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민의 에나로] 진통제 이야기

가장 많이 소비되는 비처방약 중 하나가 진통제이다. 일반적으로 접하는 진통제는 해열진통제와 소염진통제로 구분된다.

해열진통제는 아스피린과 타이레놀이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열을 내리고 두통을 없애는 약이다. 소염진통제는 염증을 가라앉히면서 통증을 없애는 약이다. 염증 때문에 통증이 나타나는 관절통 치통 근육통 등에 사용된다.

해열진통제와 소염진통제를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손자 배 아플 때 게보린 잘라서 먹인다는 할머니도 있는데 해열진통제 소염진통제 구분 없이 사용하는 정도는 애교다.

어쨌거나 지금은 소염진통제에 얽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 약국에는 1주일에 한 번씩 들러서 소염진통제를 정기적으로 구입하시는 단골이 몇 분 있다.

언젠가부터 깨끗한 등산복 차림에 가방을 등에 맨 60대 초반의 남자분이 무릎과 어깨가 아프다며 1주일에 한 번씩 들러 소염진통제를 구입해 가신다. 나는 너무 자주 드시는 것 아니냐? 등산하시냐? 골프하시냐? 하면서 말을 걸어보았으나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다.

몇 개월 전 작심을 하고 물어 봤다. 속은 쓰리지 않으시냐? 등산이나 골프하시면 다 나을 때 까지 좀 쉬셔야한다. 병원은 가보셨느냐? 하고.

“나는 막노동을 합니다. 등산이나 골프는 할 형편이 안 됩니다. 병원에 몇 번 가봤는데 지금 하는 일을 그만 두랍니다. 저는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루에 한두 알씩 이 약을 먹으면 그래도 견딜 만합니다.”

나는 갑자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요즘도 그분은 매주 1번씩 방문 하신다.

또 다른 한 분은 여자 분이다. 역시 소염 진통제를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분이다.

언젠가부터 해질녘이면 들러서 손목이 아프다며 소염진통제를 정기적으로 사 가신다. 생선가게를 하는 모양이다. 비린내 난다고 가까이 오지도 않고 멀리서서 소염진통제를 전해 받고 빨리 나가신다.

파스를 발라 보라고 하니 일하는데 방해되고 파스 냄새 나면 손님이 싫어하기 때문에 먹는 걸로 달랜다.

얼마 전부터 나는 출근길에 그분을 가끔 본다. 그 분은 신안초등학교와 아파트단지 사이에 형성된 난전에서 생선을 다듬어 파는 일을 한다. 항상 손목이 아플 수밖에 없다.

우리의 질병과 건강이상은 직업과 생활습관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그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30대 때 나는 진통제 너무 많이 드시지 마라, 쉬어가면서 일하시라고 말하곤 했다. 50이 된 지금 나는 감히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어가면서 일할 수도 없고, 지금 하는 일을 당장 그만둘 수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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