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흑돼지와 김치찌개

“이모~ 여기 생고기 4인분이요~”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기운이 스친다. 왁자지껄한 풍경이 마치 잔칫집 못지아니하다. 5~10분 정도 불판을 달구며 기다리고 있으면 파절임, 쌈무, 묵은지, 두부, 양파무침, 등 상차림이 준비된다.

준비되는 동안 양파무침을 한 젓가락 집어먹는다. 산초가루가 섞였는지 살짝 알싸한 느낌이지만 익숙해지면 그만한 중독성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고기와 궁합이 잘 맞아 올 때마다 몇 접시 더 주문하게 된다.

▲ 흑돼지 생고기, 약간의 후추과 참기름이 가미되어 있다.

불판이 화끈해질 때 쯤 생고기 입장! 산청에서 기른 흑돼지 생고기를 주문 즉시 썰어주시기에 항상 형태가 일정하진 않지만 그 투박한 매력이 이 곳을 자주 들르게 만든다. 한 가지 더 특이한 점은 주문한 생고기엔 항상 약간의 후추와 참기름이 뿌려져 있다는 것이다.

▲ 노릇하게 구워져가는 이 자태를 보라!

이번 불판을 지휘할 영광은 내가 안았다. 얼른 집게를 집어 같이 나오는 돼지비계로 불판에 기름칠을 한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고소한 향취가 퍼진다. 가장 뜨거운 중앙에 오와 열을 맞추어 생고기를 올리고, 조연인 묵은지와 마늘도 하단에 모셔둔다. 고기가 익으면서 나오는 돼지기름이 묵은지와 마늘에 스며든다.

성공적이었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새우젓에 찍어 입에 넣는다.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입 속 가득 퍼진다. 거기에 양파무침까지 곁들이니 무아지경에 이른다. 크게 고기 한 쌈 입에 넣은 동생의 표정에도 행복감이 눈에 띄었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으신다. 간만에 가족 전체가 모여 맛있는 음식, 그 동안의 일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기를 먹고 나면 항상 마무리를 무엇으로 장식할까... 고민이 되는데 제대로 된 김치찌개가 당긴다는 동생의 하소연에 이번에는 결정이 원활하게 진행됐다. 

▲ 맛있게 끓어가는 김치찌개.

고기를 다 먹고 불판을 치운 후 못 다한 담소를 나누고 있으니 김치찌개가 등장했다.

김치, 두부, 돼지고기, 당면 등 평범해 보이지만 좋은 고기와 묵은지가 푸짐하게 들어가니 국물이 다른 식당보다 한 층 더 진한 느낌이 든다. 콩나물과 김가루가 뿌려진 그릇에 밥 한 공기를 털어 넣고, 걸쭉한 김치찌개를 한 국자 퍼 넣어 비벼먹는다.

▲ 진한 김치찌개와 콩나물, 김가루의 완벽한 조화.

새콤한 김치찌개에 무심한 듯 고소한 김가루는 신의 한수이다. 아삭한 콩나물도 사이사이에 숨어서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김치찌개를 마저 마무리하고 한 층 두툼해진 배를 두드리며 커피를 뽑았다.

밀려오는 행복감을 만끽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진솔한 대화를 나눈 듯 하여 괜스레 기분이 더 좋아진다.

[산청흑돼지] 경상남도 진주시 봉곡동 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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