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여행기는 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 아무르 강을 건너 시베리아 고원으로하바로프스크를 지나 아무르 강을 건너 벨로고르스크까지 달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진 북으로 올라가지만 하바로프스크를 기점으로 달리는 방향이 서쪽으로 바뀐다. 아무르 강부터 시베리아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시베리아는 서쪽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연안까지의 지역을 가리키는 말(러시아말로는 ‘시비르’)이다.시베리아라는 말에 ‘추위’가 함께 연상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며 달렸다. 낮인데도 해가 구름에 가리면
158년 전 3월 14일(음력 1862년 2월 18일) 오늘은 진주농민항쟁이 일어난 날입니다. 진주농민항쟁은 1862년(조선 철종 13년) 2월 14일(양력 3월 14일) 조선시대 말기 조세제도인 삼정(三政‧전정·군정·환곡))의 문란과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백낙신(白樂莘)과 진주목사 홍병원(洪秉元)을 비롯한 수령, 아전, 토호층의 수탈에 조선 민중이 세상을 바꾸려고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불의에 항거하던 진주 정신을 찾아 진주 수곡면을 진주농민항쟁기념탑을 찾은 날은 봄 익
다시 꽃피는 봄이 왔지만 초록걸음을 시작해야 할지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온 나라가 코로나19 위기로 모든 일상이 움츠려 들어버린 이 시기에 둘레길을 걷는다고 한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고 있는 정부 시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긴 고민 끝에 언제나 아픈 대한민국을 어루만져주던 어머니의 산, 지리산의 빽(?)을 믿고 예정대로 걸음을 이어가기로 했다.올해 초록걸음은 지리산문화예술학교 수업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전국에서 수강 신청을 한 25명의 학우들이 길동무가 되기로 했다. 지
*이 여행기는 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 여행의 필수품, 휴대폰 유심카드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으나 로시(오토바이)를 바로 받을 수 없었다. 통관에 걸리는 시간이 보통 이틀, 길면 일주일을 넘길 수도 있다고. 오토바이를 찾기까지 통관대행회사 근처 숙소에서 마냥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내려 입국심사를 받고 난 다음 통관대행회사 직원을 만나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휴대폰 유심카드 구입이었다.옛 여행자 같으면 가까운 서점에 지도를 구하러 갔겠지만 요즘엔 인터넷이 연결되는 휴대폰만 있
“어머니, 우리 어떡할까요. 카페 문 여는 거요.” 아침밥상머리에서 보름이가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그러게,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 문을 열어도 걱정이고 안 열 수도 없고.” 아내의 말 속에 섞인 걱정이 더한 듯했다.며칠 전부터 보름이는 겨우내 쉬었던 카페 문을 열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에 바빴었다. 야외테이블에 모양 좋은 타일을 붙이고, 조그만 식기세척기도 들여놓으며 주방 구조도 바꾸었다. 나도 덩달아 카페 일을 도왔었다. 산언저리에서 싸리나무 두어 짐 잘라 와 울타리를 손질해 주었다. 지난 가을 마을
*이 여행기는 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블라디보스토크 행 페리를 타기 이틀 전 아침, 소파에 앉아 가족사진을 찍었다. 매번 긴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렇게 사진을 찍었다. 몇 개월 동안 보지 못할 테니 사진 한 장쯤 남겨두는 편이 좋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평소처럼 아내와 아이들은 집을 나섰고, 홀로 남아 집안 정리를 끝내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짐을 싣고 로시(오토바이 애칭)의 시동을 걸었다. 드디어 출발. ◇무사귀환 고사 지내고 동해로.드디어 출발이었다. 하지만 바로 예상치 못한 문제
진주 도심 속 진주성에는 숨은 진주(眞珠)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사랑이 싹트는 나무, ‘사랑나무’입니다. 북장대에서 성곽을 따라, 서쪽 포루를 따라 30여m 걸으면 만날 수 있습니다. 60년 정도의 팽나무와 느릅나무가 뿌리와 몸통이 합쳐져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랑나무 앞에 적힌 연리근과 연리목이라는 안내는 잘못 적은 것입니다. 연리목은 수종 같은 나무가 만나 수액을 비롯해 영양분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연리목이 아니라 서로 사랑 하는 나무가 한 몸이 된 ‘사랑 나무’입니다. 어느 쪽이 느릅나무인지 팽나무인지도 헷갈릴 정도로
*이 여행기는 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불혹이 되면 1년 동안 여행자로 살겠다는 꿈을 꾸었다. 서른일곱 살 되던 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진주로 내려와선 인생을 다시 설계했다. 3년 후 마흔 살이 되는 해엔 지금까지 삶을 완전히 내려놓고 다시 출발선에 서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가 바로 헌책방을 여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행만리로(行萬里路)’였다.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여행하라는 오래된 중국 격언이다. 송나라 학자였던 소철이
“어머니, 그냥 두세요. 괜찮아요” 열심히 냉장고를 닦는 아내 곁에서 보름이가 말했다. 애가 타는 듯한 말투였다.“이게 내 얼굴 같아서 그러는 거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버려둬” 아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장고를 닦았다. 속을 다 비운 냉장고는 깨끗하게 변하고 있었다.오늘 새 냉장고가 들어오는 날이다. 오후 다섯 시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는데도 아내는 날이 밝자마자 냉장고를 비웠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닦기 시작했다.스무 해 넘게 써온 냉장고였다. 냉장고는 낡을 대로 낡아 아래쪽은 온통 벌겋게 녹이 슬었다. 고무테가 닳아빠진 문틈
해가 바뀌면서 아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더 이상 PC방에 가지 않는 것. 그렇다고 게임을 끊은 건 아니고 대신 집에서 한다. 우리 집 컴퓨터 사양이 PC방 수준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 뒤엔 대단한 결심이 있었다. 여기서 ‘결심’의 주체는 아들이 아닌 우리 부부. 우리는 냉장고 한 대와 맞먹는 비용을 지불하고 낡은 컴퓨터를 사이키 조명 번쩍거리는 최신형으로 바꾸었다.툭하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버리는 컴퓨터를 새로 바꾸자는 요구는 사실 1년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귓등으로 흘리다가 실행하게 된 이유는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고등
의사들이 싫어하는 나무가 무환자나무라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무병장수는 모두의 바람입니다. 더구나 해가 바뀐 요즘은 더욱더 간절한 바람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집현산 응석사를 찾았습니다. 응석사에 무환자나무가 있습니다. 합천으로 가는 새로 난 4차선의 널따란 길이 아니라 옛길에서 이정표를 따라 산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해맑은 응석 저수지의 맑은 물이 와락 안기듯 반깁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주위 시원한 풍경을 담습니다. 저수지 끝자락에 응석사가 나옵니다. 시내버스 종점이기도 한 이곳 한족에는 집현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함께 합니다.
‘짐 많으면 연락하소. 마중 나갈게.’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첫차로 읍내에 나간 아내는 목욕탕 가고, 한의원도 들르고, 반찬꺼리 챙겨 한 시 버스로 들어온다고 했다. 주말에 민박손님이 꽤 많으니 짐이 만만치 않을 거였다.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오기에는 제법 멀고 길이 가팔라 벅찰 일이다.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말고 마중을 나가려는데 아내가 문간을 들어서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양팔에 들고 가방은 어깨에 걸머졌다. “전화하라니까. 팔 빠지겠다.” 맨발로 마당으로 나가
새해 들어 이명이 심하다. 왼쪽 귓속에서 얄궂은 소리가 난다. 어찌 들으면 골인지점에 이른 마라토너의 거친 숨소리 같기도 하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모래톱에 밀려드는 파도소리 같기도 하다.한밤중 잠에서 깨었을 때 들리기도 하고, 이웃집 사랑방에 모여 민화투를 할 때도 들린다. 어떤 땐 크게, 어떤 땐 낮게, 또 어떤 땐 낮았다 높았다를 반복하기도 한다. 쇳소리처럼 크게 자극적이지 않고, 귀뚜라미 소리나 말매미 소리처럼 요란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소한부터 사흘 동안 내린 비는 개울을 채웠다. 한겨울에 개울물 불어 흐
2019년 한 해도 그 꼬리를 감추던 날, 올해 열 번째 초록걸음은 산청을 지나 하동 위태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3월 백두대간이 지나는 남원 노치마을에서 시작된 초록걸음은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을 지나고 인월 지나 함양 벽송사와 용유담 거쳐 쌍재와 고동재를 넘어 산청으로 입성, 경호강 따라 걸으며 바람의 마을 성심원도 만났고 단풍으로 물든 백운동계곡 지나 산천재 앞마당에서 천왕봉을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리고는 하동 땅에서 2019년 마지막 초록걸음을 멈추었다. 위태마을 입구에선 마을 당산나무인 상수리나무가 우릴 반겨주었다. 상수리
기말고사를 이미 한 달 전에 콩 구워 먹은 중 3 아들에게 12월은 여백의 시간이다. 방학은 다음 달까지 기다려야하고 교과 진도는 진즉에 나갔을 텐데. 학교에선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궁금할 정도였다. 그래도 녀석은 언제나처럼 불룩한 가방을 무겁게 지고 다녔다. 한날 열어보니 두꺼운 ‘수능 필살기 영어단어장’과 고등 수학 문제집, 보드게임 상자와 구겨진 안내장이 몇 장 끼어있었다.고등 수학 문제집은 학원 교재용이고 영어 단어장은 기말고사 마친 뒤 녀석의 요청으로 사 준 것이었다. 가격은 만 오천원. 근데 앞부분 서너 장 말고는 깨끗
맹렬히 뛰어온 한 해의 끝입니다. 이런 나를 위해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진주 초전공원을 찾았습니다. 초전공원은 진주 도심에서 멀지 않습니다. 1978~1994년까지 생활 쓰레기를 야적하던 곳이 이제는 체육관과 실내수영장이 있는 시민체육공원으로 거듭나 시민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수종말처리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공원으로 들어섭니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펼쳐집니다. 하늘 향해 쭉쭉 벋은 나무들을 바라보자 눈에 생기가 돕니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어가는 동안 마음도 쑥쑥 커가는 기분입니다. 길에서 잠시 벗어나 연못으로 향했습니다. 바람
한 해의 마지막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벌써 저만치 앞서서 갑니다. 겨울이면 괜히 마음이 바빠집니다. 올 초 세운 계획도 가물가물해집니다. 괜스레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이럴 때 나름 올 한해도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을 보듬어주는 곳이 있습니다. 진주 진양호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진양호공원으로 가는 길은 넉넉한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멀찍이 차를 세우고 숲으로 나들이 가듯 가도 좋습니다. 진양호 동물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편백 숲 사이로 잠시 걸었습니다. 숲을 나오자 넘어가는 햇살이 나무 사이로 강렬하게
선거가 끝나면, 방송사마다 재빨리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오차범위 플러스, 마이너스 5% 미만이라는 자막과 함께. 그날 자정 무렵이 되면 개표결과 ‘당선 유력’ 정도는 알 수 있는데 대개는 출구조사 결과가 적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다 믿을 순 없다. 정반대 결과가 나오면서 유권자들이 밤새 개표방송에 잠을 설치는 반전 드라마가 연출되기도 하니까.뜬금없이 출구조사 얘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 집에서도 분기별로 두 번씩 출구조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아들의 시험 성적을 가늠하는 일. 보통 시험을 치른 당일 저녁엔 예상 점수가 거의 90
대추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이십리길을 걸어 열하루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막내딸 이뿐이는 대추를 안준다고 울었다송편같은 반달이 싸리문위에 돋고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나귀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이뿐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노천명 시인의 시가 가만히 읊조려지는 시골 장, 내가 어릴 적 손꼽아 기다리던 합천장날은 3,8장이었다. 없는 살림이라 장날마다 장에 가시지는 않아도 간혹 장날이라 나가시면 언제 오시나 골목길을 내다보며 기다렸다. 엄마가 장에 다녀오시면 그 장바구니를 얼른 받아
가을이 내리는 요즘입니다. 남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 건너에서 은은하게 흩뿌리는 국향에 엉덩이를 들썩여 다녀왔습니다. 진주종합경기장에서 10월 25일부터 11월 10일까지 열리는 국화축제가 그곳입니다. 사는 곳에서 강하나 건너왔을 뿐인데 운동장에 들어서는 초입부터 가을이 내린 자리답게 가을빛으로 물들어있습니다. 여기저기 놓인 등의 아기자기한 모습에 걸음을 재촉할 수 없습니다. 괜스레 장기판에 고개를 내밀고 훈수를 두고픈 등(燈)으로 만든 장기판 풍경이 정겹습니다. 비록 등으로 재현한 것이지만 소가 끄는 수레에 올라탄 아이들의 해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