. 불안하고 또 불안하다. 그야말로 지금 우리는 <불안증폭사회>(김태형 저)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무슨 희망과 꿈을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 여태전 남해군 상주중학교 교장

점심시간에 1학년 준혁이와 종백이가 교육사랑방(교장실)에 찾아왔다. 또래들보다 키와 몸집이 작아 '땅꼬마 4인방'이라는 애칭을 가진 아이들 중 두 명이다. 담임선생님을 찾았는데 교무실에 계시지 않아 사랑방부터 불쑥 들어왔다. 평소에도 종종 들러 함께 차도 마시고 과자도 나눠먹는 친한 사이다. 두 아이는 시간대별로 촘촘하게 작성한 체험학습 계획서를 내밀면서 진지하게 말문을 열었다.

"쌤, 부산 해운대에서 모터쇼 하는데, 다음 주 화요일(7일)에 체험학습 가려고요."

"모터쇼?"

"네, 엄청 큰 행사예요."

"왜 하필 연휴 끝난 다음 날 가려고 그래?"

"연휴 때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그래도 수업을 통째로 빠지면서까지 꼭 가야 할까?"

"네, 우린 꼭 가고 싶어요. 부모님 허락도 받았습니다."

"간다면 당연히 부모님도 같이 가야지."

"아닙니다. 우리 둘만 가려고요."

나는 이 순간 멈칫하며 금방 '꼰대'의 기질이 발동했다. 아니 평일에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그것도 부모님도 대동하지 않고 저희들끼리만 체험학습을 간다고? 그 복잡한 곳에 저희들끼리만 가서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원래 체험학습은 가족들과 함께 가는 거야. 너희들은 아직 어리잖아."

"에이 쌤, 우리끼리 얼마든지 갈 수 있어요. 우리는 금요일마다 학교 마치면 버스타고 집에 가고, 매주 일요일 저녁에 버스타고 기숙사에 들어오잖아요. 꼭 부모님들이 데려다주지 않아도 우리끼리 잘 다니잖아요. 왜 굳이 부모님들이 함께 가야 합니까?"

준혁이는 단호하게 따져 묻듯이 나를 몰아세운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나 버스를 타고 몇 시쯤 도착하여 구석구석 구경하고 몇 시쯤 돌아올 것이며, 그때그때마다 부모님과 담임선생님께 인증샷을 찍어 보내 안심시켜드리겠단다. 나는 내심 놀랐다. 3월 입학식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훌쩍 커서 당당하게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나서다니. 그렇구나. 중학교 1학년은 결코 어린애가 아니구나.

아이들은 새로운 배움 앞에서 이렇게 신나고 즐거워하는데, 우리 어른들은 왜 이렇게 불안해하지? 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 독립하여 행복한 삶을 기획하며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배움 그 자체는 본래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오늘의 학교는 경쟁과 불안을 조장하며 오히려 배움의 기쁨과 즐거움을 앗아갔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교육에도 정답이 없다. 하지만 허구한 날 '삶이 없는 지식'을 붙들고 정답만 강요하는 오늘의 교실은 아이들에게 답답할 뿐이다.

'부산국제모터쇼' 홈페이지를 검색해보았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학교를 넘어선 학교'가 더 큰 배움터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벌써 눈치채버렸다.

오늘 아침 전교생 바다산책 시간에 종백이와 준혁이랑 함께 걸으면서 모터쇼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땅꼬마'가 아니다. 나날이 배움이 즐겁고 신나는 '작은 거인들'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 틈에서 나의 고정관념과 무지를 성찰하며 새로운 삶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이 나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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