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호동 남부산림연구소에서 망성교까지 1.2km 산책로 구간에서

그냥 걸었다. 짧은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짧아서 더욱 아쉬운 가을을 붙잡고 싶었다. 가을이 주는 파란 하늘의 선물로 위로받고 싶었다. 10월 28일, 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방향을 틀었다. 경남 진주시 경상대학교병원 근처에 차를 세우고 남강을 걸었다. 진주의 팔경 중 하나인 새벼리에 새로 난 남강 산책로를 걷고 싶었다.

▲ 남부산림연구소와 망성교 1.2km 자전거도로를 포함한 산책로를 해를 안고 걸었다.

지난 9월말에 개통된 가호동 남부산림연구소와 망성교 1.2km 자전거도로를 포함한 산책로를 해를 안고 걸었다. 거미줄에는 바람에 날려왔는지 잎사귀며 곤충들이 걸려있다. 석류공원 0.9km, 진양고 1.1km 이정표가 현재의 위치를 알려준다. 아침 8시라 출근과 등교하는 사람들이 자전거로 쌩하고 다닌다. 가족들 일터로 떠나보낸 이들의 활기찬 걸음이 나를 앞지른다.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도 보인다. 그에게는 뜰채도 잡은 고기를 가둘 망도 없다. 때를 기다리는 강태공인가. 강 건너 제지공장 굴뚝의 하얀 수증기가 파란 하늘과 강에 비친다. 공장이라는 느낌 없이 주전자에 물 끊이는 듯 따뜻한 느낌이다.

▲ 강 건너 제지공장 굴뚝의 하얀 수증기가 파란 하늘과 강에 비친다. 공장이라는 느낌 없이 주전자에 물 끊이는 듯 따뜻한 느낌이다.

하얀 쑥부쟁이들이 벼랑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마지막 이파리처럼 모든 잎을 떨구고 혼자 남은 빨간 이파리가 작은 깃발처럼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 담쟁이가 붉게 물들어 여기는 ‘오메 단풍들었다.’

▲ 담쟁이가 붉게 물들었다. 여기는 ‘오메 단풍들었다.’

'오매 단풍 들겄네'/ 장광에 골불은 감잎 날러와/ 누이는 놀란 듯이 쳐다보며/'오매 단풍 들겄네.' (김영랑 시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중에서)

나지막하게 김영랑의 시 한 구절이 절로 나온다. 산책로 아래 강가의 보슬보슬 노란 양미역취가 곱다. 저기 할아버지는 뛰어가는 강아지 뒤를 따라가느라 가쁜 숨을 내몬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자 저 너머에 아파트 숲이 보인다. 새벼리 위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좁다란 길. 예전에는 이 좁다란 길로 새벼리 도로 길을 피해 남강 가를 거닐었다. 등교 시간에 늦었는지 아이 둘이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 해는 하늘에 떠 있지만 새벼리라는 벼랑이 햇살을 가려 산책길은 어둑하다.

해는 하늘에 떠 있지만 새벼리라는 벼랑이 햇살을 가려 산책길은 어둑하다. 벼랑의 바위 틈새로 생명을 틔운 나무와 풀들을 구경한다. 빨간 찔레꽃 열매가 지난여름을 기억하게 한다. 노래꾼 장사익의 ‘찔레꽃’이 떠오른다.

▲ 붉은 찔레꽃 열매가 지난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는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남부산림연구소 밑을 지날 때 깊은 숲 속의 나무의 싱그러운 기운이 강가를 걷는 나에게로 왔다. 참 맑다고 느낄 무렵 산책로의 끝이다. 상평교까지 강변 산책로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발길을 돌렸다.

▲ 강 건너 습지원의 고운 갈색 잎으로 가득한 나무 두 그루가 강에 자신의 비춰 바라본다.

까치 세 마리가 나란히 하늘을 날아 올라간다. 서쪽으로 가는 까치는 어디로 가는 걸까. 강너머 습지공원이 햇살이 곱게 드리웠다. 고운 갈색 잎으로 가득한 나무 두 그루가 강에 자신의 비춰 바라본다. 문득 이제를 세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바람은 카메라 셔터 누르는 것으로 달랬다. 강가에 발을 드리운 하얀 왜가리 한 마리 길게 목을 빼고 앞을 본다. 어디를 보는 걸까. 누굴 기다리는 걸까.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치 한 마리가 산책로 안전펜스 위에 앉았다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강 쪽으로 날아간다.

▲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된 상평교는 오가는 차들이 분주하다. 그러나 산책로는 조용하다.

왔던 길을 돌아본다.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된 상평교는 오가는 차들이 분주하다. 산책로는 조용하다. 강 산책로 위로 새벼리 길이 보인다. 4차선 차도 옆에 있는 인도로 걸었을 때도 남강은 시원하고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렇게 좀 더 가까이 남강과 함께 거니는 즐거움은 다르다. 헬멧과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의 모습이 한가롭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던 학생 한 명은 스마트폰으로 풍경을 담는다. 한가로운 남강의 풍경을 이웃들에게 전하고 기억하고 싶은 모양이다.

▲ 남쪽으로 진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선학산 전망대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다시 돌아가는 길인데 처음에는 미처 보지 못한 풍광이 엿보인다. 남쪽으로 진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선학산 전망대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담쟁이들이 붉게 아래로 내달린 모양새가 마치 까만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 같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는 담쟁이는 내 마음을 뜀박질시킨다. 빛깣이 곱다. 햇살이 부드럽다. 드문드문 붉은 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이파리들이 반갑다.

▲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빛으로 드리운 담쟁이는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 같다.

다시 지나온 길을 돌아보자 새벼리 위로 햇살이 퍼졌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파란 하늘을 선사하는 가을의 선물을 받았다. 바쁜 일상 탓에 농익는 가을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말처럼 여유가 있는 남강 산책로는 그저 거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미국의 가수이자 코미디언이었던 에디 캔터의 말처럼 새벼리 빠른 길에서 보지 못한 경관을 여기서 즐긴다. 도시와 맞닿은 새벼리 아래 남강 산책로는 초보자도 부담 없이 다채로운 눈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여유가 있는 남강 산책로 그저 거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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