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를 샀다. 회사에서는 위험하지 않느냐, 할부금은 감당이 되느냐 걱정이 많았지만 간신히 메꾸는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기자는 이걸 잘 타고 다닌다. 차를 뽑았으니 출퇴근에도, 취재에도 참 돌아다니기도 좋다.

걱정의 대상이던 스쿠터는 교통수단을 넘어 취재 수단으로 최근 격상됐다. 회사는 이걸로 동네 곳곳 누비라는 취재 미션을 내줬다. 누구를 만날까, 고민에 고민이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잘못 생각이 꽂힌 초짜 기자는 어디 도망 안 갈 동네가게를 들락거릴 생각밖에 안 떠올랐다. 일단 나가보자. 지난 2일 상대동으로 무작정 출발했다.

▲ 쌔끈하고 편리한 스쿠터. 배달용으로도 많이 쓰이는 혼다 벤리 110. 기자가 직접 타보니 이 차는 실주행 평균 연비가 리터당 40km를 넘는다. 주행습관 따라서 더 올라갈 수도 있을 듯하다.

상대동 홈플러스에서 출발해 도동천로를 따라 자유시장 근처로 향했다. 거기서 먼저 잉어빵 할머니를 만났다. 봄동 같은 야채도 팔고, 과자도 팔고 있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기자에게 “젊은 사람들한테 과자는 이게 잘 나가지.” 하며 달콤한 과자를 가리켰다. 할머니는 이따금 오는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면서 기자에게 거저로 잉어빵에 그 잘나간다는 인기 과자까지 거듭 쥐어줬다. 따끈하게 데워진 캔커피까지 받았는데, 이미 점심식사를 하고 온 터라 배가 불러 계속해서 사양했지만 결국 받고 말았으니 고마운 마음에 보는 앞에서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 기자가 양껏 얻어먹은 과자들. 달콤하고 바삭하고.
▲ 납작한 봄동. 지나가던 행인에게 팔리자 박스에 보관돼 있던 것으로 금세 자리는 다시 채워졌다.

노점 뒤에는 ‘유치권 절대 사수’라는 글귀가 곳곳에 쓰인 철제 울타리로 폐쇄돼 있는 건물이 있다. ‘한보리치프라자’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던 대형상가 건물인데 시공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거의 다 지어놓고도 쓰이지 못해 이제는 당연하다 싶을 만큼 오랫동안 잠겨 있는 건물이다. 그 부도라는 게 IMF 국가구제금융신청의 신호탄이 됐던 한보 부도사태였으니 거의 20년 가까이 방치된 곳이겠다.

▲ 자물쇠로 잠긴 한보리치프라자 안쪽을 살짝 들여다 봤다. 스산한 모습.

창도 문도 갖춰지지 않은 건물의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1000평이 넘는 이곳 일대(경매에 올라오는 정보로는 토지면적이 3909.7㎡다)만 둥둥 떠올라 사람에게 닿지 않는 곳에 놓인 것 같다.

이곳은 좀 논다는 사람들이 담 넘고 들어가 밤새 술을 부어 마시고 불놀이도 벌였던 어둠의 회합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여전히 방치되고 있으니 아직 그럴지도 모른다.

▲ 알림글은 이미 읽을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했다. 오랫동안 방치됐다는 게 여실이 드러난다.
▲ '유치권 점유중', '유치권 절대 사수'. 거의 다 지어진 건물은 하염없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만 있다.

그리고 그 건물 아래, 할머니 노점과의 사이에는 버려진 것 같은 군고구마 굽는 기계가 보였다.

“젊은 총각이 장사하다가 이제 날 따뜻해서 안 된다고 갔어. 기계도 남해에 있는 본가에 갖다 놓을 거라대.”

오늘 개학했다는 삼현여중 학생 한 명이 잉어빵을 한 봉지 사갔다. 곧 동네에 있는 종합학원에 수업을 들으러 간다고.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지만 동네 친구들은 자주 들르는 노점이었다.

▲ 군고구마는 다음 겨울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받은 음식 꾸역꾸역 다 먹고는 인사하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목욕탕 굴뚝이 우뚝 솟은 게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유시장 안에도 하나 있고 홈플러스 방면에도 하나… 하대동 방면에는 어렸을 적 다녔던 목욕탕에도 굴뚝이 있는 게 저 멀리 어렴풋이 보였다. 근처 건물에 가려진 시야 때문이지 아마 사방팔방에 더 있었을 것이고, 진주 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을 거다.

과거에는 난방 연료가 매연이 심한 나무나 벙커C유가 많이 쓰였으니 수십 미터 높이의 굴뚝이 필요했다고 한다. 지금은 값도 싸고 대기오염도 덜한 LNG 도시가스가 도시 곳곳에 들어오고 있으니 이제 필요 없는 굴뚝이 대부분이다. 사실 기자는 아주 어렸을 때 혹시나 봤으려나 몰라도 목욕탕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굴뚝은 그저 상징처럼 남았을 뿐 대부분의 목욕탕에서 쓰이질 않는 시설이다. 이것도 짓다 만 건물처럼 오랜 세월 방치되고 있으니 나중에 휙 쓰러지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 차도로 걷는 사람들과 시장 물건을 싣고 주정차 하는 차량 때문에 정신 없는 자유시장 옆 도동천로. 그리고 높이 솟은 목욕탕 굴뚝.

자유시장 옆 도동천로는 항상 길이 좁다. 편도로 2차선이지만 상대동에서 하대동으로 이어지는 복개로까지, 다른 대로들 사이에서 대각선으로 뻗은 이 길은 자유시장 근처에 오면 좁디좁은 골목길처럼 변하곤 한다. 도로 위를 걷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있고, 차선 변경도 잦아서 위태로워 보일 때가 많다. 한편으로는 자유시장 공영주차장은 적자라며 민간위탁이 진행되는데도 이런 번잡한 시장 옆 갓길에는 주정차 차량이 넘쳐나니 참 이해 못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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