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 전통소싸움 경기장을 찾아서

만사가 귀찮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축 처진 기운을 차리기 위해 화끈하게 맛있는 낚지 볶음으로 원기를 회복하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싸움만큼 재미나고 힘을 안겨주는 것은 없다. 더구나 두 눈 부라리며 두 마리의 황소가 ‘쩌어억’ 소리를 내며 이마를 부딪치는 힘 겨루는 소싸움만큼 화끈하게 원기회복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 진주시 판문동 소싸움 전용 경기장인 진주 전통소싸움경기장에서 10월 1일부터 6일까지 123회 전국민속소싸움 대회가 열린다.

 

하늘이 하늘거리는 시월의 둘째날 경남 진주시 진양호 근처에 있는 진주 전통 소싸움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장 문을 통해 누런 황소가 고삐를 쥔 소 주인의 손에 이끌려 들어선다. 양쪽 소 주인과 함께 입장한 황소의 머리를 소 주인들이 부딪히자 왕방울 같은 눈알을 부라리며 두 마리는 기를 쓰고 싸운다. 뿔과 뿔이 얽힌 황소 두 마리가 힘을 겨루는 모양새는 서양의 투우(鬪牛)처럼 살벌하지도 격렬하지도 않다. 짧은 앞다리에 힘을 불끈 주고 뒷다리로 팽팽하게 버티던 두 마리 중 한 놈이 머리를 빼서는 바로 상대 소 이마를 들이박았다. 마른 장작이 갈라지듯 “쩌어억” 소리에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두 마리의 소가 이마를 부딪쳤다. 그러고 잠시 뒤 한 마리가 맞닿은 이마를 빼고는 줄행랑을 쳤다.

▲ 짧은 앞다리에 힘을 불끈 주고 뒷다리로 팽팽하게 버티던 두 마리 중 한 놈이 머리를 빼서는 바로 상대 소 이마를 들이박았다.

 

이긴 소는 우두커니 주인 곁에 서 있다. 오히려 승리의 기쁨에 주인이 흥에 겨워 춤을 춘다. 소싸움의 판정은 간단하다. 권투처럼 1, 2라운드도 없고 축구처럼 전반전과 후반전도 없다. 한쪽이 무릎을 꿇거나 넘어지거나 투지를 잃고 도망가면 끝난다.

▲ 소싸움의 판정은 간단하다. 권투처럼 1, 2라운드도 없고 축구처럼 전반전과 후반전도 없다. 한쪽이 무릎을 꿇거나 넘어지거나 투지를 잃고 도망가면 끝난다.

 

수십 분 또는 몇 분의 짧은 시간에 도망가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소싸움의 유래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삼국시대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 기념잔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동북아 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왜국이 이곳의 소를 많이 잡아먹어 소들을 위령하기 위해 시작했다는 설, 고려 말엽부터 소먹이는 초동들이 산에서 풀을 먹이면서 소끼리 싸움을 붙여왔다는 자연발생설도 전한다. 수소가 암소를 차지하기 위해 위세를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소싸움에 사람들이 개입해 현재에 이른다는 다양한 유래가 있다.

▲ 이긴 소는 우두커니 주인 곁에 서 있다. 오히려 승리의 기쁨에 주인이 흥에 겨워 춤을 춘다.

분명한 것은 현재와 같은 소싸움은 경남 진주가 발원지다. 오래전부터 진주 소싸움은 남강 백사장에서 펼쳐졌다. 소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싸움소가 일으킨 모래 먼지는 백사장을 뒤덮고 관중들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진주가 아니면 소싸움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청도를 비롯해 의령, 함안, 합천, 밀양 등 영남지방에서 매년 소싸움을 구경할 수 있다.

▲ 1910년대 진주 남강 둔치에서 열린 소싸움.

 

오래전부터 진주 소싸움은 남강 백사장에서 펼쳐졌다. 소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싸움소가 일으킨 모래 먼지는 백사장을 뒤덮고 관중들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다. 일제 강점기에는 겨레의 울분을 발산하는 장이었다. 남강 백사장을 뒤덮은 많은 관중들의 함성에 놀란 일본인들은 감히 남강을 건너지 못했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으로 많은 군중이 모이는 진주 소싸움도 일제에 의해 중단되었다가 양질의 소를 빼앗기 위한 조선총독부의 축우 장려정책으로 1923년 다시 열렸다.

▲ 체급을 나눠 싸우는 소싸움의 기술은 들치기, 목 치기, 머리치기, 밀치기, 뿔 걸이, 연타가 있다.

 

진주 소싸움은 해방 이후에도 맥을 이어오다 1971년 전국 대회로 계승 발전시켰다. 2001년부터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3월부터 11월까지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 토요일 토요상설 소싸움 대회를 천수교 밑 남강 둔치에서 열었다. 그러다가 2006년 3월 현재의 민속 소싸움 경기장이 만들어지면서 이곳 판문동 경기장에서 매주 토요일 소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진주 소싸움 대회는 1897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123회를 맞이했다. 진주 소싸움 대회는 전국 소싸움 대회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한다. 체급을 나눠 싸우는 소싸움의 기술은 들치기, 목 치기, 머리치기, 밀치기, 뿔 걸이, 연타가 있다.

 

○ 들치기 : 머리를 상대 소의 목에 걸쳐서 공격하는 기술로 순발력과 노련미와 체력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 목 치기 : 상대 소와 대치하다가 뿔로 목을 치는 기술로 서로 탐색과 신경전을 펼칠 때 이어지는 공격기술이다.

○ 머리치기 : 정면에서 서로 머리를 부딪치는 기술로, 소싸움 기술의 기본이며 싸우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기술이다.

○ 밀치기 : 서로 머리를 맞대고 밀어붙이는 기술로 소싸움 기술의 기본이며 튼튼한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밀어붙여야 하므로 동물적 감각이 동시에 요구되는 기술이다.

○ 뿔 걸이 : 상대 소의 뿔을 뿔로 걸어 누르거나 들어 올리는 기술로 힘과 기술이 동시에 필요한 적극적인 공격기술이다.

○ 연타 : 뿔치기 등으로 상대 소를 흩트려 놓은 다음 자세를 가다듬기 전에 계속 머리치기로 공격하는 기술로 승률이 높다.

○ 옆치기(배치기) : 상대 소의 옆으로 돌아 옆구리 쪽배를 공격하는 기술로 성공하면 경기가 마무리될 정도로 결정적인 공격기술이다.

▲ 소싸움 전문 해설가로 유명한 강동길 씨의 거침없는 입담은 소싸움의 재미를 더해준다.

 

10월 1일부터 시작한 진주 민속소싸움 대회는 6일까지 진주시 판문동 민속 소싸움 경기장에서 무료로 열린다. 소싸움 전문 해설가로 유명한 강동길 씨의 거침없는 입담은 소싸움의 재미를 더해준다. 싸움소 300여두가 대거 출전했다.

 

▲ 뿔과 뿔이 얽힌 황소 두 마리가 ‘푸우~푸우’ 가쁜 숨을 내며 콧구멍으로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힘과 힘이 부딪치는 광경 속에 진주의 힘을 온몸으로 느낀다.

 

뿔과 뿔이 얽힌 황소 두 마리가 ‘푸우~푸우’ 가쁜 숨을 내며 콧구멍으로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힘과 힘이 부딪치는 광경 속에 진주의 힘을 온몸으로 느낀다. 한국의 전통이 흐르는 소싸움 장의 하루는 그래서 힘차고 에너지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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