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소풍 댕기던 ‘굴바우’ 가근방에 만들어진 예쁜 ‘습지‘에를 가노라니 산책로 곁의 물가에 찔레꽃이 한창입니다. 고우면서도 아릿한 꽃입니다. 그 희디흰 모습이 자아내는 애잔함은 본시 그 꽃이 품고 있는 느낌 우에 이연실과 장사익의 노랫말이 더해져 가슴에 박힌 탓도 있을 것입니다. 두어 번 시늉만 했지 제대로 비가 내린 지는 꽤 됐음에도 강에 물은 마르지 않고 도톰히 흐르니 보기에 더 좋습니다. 강 건너 칠봉산엔 녹색의 그라데이션이 펼쳐지는 사이에 띄엄띄엄 이팝나무인지 산딸나무인지가 허옇게 웃고 섰는 것이 여럽긴 하지만 밉지 않습니다.

강 따라 천수교쯤 내려가면 배건네 강 가생이로 구조물이 세워지고 있는데 쭉쭉 진도가 늘어나는 것이 눈에 두드러집니다. 망진산 아래 차 두 대 겨우 오가는 난간 밑에도 강 따라 산책로가 생기고 그것이 희망교까지 이어진답니다. 찻길만 트이는 것이 아니라 ‘마실 길’이 남강을 건너 남북으로 트이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작년 시월의 예술제에 그 강을 에워싸고 둘러쳐졌던 가림막은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행사의 홍보와 안내를 위해 부분적으로 만들어진 설치물이 아니라 아예 강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는 ‘벽’을 세운다는 것은 놀라운 발상입니다. 허구한 날 흐르는 것이 강이고 수십 년을 오가며 봐왔던 강입니다. 비록 한시적이지만 그 강을 가려 못 보게 하겠다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었건 참 어이없는 짓이라 여겨졌습니다.

강을 막느라 쇠붙이로 뼈대를 세우고 비닐 천을 두르고 했던 까닭이 모두 돈 때문이랍니다. 여러 가지 수치를 들먹이는데 가늠키 난삽하나 요지는 “도무지 재정자립의 건덕지가 없는 어려운 ‘시’ 살림을 꾸리자니 중앙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이리저리 쉽지 않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자체수입을 늘려야 할 형편이다. 유료화니 뭐니 하는 것은 그래서 벌이는 고육지책이다.”라는 주장입니다.

하긴 ‘돈’이라면 말문이 턱 막힙니다. 그 징그러운 물건이 들먹여지는 것은 도리 없이 닥친 현실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구시렁거리며 지켜볼 밖에 없었습니다.

축제가 끝나고 진주시는 2015년 유등축제의 유료화가 성공적이었다는 계산서를 내놨습니다. "전체 축제 수입은 32억 원이며, 이중 입장료는 22억 원, 입장료 외 수입은 10억 원"으로 축제 재정 자립도가 43%에서 80%로 높아졌다"고 자평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가림막 덕분에 22억을 벌었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내 어리숙한 계산속으로도 과연 그게 성공인가 하는 생각이 단박 들었습니다. 내 손에 쥔 것은 없으되 나랏돈 억억거리며 날아다니는 소리는 주야장천 숱하게 듣습니다. 그런지라 드는 생각은 간 크게도 “고작 그 돈 얻으려 다리 두 개와 강 가생이에 볼썽사나운 천 쪼가릴 걸쳐 두드려 막았나” 하는 불퉁가지가 이는 것입니다.

입장료에 포함해 받지 않은 부교의 통행료와 진주성의 입장료 등을 역산하고 성안에 볼거리를 좀 늘이는 방법 등으로도 그 정도는 메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이 부분에 관해서는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의 진주유등축제 ‘르포’에 알뜰히 정리돼 있습디다.) 

김주완 : 남강유등축제 유료화 성공을 위한 충고

그리고 몇 %니 몇억이니 하며 숫자로 드러나는 것만이 모두겠습니까. 보이지 않게 새나가는 것이 적잖습니다. 진주서 ‘굿’을 벌이면 인근 대곡 원지 사천 삼천포까지 여관방이 동나고 식당 술집이 모처럼 생기가 넘치곤 했는데, 유료화 소식에 외지인들이 오다 돌아가고 와서도 당일치기로 끝냈다는 웅성거림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검색어에 ‘진주유등축제’를 넣고 두드리면 올라오는 사진들은 아이를 목말 태워 가림막 너머를 보여주는 아버지, 자전거를 세우고 찢어진 가림막 틈으로 강을 내려다보는 노인, 두 팔만 치켜들고서 보이지 않는 그 너머를 찍는 중년의 사진기 등이 주르르 펼쳐집니다. 연출 논란이 있는 엎드린 ‘할머니 위에 올라선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그게 모두 ‘진주 값’이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그간 좋이 쌓아 왔던 고도의 대외적 이미지는 나빠지고 토박이들의 자존심에도 상처를 줬습니다.

민주주의가 어떻고 삼권분립이 저떻고 해도 이 나라는 대통령 한마디면 3부가 벌벌 기고, ‘도’에는 지사가 최고라서 뭐든 지쪼대로 하는 판입니다. ‘시’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동네 시장은 능력 출중해 전임이 어질러 놓고 간 빚을 착실히 갚았고 행정 수완을 인정받아 중앙 정부로부터 큰 상을 여럿 받았답니다. 그러므로 독선적이고 ‘스피치’ 터프(!)하다는 관장에 대한 불만쯤이야 소소하니 덮여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가림막’ 문제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좀 시끄럽습니다. 개인이나 소집단의 이해가 걸린 일이 아님에도 시민 일반이 시의 행정 결정에 대놓고 반대하고 나선 경우는 드문 일입니다. 시장도 얼마간 부담을 느낀 것인지 여론 수렴의 과정으로 연 것이 ‘진주남강유등축제 발전방안 시민토론회’ 같습니다. 하지만 그 모양도 가히 탐탁해 보이진 않습니다. 대립한 사안을 두고 벌이는 토론에선 양측이 동수의 주장자를 내세워 논거를 다툼이 공평합니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패널 구성부터 치우쳐 보입니다. 토론회란 형식을 빌려 시장의 논지를 유포하려는 시도가 나쁘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장을 포함한 찬성 측 4명과 반대 측 2명의 토론은 물리적으로도 공정할 수 없는 배분이었습니다.

가림막을 설치하는 이유 중 하나로 다리 난간의 안전문제를 덧붙이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몇 사람이 강 내려다보느라 망가질 위험이 있는 것은 가림막으로 막아서 될 것이 아니라 난간 자체의 부실함을 손봐야 할 일입니다.

시장이 가림막을 칠 수밖에 없는 유료화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들먹인 “축제일몰제, 축제 총액한도제, 보통교부세 패널티…”등 전문용어가 빼곡해 독해가 난감하니 대거리가 어렵습니다. 다행히 시의원인 강민아 의원께서 시원하고 여물게 해독해 주었습니다. (아래 동영상 참조) 

강민아 : 남강유등축제 가림막게이트, 그 진실을 밝히다

‘가림막’을 계기로 시끄러운 소리가 일었지만 한편으로 그 논란은 살림을 맡은 시장님과 진주시 공무원 여러분의 고충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 일입니다. 유료화의 불가피성을 막무가내로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흑자 재정을 위해 벌이는 충정을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다만, 축제를 통한 수익증대가 ‘가림막으로 남강을 가리는 방법’만이 유일하다는 생각은 재고했으면 합니다.

▲ 홍창신 / 자유기고가

오월도 하순에 접어듭니다. 그래도 축제가 열리는 시월까지는 넉 달 남짓의 시간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시민의 힘을 믿고 다시 지혜를 모으면 좋겠습니다. 되돌아가거나 둘러간다고 관장의 위엄이 떨어진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한대수 형은 늙으니 소리가 더 좋습니다. 함께 듣고 싶습니다. 

한대수, 행복의 나라로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