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로 유명한 전주로 가자, 아냐 통영 동피랑 벽화 마을로 가요.”

12월 6일, 모처럼의 일요일. 가족 나들이는 떠날 장소를 결정하지 못했다. 느즈막하게 일어난 까닭에 멀리 가기도 부담스럽다. 결국, 내가 관광 안내자가 되기로 하고 경남 산청으로 떠났다. 동피랑 못지않은 벽화 마을이 있고 한옥마을처럼 고즈넉한 멋이 있기 때문이다.

▲ 산청 생비량면 장란마을 장란보 앞에 있는 공원.

“아이고 어지러워~ 그만 그만~”

아내의 비명에도 아이들은 신났다.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 긴 의자형 그네에 앉은 아내는 어지럽다며 서둘러 그네에서 내렸다. 결국, 큰 애가 앉고 막내가 밀었다. 그네 앞에는 합천에서 시작해 산청을 돌고 돌아 남강으로 흘러가는 양천강이 흐른다. 진주에서 출발한 우리 가족은 산청 생비량면 장란마을에 이르러 멈췄다. 이 마을 앞에는 장란보라는 도깨비가 있다.

생비량면의 유래와 도깨비가 만들었다는 장란보의 전설을 소개한 안내판에 가족은 웃는다. 도깨비가 어디 있느냐는 믿지 못한다는 표정들이다. 그네 타면서 앞으로 흐르는 강과 보를 구경하고 마을 속으로 갔다.

▲ 통영 동피랑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천사 날개가 있다면 이곳 산청 장란마을에는 나비가 있다.

마을 이정표 옆, 고욤나무를 보자 아내는 반가운 얼굴에 열매를 따 먹는다. “어릴 적 맛있게 먹었다.”는 아내는 아이들에게도 권하지만 낯선 열매에 뒤로 엉거주춤 물러난다. ‘장란벽화마을’이라고 그려진 벽화 앞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막내는 사진 찍기 싫다며 도망가려하는데 아내가 붙잡는다. 중학교 다니던 큰 아이와 둘째도 저 나이 때 카메라를 피했다.

▲ 영화 <가필드>에 나오는 통통하고 귀여운 고양이 가필드처럼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따라 하자 막내도, 아내도 가필드가 되었다. 따라쟁이 우리 가족은 웃었다.

골목으로 들어가자 벽화들이 담벼락에 가득하다. 동피랑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천사 날개가 있다면 이곳은 나비가 있다. 아내가 노란 나비가 되었다. 귀엽다. 어여쁘다. 벽화를 구경하느라 걸음을 빨리할 수 없다. 특히 어릴 적 추억을 담은 벽화 앞에서 아내는 신났다. 아이들은 엄마의 어릴 적 추억을 벽화와 이야기로 신기한 듯 바라본다.

영화 <가필드>에 나오는 통통하고 귀여운 고양이 가필드처럼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따라 하자 막내도, 아내도 가필드가 되었다. 따라쟁이 우리 가족은 웃었다. 문풍지 바른 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하는 이 빠진 개구쟁이의 인사에 나도 무릎을 구부려 손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 목화 시배지가 있는 경남 산청은 목화밭은 쉽게 볼 수 있다.

마을 뒤편 밭에 하얀 목화밭이 나왔다. 솜털이 따뜻하고 포근하다. 마을을 나와 5분 거리에 있는 도전리 마애불상군으로 향했다. 나무 계단 덕분에 벼랑에 쉽게 올랐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은 실망했다. 큰 바위에 새겨진 불상인 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작은 불상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스쳐 지날 수 있다.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의 불상이라는 설명에 그렇게 오래되었느냐며 놀란다. 우리 가족은 천 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당시 사람들의 바람을 담은 불상을 구경하는 셈이다.

▲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다시 계단을 내려오는 데 강에서 하얀 왜가리가 날아들자 큰 아이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마애불상군을 나와 생비량면과 신안면 경계에 있는 한빈식육갈비식당 뒤 솔숲으로 갔다. 이곳 식당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거나 국밥을 먹으려고 했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오는 동안 먹은 까닭에 점심은 생략하고 바로 솔숲으로 향했다.

▲ 산청군 신안면 장죽리 솔숲에서 바라본 양천강.

몸짱에 관심이 많은 큰 아이는 야외 헬스기구에 힘쓰기 바빴고 둘째는 전통 그네에 앉아 놀기 바빴다. 누각 아래 양천강 벼랑에 만들어진 전망대 긴 의자에서 앉았다. 조금 전에 지나온 도전리 마애불상군과 장란마을과 양천강 풍경을 구경했다.

▲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에는 고즈넉한 돌담길도 좋지만 장승배기 공원도 정겹다.

솔숲을 나와 문대리 삼거리에서 신등면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교문마저 기와로 얹혀 있을 정도로 고가와 돌담이 아름다운 단계리에 차를 세웠다. 돌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푸근했다. 근처 슈퍼에서 군것질거리를 사들고 합천 방향으로 5분 정도 더 차를 몰았다. 신등중고등학교 앞에 섰다. ‘장승배기공원’이다. 연못은 온통 갈색빛으로 물들었다. 고즈넉한 풍경은 걷기 좋았다. 이런 곳이 있었느냐는 표정들이다.

▲ 산청 장승배기 공원에서 즐겁게 내달리는 아이와 아내, 우리 모두는 웃었다.

아이들이 연못 주위를 시합하듯 내달린다. 막내와 아내도 달리기 시합을 한다. 자신을 추월해 저만치 내달리는 아이 뒤를 따라 뛰는 아내는 웃는다. 아이도 웃는다. 나도 웃는다. 연못가 개망초도 우리를 보고 웃는다. 모처럼의 가족나들이, 모두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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