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 나리는 길 위의 파라다이스

  찬바람이 조금씩 멎고 있다. 연분홍으로 빛나던 벚꽃은 어느새 싱그러운 연두색 잎들로 가득하다. 봄이 진해질수록 그 짙음을 함께 하듯 걸음걸이도 느려진다. 따뜻한 햇살 속에서도, 두텁게 내리는 봄비 아래에서도, 각기 다른 봄의 향기를 코 끝에 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걸음을 앞선다.

  4월에는 시네마틱한 음악이 가득 담긴 음반을 선물 받았다. 사카모토 류이치, 히사이시 조를 잇는 일본 포스트 클래시컬의 차세대 주자로 알려진 아티스트, 타카히로 키도(Takahiro Kido)의 음악 활동 1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이다. 그 주인공인 [The New World]가 내게로 온 것은 벚꽃이 한창이던 4월의 초입 무렵이었다. 눈발이 흩날리는 일러스트가 커버를 장식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벚꽃잎'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수록된 음악도 봄의 기운과 꽤나 잘 어울렸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CM과 영화 영상작품의 음악을 제작하며 명성을 쌓고 있는 아티스트답게 그의 음악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그가 준비한 '새로운 세계'의 첫 곡으로는 'Hong-kong Rhapsody'가 마련되어 있다. 초반에 라디오 주파수 같은 기계 효과음이 들리는데 그래서 더욱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는 기분이 든다. 피아노가 찰랑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스트링 사운드가 겹친다. 비단결 같은 사운드가 이어지는 'Fountain'은 햇살 아래서 몽글몽글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닮았다. 숲 속에서 차분하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 같기도 하다. 중반부부터 함께 들려오는 분수대의 물 소리, 주위로 날아온 새와 그곳을 지나가는 방울 소리, 사람들의 소리가 음악에 장면을 더한다. 'Migratory Birds'는 청명한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들의 움직임을 담은 트랙이다. 트레몰로로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가 철새들의 제각각 다른 날갯짓 같다.

  지금까지의 세 트랙이 차분한 장면을 들려주었다면 이번 트랙부터는 여행의 기분이 조금 더 진해진다. 'Train To Paris'를 통해서는 파리의 화사한 날씨를 음악으로 느껴볼 수 있다. 여행을 떠난 사람의 들뜬 마음까지도 함께 표현되었다. 'Banana Ship'은 바나나 보트의 빠른 움직임이 그대로 반영된 듯 활발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일렉트릭의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었다.

  'Letters From Leyte'는 필리핀의 레이테 섬에서 온 편지에 대한 곡이다. 중간에 함께 들리는 빗소리 덕분에 감정이 고조된다. 어떤 편지였는지는 몰라도 그것을 받아든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상상이 간다. 마지막에 증기를 내뱉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사람은 왠지 기차가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편지를 손에서 놓았을 것 같다.

  기차는 트랙을 건너 스위스 체르마트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Seven Days In Zermatt'는 아름다운 풍경 아래의 행복한 기분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원곡이 페이드 아웃 되고, 곡의 후반부에서는 긴 오르간 소리와 함께 어떤 소녀의 허밍이 공명한다. 스위스의 웅장한 산맥을 감도는 소리처럼 아득하다.

  파도 소리가 등장하는 여덟 번째 트랙 'Hope'는 주위로 번지는 희망을 차분하게 표현하고 있다. 광활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기분이 든다. 마지막 트랙인 'Curtain Call'에 이르면 명랑하고 쾌활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겨울에 봄이 찾아와 모든 것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지금의 계절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마지막 곡에 따뜻한 기운이 가득해서 음반을 끝까지 다 듣고 나니 개운하고 맑은 기운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음반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꼭 끝까지 듣기를 권해드린다. 음악으로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상쾌한 기분 전환을 이루어내고 싶다면 [The New World]와 함께 시간을 보내도 멋진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타카히로 키도를 위한 사운드그래피. 이번 음반을 듣는 내내 밝고 선명한 녹색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미니 스쿠터를 타고 달리다가 문득 올려다 본 나뭇잎들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여름이 불쑥 찾아올 때까지, 마음까지 환해지는 봄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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