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소녀를 끌고 갔다.

조선에 살던 수많은 소녀들이 공기놀이를 하다가, 들판을 거닐다가, 초가집에서 밥을 먹다가 끌려갔다. 영문도 모른채 기차에 오른 소녀들은 관동군의 성노예가 되었다.

영화 <귀향>은 이러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24일에 개봉한 영화 <귀향>은 누적관객수가 300만명을 넘기고 있으며,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진주에서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개봉일에 맞춰 상영에 들어갔으며 CGV와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도 상영중이다.

영화는 일상을 빼앗긴 어린 소녀들이 죽고 살아도 한이 맺힌 삶을 씻어내는 씻김굿으로 마무리된다. 

현실에서 외면 받는 그래서 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는 생생한 피냄새가 난다.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세상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떠넘겨버린 죄책감 말이다.

정이란 것, 우정이란 것, 같은 상처를 가진 것 그래서 같이 걸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지만 죽음은 결국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더한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한 명씩 소녀들을 죽이던 총살과 화형의 현장이 그랬다.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가 나눔의 집에서 그린 작품이 그것을 말한다. 살아남아 돌아 온 몇 안되는 소녀들은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8일 세계여성의 날 뉴욕시의회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이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합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백하다. 가해자 일본이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잘못에 대한 사과는 문제에 대한 정답이다.

영화 <귀향>은 제목처럼 조선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소녀,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해 한을 남기고 떠난 할머니, 그리고 사죄를 요구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외침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고향이 고향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정민이 일본군에 끌려가기 전 어머니는 단칸방에 정민을 부른다. 정민. 자신의 이름 세자 잊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씀. 거창 한댓골이라는 마을을 잊지 말라는 말씀. 아비, 어미 이름을 기억 하라는 말씀. 무사히 돌아오길 비는 마음이었을 테다.

어머니가 정민에게 쥐어준 괴불 노리개가 그것을 말한다. 그 거리, 그 공기, 그 숲을 잊고 싶지 않아도 폭력적 환경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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