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다. 눈을 뜨니 일곱 시다. 일어나지 않고 드러누운 채 머리를 굴린다. 어디로 튈까. 밥을 대충 챙겨 먹는다. 옷을 갈아입고 긴 우산 하나를 챙긴다. 비가 올 듯 말 듯해서다. 비 오면 우산으로 쓰고 비 안 오면 지팡이로 씀 직한 튼튼한 우산을 울러매고 대문을 나선다. 비봉산을 목적지로 정한 것이다. 평화교회 건너편에서 오전 10시에 252번 버스에 오른다. 공설운동장 지나 상봉아파트 지나 진주여고 앞에서 내린다. 길 건너편에 ‘블랑제 파티쉐’라는 빵집이 보인다. 요즘, 근로자 불법 파견 문제로 시끄러운 ‘파리바게트’ 같은
직장생활 25년 만에 가장 긴 연휴를 맞이했다.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추석이어서 안산 처가에 가는 일도 종요롭고 때맞춰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10.1.~15.)도 어쩔 수 없는 유혹이다. 세 명, 단촐한 가족끼리 어디든 언제든 갈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흔드는 대부분의 것을 포기한다. 고등학교 2학년 아이는 연휴를 지난 뒤 10월 11일부터 그다음 주 월요일까지 무려 나흘 동안 중간고사를 본다고 한다. 주말까지 끼워서. 어떤 부모는 그러든 말든 자식을 내버려두고 해외여행을 가더라고 아이는 말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처가에
가을이 왔다. 무더운 지난 여름날에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낙엽과 함께 감성도 쌓여간다. 무르익은 가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너무 먼 대상으로 여겨지는 미술 작품의 세계 속으로 길을 나서보라고. 10월 18일 진주시립 연암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진주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이성자의 예술과 삶’ 시간 속에 문신과 이성자 미술관을 가는 탐방시간이 있었다. 하늘은 비라도 내려칠 듯 꿉꿉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길 나서는 시간만큼은 날씨와 상관없다. 연암도서관에서 출발한 버스는
‘진주에 가면’ 막차를 타고 싶다는 이광석 시인의 시처럼 ‘아침이슬보다 더 고운 진주여행’은 지금 절정이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 어화 등등(燈燈) 불 밝혀 온통 붉다. 10월 10일 진주 시민의 날 저녁에 진주성 건너편 망경동 주택가에 차를 세우고 남강으로 걸었다. 촉석루 정면을 바라보는 중앙광장에 이르자 곳곳에는 노랫가락과 함께 정다운 이야기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난다. 간이좌탁을 펼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지만 붉게 물든 강은 훌륭한 안줏거리다. 해학과 풍자의 거리라고 적힌 대숲은 이미 지역 오광대 등이 여기저기 대나무와 어우러져
기다림은 길었다. 드디어 기다린 날이 왔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간절히 빌어야 무엇이 있다면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으로 가볼 일이다. 나 역시 간절한 바람을 안고 음력 3월 3일(3월 30일) 명석면으로 떠났다. 진주에서 산청으로 가는 국도 3호선에서 명석면사무소 이정표를 따라 들어갔다. 명석면 사무소 앞에 세워진 내 간절한 바람을 닮은 주인공이 먼저 반긴다. 우는 돌, 명석(鳴石)이라는 유래를 간직한 자웅석(雌雄石)을 닮은 돌이지만 지날 때 마음속으로 빌었다. 지금은 남양 홍씨 재실로 사용하는 광제서원이 나온다. 서원은 처음에는 홍
낯설다. 3월 10일 초행길이라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길을 찾지만, 못내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사천 곤명면 곤명중학교 지나 하동 옥종면 쪽으로 향하자 ‘고성산 동학로’라는 도로명 주소가 곳곳에 나온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북방마을 못 미쳐 이정표가 나온다. 가파른 길이지만 다행히 시멘트 포장길이라 승용차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5분 정도 올라가자 우뚝 솟은 탑이 나온다. ‘동학혁명군 위령탑’이다. 횃불 모양의 탑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나를 내려다본다. 탑 아래에는 천도교의 둥글고 붉은 표시가
‘공부에도 때가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은 스물여덟에 고향 합천 삼가에서 아버지 삼년 상을 치른 뒤 경남 의령 자굴산 절에서 학문에 정진했다고 한다. 공부는 젊은 시절을 놓쳐버리면 기초를 쌓기 어렵다고 여겨 산으로 들어가 공부했다고 한다.남명 조식의 발자취를 따라서 - 의령 자굴산과 명경대 햇살 좋은 3월 11일,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의령의 진산(鎭山)인 자굴산을 찾았다. 자굴산은 합천 쪽에서는 병풍처럼 보이지만 의령읍을 향해서는 산세는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변한다. 칠곡면 소재지에서 산 쪽으로 들어가면 내조리 내조마을이 나온다.
두툼한 겨울 잠바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봄 냄새 맡아보라는 봄바람의 권유에 햇살이 드는 자리로 3월 5일, 봄 마중을 떠났다.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 중심가를 벗어나 웅석봉 쪽으로 들어가다 멈췄다. 산청청소년수련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 건너편으로 걸었다. 붓 끝을 닮았다는 필봉산(筆峯山)이 보이는 곳에 송귀준 시인의 시 ‘필봉산’이 돌에 새겨져 있다.‘(전략)남명 선생의 단성소/ 필봉산이 가져다/ 쓰셨을 거다/ 목숨은 하늘에 걸어두고/~’ 시 한 구절 읽을 때마다 필봉산 한 번 바
봄이다. 발걸음도 가볍다. 2월 26일, 살포시 숨어 있는 봄의 숨결을 찾아 경남 함양군 병곡면 휴천마을로 아내와 봄마중 나섰다.옛 88고속도로가 지났던 휴천마을로 들어섰다 휴촌(休村)마을은 조선 시대 세조 때 세종대왕의 12번째 왕자인 한남군이 엄천골에 유폐 당해 가다가 하룻밤 머물고 쉬어갔다고 해서 둔터, 쉼터라고 했다. 이것을 한자로 휴촌이라 부른다고 한다. 휴천마을 들머리에 함양 선비 9명이 풍류와 시를 즐겼다는 등구정(登九亭)이 있다. 1932년송평과 휴촌 선비들이 건립했다. 등구정 앞 넓은 운동장은 1931년 등구정 계원
고성 옥천사와 장산숲바쁜 아이들은 집이 좋단다. 2월 19일, 게임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을 두고 아내와 단둘이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 건지 묻는 아내에게 고성 옥천사로 바람 쐬러 가자 말했다. 옥천사를 들러 정작 아내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달달한 말 한마디 건네기 위해. 경남 진주에서 문산읍을 거쳐 고성군 영오방향으로 가다 영오천을 건넜다. 옥천교에서 2km가량 더 연화산으로 가면 신라 때 만든 옥천사가 있다. 일주문을 지나 좀 더 올라가면 사천왕문이 나온다. 돌계단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간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바람이 불었다. 겨울이 저만치 가면서 자신을 잊지말 라고 흔적을 남긴다. 바람이 세차게 분 날이다. 겨울을 기억하기 위해 바람이 이끄는 대로 2월 10일, 길을 따라 들어갔다. 거울같이 맑은 경호강을 가로지르는 내리교를 지났다.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웅석봉(熊石峰)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자 바람은 멈춘 듯 고요하다. 지당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다 세진교(洗塵橋) 창건비 앞에서 멈췄다. 창건비 맞은편 길 아래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햇살에 물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넓적한 바위가 나온다. 바위에 세진교라 새겨져 있다.
궁금했다. 오가며 보는 저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어떤 모습일지. 2월 15일 당직 휴식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답답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궁금증도 풀고 시원한 풍경을 찾아 경남 산청군 산청읍 성우아파트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꽃봉산에 올랐다. 돌계단을 올라가는데 벌써 저만치에서 반가운 봄소식을 전하는 ‘봄까치꽃’이 반긴다. ‘개불알풀꽃’이라는 거시기한 이름보단 ‘봄까치꽃’이 정겹다. 녀석의 연보랏빛 응원에 힘입어 거의 일직선에 가까운 가파른 길을 올랐다. 숨이 가쁘다. 10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쉬고 싶다. 조그만 고개 하나
겨울은 길을 타고 바람과 함께 들어온다. 절로 움츠러든다. 봄에 들어섰다 믿었다가 이런 낭패가 없다. 길 너머 봄을 향해 가는 내 마음을 멈추게 막지 못한다. 2월 9일,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볕은 따뜻해 길을 따라 산으로 갔다.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 청소년수련관을 지나 경호강을 건너 산으로 들어갔다. 산청 지곡사터를 알리는 곳을 지나자 최근 만들어진 지곡사가 나온다. 지곡사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웅석봉군립공원으로 들어가다 갈림길이 나온다. 심적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오른편으로 올라갔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옆
대전-통영 고속도로 산청휴게소,숨겨진 명소를 찾아라이제 곧 시들어버린 겨울이 샘을 냈다. 바람이 세찼다. 아마도 겨울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싶은 모양이다. 찬바람에도 바로 지금 떠나도 좋을 곳은 많다. 2월 9일, 이날도 쉼 없이 바람을 가르며 차들이 고속도로를 쌩쌩 달린다. 대전-통영고속도로 산청휴게소(상·하)는 쉼 없는 우리에게 찬바람마저 감미로운 풍경과 볼거리를 안겨준다. (상·하남방향) 산청휴게소에는 ‘구암 허준테마공원’이 자동판매기 옆으로 있다. 작지만 그곳에 담은 볼거리를 산청을 오롯이 담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과 산청읍에
저만치 훌쩍 가버린 겨울이 아쉽다. 봄 길목에서 겨울에 다짐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다. 겨울철에 더욱 빛나는 소나무를 찾아 2월 3일 경남 하동군 송림공원으로 향했다.공원 입구의 화살나무들을 따라가자 저만치에서 ‘맞이 나무’가 반긴다. ‘맞이 나무’는 ‘하동 송림 입구에서 송림을 지키며 찾아오는 탐방객들을 맞아 인사를 하듯 살짝 기울어진 겸손한 소나무’란다. ‘맞이 나무’의 환영 덕분에 들어서는 기분이 좋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55호인 하동 송림은 조선 영조 21년(1745년) 하동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
입춘을 하루 앞둔 2월 3일, 봄 마중을 떠났다. 경남 하동군 하동읍 내 어디서든 접근이 쉬운 하동공원으로 점심을 먹고 올랐다. 햇살은 따사롭다. 아파트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랐다. 숨이 헉헉거린다. ‘개조심’이라는 안내판과 달리 누렁이는 그저 목을 기다랗게 내밀어 나를 구경한다. 앞서서 아이와 함께 올라가는 가족들이 서로 맞잡은 손이 정겹다. 저만치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박차고 팝촌처럼 팡팡 터질 채비를 마친 매화나무들이 보인다. 벌써 팝콘처럼 고소한 꽃을 피운 매화가 사박사박 걷는 이 길을 더욱 설레게 한다.전망대 앞에는 탐
설 연휴를 끝난 1월 31일 다들 출근하는 시간, 우리는 나들이 나섰다. 겨울방학 보충수업도 빼먹은 아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남명 조식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경남 합천군 삼가면으로 향했다.먼저 들른 곳은 남명 조식 선생이 태어난 생가지이자 외가인 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外吐里)다. 토동(兎洞)으로 불린다. 길라잡이인 양 남명교 앞에서 차를 세운 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양(玉免望月)’ 형상을 먼저 들려주었다. 다리를 건너 500년 넘은 느티나무와 그 옆에 있는 남명 선생의 외할아버지 이국
산청향교와 서계서원을 찾아서공부, 쉽게 할 수 있는 법은 없을까? 정유년 한 해 동안 나름 공부 열심히 하리라 다짐하면서도 쉽게 할 방법은 없는지 요령을 찾는다. 조선 시대 국‧사립 학교인 향교와 서원을 찾아 숨은 비법이 없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향교는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국립학교이고 서원은 사립학교다. 유교 사상을 근본으로 삼은 조선은 고을마다 하나의 향교(1읍 1교)를 설립 공자의 유교상을 가르쳐다. 최상위 국립대학인 ‘성균관’이다. 서원은 지역 유림에 의해 건립된 사립교육기관으로 성현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친다.
진주 냉정리 이정표석희망을 노래하는 1월. 희망과 함께 더 나은 한 해를 다짐하는 마음을 영원불멸한 돌에 새기고 싶었다. 1월 24일, 돌이 돌로 보이지 않는 돌을 찾아 나섰다.급할 것 없는 마음에 경남 진주시 하대동 남강 강변도로를 따라 진주농수산물도매시장에 차를 세웠다. 강변도로를 건너 강둑으로 갔다. 청둥오리, 독수리, 백로 등이 어우러져 겨울을 난다. 억새밭 사이로 걸어가는 사람 등 뒤로 남강물에 반짝이는 햇살이 함께한다. 인기척에 놀랐는지 청둥오리 한 무리가 푸드덕날갯짓하며 강을 박차고 거슬러 올라간다. 한 무리가 지나자
바람이 세찼다. 겨울 잠바를 입었는데도 춥다. 문밖을 나서면 추위가 으르렁거리며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더욱 가고 싶었다. 작은 불 하나가 공간을 따스하게 데우고 우리 삶을 밝히듯 뜨거운 열정 같은 불을 가진 그를 만나러 1월 18일 집을 나섰다. 새로운 다짐을 새기는 1월. 더욱 그를 만나 새해 결심을 굳건하게 하고 싶었다. 1. 합천 삼가면 남명 조식 선생의 생가지와 뇌룡정경남 진주에서 합천 가는 33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의령군 대의면 소재지로 빠지는 대의교차로에서 빠져나와 합천대로 방향으로 가다가 외토 방향으로 들어가면 2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