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적벽산을 찾아서

경남 진주와 산청을 오가며 늘 보았다. 그런데도 가보지 못했다. 12월 2일 뜻하지 않게 낮 근무가 밤 근무로 바뀌면서 출근했던 산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갔다. 출퇴근길, 시속 80km의 국도가 주는 속도감에서 벗어나자 새로운 즐거움이 따라왔다. 집과 직장의 점과 점 사이를 벗어나 적벽산의 숨은 매력에 빠진 날이다.

산청군 신안면사무소에 차를 세우고 산으로 올랐다. 입구에는 적벽산,백마산 등산로 안내판이 먼저 나온다. 166m인 적벽산에서 286m인 백마산으로 해서 334m인 월명산까지 둘러보는 코스다. 굳이 이 모두를 다 돌아볼 필요도 없다. 걸음이 멈춘 곳에서 돌아오면 그뿐이라 생각하니 걸음은 가볍다.

▲ 적벽산, 백마산 등산로

텃밭 배추는 통통하니 아삭 씹힐 생각에 침이 고인다. 잦은 비에 낙엽들은 ‘뽀스락’ 하는 소리가 없다. 푹신한 카펫처럼 부드럽게 밟히는 느낌이 좋다. 비석 없는 무덤이 3기 있다. 2기는 나란히 있고 1기는 다소 떨어져 있다. 무덤을 지나자 대나무 숲이다. 사이사이 면소재지 오가는 차와 사람들이 보인다. 대나무 숲을 지나자 소나무들이 나온다.

▲ 적벽산에 오르자 곧 대나무 숲과 수북한 낙엽 쌓인 길이 나온다.

가파른 곳에 철제 계단이 놓였다. 계단을 넘어서자 다시 소나무들. 바위들이 계단처럼 튀어나온 곳을 올랐다. 다시 철제 계단. 계단 위에 서자 맞은편 엄혜산과 아파트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세 번째 철제 계단. 지나자 부드러운 흙길. 한쪽에 노란 페인트칠을 한 긴 의자가 2개가 놓여 있다.

올라온 지 불과 20여 분. 잠시 앉아 숨을 골랐다. 음료수를 꺼내 마셨다. 야트막한 산에 오르면서도 숨이 가쁜 것은 운동 부족 탓일까. 낮고 작은 산도 산은 산이라고 위안하며 다시 걸었다. 긴 의자 옆으로 난 좁다란 길을 따라갔다. 단성고등학교와 단성면 들판이 나온다. 바위들 옆으로 빙 둘러 가는 길은 좁다랗고 발아래는 가팔랐다. 경호강이 설핏 보이는 이 길은 왠지 여느 사람들이 가는 산길이 아닌 느낌이 들었

▲ 경호강을 향한 적벽산 벼랑에는 다양한 형태의 바위가 있는데 큰 바위 얼굴도 그중 하나다.

이 길이 아닌가 싶었다. 나무를 헤치고 지나온 길이 아쉽지만 돌아서 나왔다. 갈 때는 몰랐는데 다시 돌아 나올 때는 큰 바위 얼굴이 보인다. 각진 턱을 가진 큰 바위 얼굴은 코가 아주 오뚝하고 볼이 두툼하다. 이마는 넓고 시원하다. 큰 바위 얼굴을 지나자 원숭이를 닮은 바위가 나온다. 원숭이 얼굴 모양의 바위 아래는 달마대사처럼 볼록한 배를 쏙 빼닮은 바위가 붙어 있다.

▲ 적벽산 적벽정에서 바라본 단성교와 단성면 일대.

 

왔던 길을 돌아 긴 의자로 왔다. 우리가 다녀온 길옆으로 한적한 길이 보였다. 편안한 흙길을 올라가자 돌탑들이 나온다. 이제 단성교가 지리산으로 가는 길이 제법 잘 보인다. 눈을 닮은 바위, 눈을 지그시 감은 얼굴 형상의 바위가 지나가는 길을 심심하지 않게 한다. 바위들이 자연스럽게 계단을 만든 길을 따라 올라서면 더 넓은 들이 나오고 멀리 산줄기가 보인다.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구름 잔뜩 낀 날씨 속에 멀리 지리산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라보는 풍경은 아쉬움을 달래기 충분했다. 적벽정이라 적힌 정자가 나왔다. 정자 앞에서 단성교를 비롯한 단성면 들녘을 눈길이 스윽 지난 뒤 백마산을 보았다. 마치 중절모를 닮은 백마산은 진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천혜의 요새다.

▲ 백마산과 경호강

백마산은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의 전설을 간직한 산이다. 정상 부근에는 백마산성 흔적이 있다. 왜적들이 쳐들어와 성을 포위하고 성안 사람들이 목이 말라 항복할 것을 기다리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있었다. 당시 성안에 있던 지혜로운 장수가 말 한 필을 바위에서 쌀로 씻는 시늉을 하자 왜적들은 성안에 물이 많은 것으로 오해하고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저 너머 백마산의 멋진 자태에 넋을 잠시 잃었다. 정자 앞에는 ‘논어’에 나오는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 쓰인 비석이 있다. 산과 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경치에 잠시 공자 말씀이 떠올랐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물처럼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산처럼 조용하기 때문에 산처럼 산다고 했던가. 귀찮고 게으른 나는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진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물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물처럼 움직이는 것은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지혜는 없다.

▲ 적벽정에서 좀 더 올라가면 적벽산 정상이 나오는데 수북한 낙엽길이 카펫을 깔아놓은 듯 푹신하다.

그럼에도 지금 현재 내 두 눈 앞에 펼쳐진 산과 강, 들은 너무도 아름답고 좋다. 적벽산의 바위들도 멋있다. 벼랑 아래 경호강 물줄기도 맑다. 경호강이 적벽산 아래로 비스듬히 흘러오다 직각으로 남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새가 예쁘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처럼 적벽부 뱃놀이를 모방해 강에 배를 띄우고 적벽산의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얼마나 놀기 좋은 곳이면 한때 이곳이 강성군이던 시절 태수가 밤에 배를 띄워 기생을 끼고 놀면서 적벽산에서 떨어진 돌에 배가 뒤집히고 인장을 잃어버려 파직된 적도 있다고 한다.

▲ 적벽산 정상에 놓인 정상 표지석과 산신제단.

 

벼랑 위에서 바라보는 경호강의 물줄기와 들판이 주는 넉넉한 풍경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곳이 산 정상은 아니다. 야트막한 흙길을 더 올라가자 수북한 낙엽길이 나오고 정상 표지석과 함께 산신제단이 나왔다. 제단에는 그 앞에는 어느 등산객이 놓고 간 물병과 사과, 배가 놓여 있다.

단성교 0.82km, 백마산 정상 1.69km, 월명산 2.27km라는 이정표가 걸음 재촉한다. 내려가는 길에 만난 백마산과 벼랑의 바위는 아찔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이라 걸음을 곧잘 세웠다. 독수리가 마치 날개를 활짝 펴서 날아올라 가는 듯한 바위들을 지나자 올라온 길과 달리 가파른 산길이다.

▲ 신안면사무소 쪽에서 올라온 적벽산 등산로와 달린 국도 3호선과 맞닿은 임도에서 적벽산을 올라가는 산길을 찾기는 어렵다.

발아래 손바닥처럼 넓적하고 초록빛 가득한 청미래덩굴들이 갈색 사이로 얼굴이 내미는 모양새가 귀엽다. 내려오자 진주에서 산청 가는 국도 3호선과 맞닿은 임도가 나온다. 다시 적벽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찾기는 어렵다. 산악회에서 나뭇가지에 매단 리본들이 산길을 안내할 뿐 여기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안내표지판이 없기 때문이다.

▲ 적벽산 아래 옛 산청읍-신안면 2차선은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가 지난다.

산에서 내려와 백마산으로 가려다 발길을 산 아래로 향했다.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표지석이 삼거리에 나온다. 인도 없는 옛 산청읍-신안면 2차선 길을 강을 벗 삼아 걸었다. 우암 송시열이 적벽산에 새겼다는 ‘적벽’이라는 글자도 찾아보려고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그런 나에게 사위찔방이라고 더 알려진 수레나물들이 강 언저리에 하얗게 피어 반긴다.

▲ 둥글넓적한 바위에 오리떼가 앉았다가 인기척에 마치 이순신 장군의 휘하 병선(兵船)인 듯 힘차게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수레나물 너머 강에는 둥글넓적한 바위가 있는데 오리떼가 그 위에 앉았다. 인기척에 마치 이순신 장군의 휘하 병선(兵船)인 듯 힘차게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3~4m 거슬러 올라간 녀석들은 강물을 박차고 올랐다. 백마산 쪽으로 날아간다. 덩그러니 남은 바위에 나도 저 녀석들처럼 앉아 쉬고 싶었다.

▲ 적벽산 아래에서 바라본 백마산.

보랏빛 쑥부쟁이에 잠시 눈길을 주자 원지마을이라고 쓰인 큼지막한 표지석이 나온다. 신안면보다 ‘원지’로 알려진 이곳에는 이름난 맛집이 몇 곳 있다. 영화 ‘타짜’의 실존 인물이 운영하는 오리집도 있지만 우중충한 날씨에 해물 가득한 짬뽕 한 그릇 하고 싶었다. 함께 걸었던 동무가 2인분 이상만 판다는 생선구이집을 권해 그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200m도 안 되는 산이지만 적벽산에서 시선을 낚아챈 풍경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병을 금새 비웠다. 하늘이 만든 풍경 아래에 이미 취했는지 모른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