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자는 정해져 있고 너는 참가만 하면 돼

대학입시는 입학사정관제 도입 이후 수능 점수, 교과 성적으로 결정되던 과거에서 벗어나 학생 개인의 개성이나 잠재성, 노력을 중시하는 시대로 변화했다. 학생들은 이제 내신 성적뿐만 아니라 수상 실적, 진로 활동, 봉사 활동 등 다양한 이력을 통해 자신의 전공적합성과 잠재력을 증명해야 한다. 또한, 몇 년 전부터 학생부 위주 전형(학생부 교과/종합 전형)이 대폭 확대됨에 따라 학교생활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가 입시의 키포인트가 되면서 소논문 대회, 탐구 발표 대회 등의 교내의 키고 작은 대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 학교마다 학생들에게 상을 주기 위한 각종 대회들이 열린다. 사진은 ‘자율주제 탐구활동 발표대회’ 상장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된 정책은 학교 현장에서 일명 ‘스펙’ 쌓기 용으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대회들을 개최하고, 지나치게 많은 인원에게 상을 남발해 빈축을 사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케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2015년부터 ‘중·고교 교내 상 지침’을 바탕으로 교내 상에 대한 기본 규범을 마련했다. 학년 초 학교교육계획에 연간 대회 실시 계획을 사전에 공지해야 하며, 대회별 수상자 또한 참가인원의 20%로 제한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침에도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학교 내에 ‘상 몰아주기’가 존재한다는 의혹이 학생들 사이에서 제기된 것이다. 성적이 뛰어난 일부 학생들이 모범상, 경시대회 우수상과 같은 교내 상을 휩쓸다시피 수상하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학생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 들여지는 이러한 문제는 최근 진주 모 고등학교에서도 ‘상 몰아주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바로 ‘자율주제 탐구활동 발표대회’ 때문이었다. 지난해 12월 1,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치러진 이 대회는 관심 분야가 비슷한 학생들이 스터디 그룹이나 방과 후 자율동아리를 조직하여 탐구활동을 하고, 이때 생겨나는 다양한 결과물들을 정리, 발표해 지식을 공유하고 건전한 가치를 나눌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시행된 교내 대회였다.

문제는 이 대회에 실제로 참가한 학생이 1, 2학년 특별반 학생들뿐이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교육부의 교내 상 지침에 따라 대회 참가 인원의 20%에게만 상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수상한 팀은 1학년 6팀, 2학년 6팀 총12팀이었다.한 팀이 3명 전후였으니, 한 학년에 약 18명이 수상한 셈이다. 특별반이 한 학년 당 20명 전후임을 고려했을 때, 특별반 학생의 대부분이 상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교내 상 지침'에 언급된 것처럼 대회의 특성을 고려해 학교장의 재량으로 수상비율을 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참가인원의 대부분에게 상을 주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해서도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또한, 기존의 교내 대회들은 조회시간이나 종례시간을 통해 담임교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이 대회에 대해서는 학생들은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특별반이 아닌 학생들에게 참여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확인 결과 이 대회와 관련된 안내장이 각 반에 배부되긴 했으나 담임교사나 담당교사의 안내가 전혀 없었으며, 대부분의 학생이 이런 대회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또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된 글을 확인해보았으나 해당 게시글은 조회 수가 50회를 채 넘지 않았고, 학생들이 학교 홈페이지를 잘 방문하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글을 읽고 대회를 알게 된 학생도 극히 소수일 수 밖에 없다.

‘상 몰아주기’는 반칙, 우수학생 차별대우 ‘비교육적’

사실 일반적으로 학교가 우수한 학생들을 차별 대우하는 것은 오래된 관례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의 조사에 따르면, 최상위권 학생만의 특별반을 편성해 차별적 혜택을 제공하거나 성적 우수자에게만 기숙사 혜택을 주어 스파르타식으로 훈육하고 심지어는 학교 급식까지도 성적순으로 배식하는 믿기 어려운 사례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교육현실을 감안하면 학교를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다. 당장 명문대 합격자 수에 따라 우수한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로 분류되는 현실 속에서 다른 학교보다 서울대 합격생을 더 배출해야 하고, 인서울대학 진학생을 더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또한 명예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편을 찾다보니 비교육적인 선택조차 아무렇지 않게 시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 몰아주기'는 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 스스럼없이 반칙을 행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다수의 학생에게 부러움과 위화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정직하게 노력한 학생에게 상이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 몰아주기’뿐만 아니라 많은 학교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는 우수 학생 차별 대우가 상당히 비교육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목고, 자율형 사립고 등에 우수한 학생이 몰리고 있는 현시점에서, 다수의 일반계고등학교의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라 눈 감기엔 많은 학생에게 학교에서부터 차별을 가르치고, '성적 카스트'를 만드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하는 교육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