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세상이 너무 오래 눈 감고 입 닫아 왔다.“여자가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남자들이 그럴 수도 있지, 뭐.”“그런 영상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어. 안 본 사람과 꾸준히 보는 사람이 있을 뿐.”“고교 동창들 중 남자들만 있는 단톡방이 있는데...사실 여기는 누구한테 보여주기 민망한 글이 끝도 없이 올라오는 곳인데...다들 이런 단톡방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여자 친구나 아내에게 보여주면 큰 사단이 날 단톡방.” 농담으로 소비해서는 안 될 것들이 거침없이 오고가고 공유되는 공간.음지에서 여성의 신체를
윤지오씨가 ‘사건’ 속 사내들 중 유일하게 기소된 전직 조선일보 기자의 재판 증언을 마치고 나와 질문 공세에 답하다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슴벅 아린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얽혀든 뜻밖의 사건으로 10년 세월 갖은 고초를 겪은 그녀의 설움이 읽힌다. 사건 현장의 유일한 증언자로 나섰으나 믿어주고 도와주기는커녕 세상으로부터는 눈 흘김 당하고 가해자들로부터는 위협당하는 끔찍한 세월을 용케 잘 견뎠다. 작년 ‘미투’를 이끈 서지현 검사가 공동체 내부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듯이 윤지오씨의 용기 있는 행동 또한 놀라운 결과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구제 개혁안에 잠정적인 합의안을 마련했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논의하겠다고 발표한 지 석 달 만이다. 국회에서 거대 양당이 ‘과다 대표’되고, 소수당 또는 제3당이 ‘과소 대표’됨으로써 민심이 왜곡되는 현상을 시정하겠다고 한 다짐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게 됐다. 지난 해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자유당)이 전국 기초의회 전체 의석의 90%를 싹쓸이하는 결과가 나오자 소수정당들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선거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바른미
봄비가 내려요비닐창문을 적셔요당신의 메마른 얼굴을촉촉히 감싸요 봄비가 내려요우리 처음 만난 날남강변 수양버들에도당신의 얼굴에도 당신은 노동자이지요처음부터 노동자였지요저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진심이 느껴졌어요오뎅으로 점심하고떡볶이는 저녁이었지요 맛을 모른 채 시간이 흘렀지요아니, 그 맛은 남았답니다제 세월에당신의 세월에 봄비가 내려요비닐창문을 적셔요당신의 깡마른 얼굴에며칠 사이주름 두어 개 더 파인 얼굴에봄비가 내려요 그 것으로 된 것 아닌가요그렇게 살아가면 되잖아요 운전대를 부여잡은억센 두 팔뚝만 있으면저를 포근히 안아주는그 두 팔뚝
진주 최대 시내버스 회사인 삼성교통이 전면파업을 벌인지 44일째가 되던 화요일 아침. 파업에 동참하던 노동자 두 명이 45미터 통신사 철탑 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같은 날 오전엔 파업을 벌이던 노조원들이 진주시청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몇 명이 다쳤다는 소식, 그에 앞서 노조 지도부가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연달아 들려왔다.그리고 그날 휴대폰에선 최악의 미세먼지 농도를 알리는 긴급 재난문자 경보가 울렸다. 미세먼지 가득한 잿빛 하늘 처럼 온종일 답답하고 우울한 소식의 연속이었다. ‘45미터 상공 위엔 아마도
기자가 열심히 취재한 내용을 사진 찍고 글로 옮겨서 신문으로 내면 독자는 정기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뉴스를 구매하는 시스템.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언론시장의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져 신문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지면은 새로운 가치가 생깁니다.그것은 바로 ‘대중’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지면 일부를 구매해서 자신이 파는 상품이나 가게 이름을 대중에게 알립니다. 이것이 바로 광고입니다. 기사는 독자가 돈을 내고 보는 것이고, 광고는 광고주가 돈을 내고 ‘독자의 시선’을 사는 것입니다.
동지들우리는 승리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 기름밥에 승리를켜켜이 쌓아 올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숨 쉬고 있고맥박도 그칠 줄 모릅니다내일도 그럴 겁니다 동지들삼성교통 동지들우리는 승리하고 있습니다 고대광실에 들어앉은 조 모 조 모라 칭하는 저 아둔한 머리를죽비로 내리쳐깨우치게 했습니다. 신체발부수지부모무딘 낫에 무명초가싹둑싹둑거칠게 잘려 나갔지요 두 줄기 눈물이 흘렀지요급경사 급모퉁이를 돌아운전대를 잡던억센 두 팔뚝 내려뜨려갈기갈기 무명초를조용히 받았지요 그러면서 외쳤지요노동자는 노동자다우리는 살아끝내 살아 주인
//사나이 꽃이라는 이십 오 세 이 가슴내일은 싸움터로 춤추러 갈 때희망도 하소연도 무슨 소용 있으랴이 것이 우리 청춘 갈 곳이라네 면사무소 드넓은 마당. 20대 장정 30여 명이 일렬종대 일렬횡대로 서서 어색하게 팔을 휘두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맞은 편 고무신 가게 앞 조금은 상거한 지점에서는 남루한 복색의 여인들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51년 9월 어느 날. 조작된 서류에 따라 면 서기의 동생 대신 영문도 모르고 느닷없이 징집된 25살 청년이 갓 태어난 딸을 안고 울먹이는 아
1980년 5월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광주항쟁 또는 광주학살이라고도 불리며 공식적으로는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정리된-은 당시를 살았던 한국인들에게 원체험으로 남아있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독재자 박정희가 암살당한 후, 권력의 공백기에 전두환과 신군부 일당이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한반도의 남서부 지방 도시 ‘광주’를 봉쇄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해 총칼로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대학생 등 시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한 이 사건은 1950년의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정치적 비극이었다.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기간에 수없이 자
지중해 연안을 돌며 풍요한 서구 본토의 여유를 핥던 ‘알쓸신잡’ 팀이 느닷없이 ‘진주’로 날아왔고 단연 그것은 지난 연말 시중의 화제였다. 진주성과 여고, 과학관을 훑은 이야기를 게걸스럽게 먹으며 주섬거리던 도립병원 뒤의 ‘식당’도 이야깃거리였고 공룡이나 운석도 새삼 들먹여졌다. 고향의 면면을 TV로 보니 마치 낯선 대처의 군중 틈에서 뜻밖에 만난 피붙이의 그것처럼 왠지 아련하고 코끝 시큰하다. 그런 한편으로 “근데 보일 게 저것밖에 없었나?” 하는 미진한 맘도 든다. 녹화 당시가 유등축제의 와중이었음에도 유등의 ‘이응’도 들먹이지
온 나라를 2년 째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사법농단의 원흉’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여부가 곧 결정된다. 상고법원을 추진한다면서 박근혜 청와대와 직간접적인 재판거래를 해온 ‘사법사상 초유의 사고’를 친 그 양승태 말이다. 양승태의 개인 조직이나 다름없이 움직인 법원행정처는 마치 삼성그룹의 ‘비서실’이나 ‘미래전략실’ 같은 사법부 내의 정보기관이었다. 이 법원행정처를 연결고리로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하게 돼있는 판사’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려온 자에 대한 심판이 어떻게 내려질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고왔던 내 청춘은기다림에 애 태우고지나간 세월은 어이 보내고손마디만 거칠었구려 - 장계현 노래 ‘돌아온 당신 그건 끝내 기다림이었지. 애(愛)와 증(憎)이 교차하면서 싸우다가 마침내 애가 증을 이겼지. 애가 증을 제압한 동력은 나도 모르는 그리움(情)이 저절로 쌓이고 그리움의 또 다른 형태인 기다림(望)이 이어진 까닭이었지.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영문도 모른 채 손꼽고, 정작 당일에는 뜻도 모른 채 즐거워 지내는 건 출애굽 이후에도 고통이 여전하고 기다림도 여전하기 때문이지. 홍해처럼 갈라진 세월이 60갑자를 훨씬 넘겼기 때문이지.
미 트럼프 행정부의 죽끓듯 하는 대북 정책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사실상 물건너 가는 등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정책이 답보상태에 빠졌다. 이를 타계할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남한 농민회를 중심으로 최근 트랙터 보내기 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의 구상과 추진 방법을 지켜 보면서, ‘원조’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 ‘역발상적 제안’을 하나 해보고 싶다. 나는 북한의 세습 체제와 독재, 언론 통제에 매우 비판적이지만, 한편으론 북한이 남한에 비해 장점도 많고,
김수영 선생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지난 76년이었다. 재수를 할 때였고 시인이라면 김영랑, 김소월, 박두진, 서정주, 그리고 강은교 정도만 알 때였다. 박목월 신동엽도 있었다. 김영랑 김소월 박두진 박목월 서정주 등등은 고3 국어시간에 알았고 강은교와 신동엽은 고3 말기 문예반 연합시화전에서 어떤 여학생이 얘기했다. "강은교 시의 서정적 자아는 절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거였다. 시인이 멋있어 보였지만 나 자신은 절대 시인이 될 수 없는 한계를 그 순간 그녀로부터 느꼈다. 기고만장은 재수시절부터
야 3당이 표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선거구제 개편을 요구했을 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자유당) 등 거대 정당들은 ‘예산안’ 처리가 급하다며 이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새해 예산안은 밀실과 졸속 심사로 얼룩지고, 법정시한을 넘긴 것은 물론이고,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가장 늦게 처리됐으며, 토목건설부문에 대폭 예산을 늘렸다. 애초 정부안보다 9천 억원 감소된 469조 6천 억원 규모다.‘복지와 일자리’ 예산은 정부안보다 1조 2천 억원 줄어든 대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정부
무엇인가를 지킨다는 것.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무엇이 무엇이어도 말이지요. 사람을 해치는 일과 그녀를 힘들게 하는 일만 제외하고요. 우리 조상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킬 것’은 지킨다는 심정으로 그 힘든 시절을 살아 내거나 목숨을 다하셨지요. 그 ‘지킬 것’의 테두리에는 아마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 신념 또는 신조, 자유, 우애, 의리, 평등, 그리고 평화.구한말 의병들은 외세에 저항해 이 땅의 평화를 지키려 일어섰습니다. 왕조의 핍박을 받더라도 왜놈들이 몰려 와 장검을 휘두르는 상황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무리한 행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이해찬 당대표는 여야 5당 대표 간 월례 모임에서 야 3당의 선거구제 개편과 예산안 처리 연계 지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해찬은 “연계할 것을 갖고 연계해야지, 어떻게 국민이 써야 할 예산을 선거구제와 연결시킨다는 말이냐”며 “30년 정치생활에서 처음 보는 경악할 일”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평소 기자 등과의 대인관계에서 감정조절을 잘못해 ‘핏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해찬은 야 3당 대표들에게 ‘호통’을 침으로써, 국회의장 주재 오찬
그저 번드르르한 말로 입술을 나불거린다고 그런 칭호를 얻을 수 있으랴. 처음엔 유수같이 흐르는 쉼 없는 ‘말빨’에 질려 찬탄 반 조롱 반으로 부른 별호였을 터. 그러나 백기완 방배추 황석영 선생을 ‘조선 3대 구라’라고 일컫고 그게 전설처럼 굳어져 회자하는 것은 그들이 세 가지쯤의 요건을 갖춘 보기 드문 인물들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 셋은 꽉 차게 살아온 밀도 높은 인생, 일가를 이룬 지성, 그리고 통 큰 포부와 그걸 이루는 능력의 탁월함이다. 아직은 평가가 이르겠지만 그들이 걸어온 길이 한국 현대사의 한 가닥 굵은 노정이었고 변
중학생인 큰 딸은 지난 여름 방학 동안 머리를 노랗게 염색 했다. 미용실에 가서 염색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친구 몇몇이 어울려 인터넷으로 염색약을 구입해 한날 우리집에 모여 서로의 머리를 각자 원하는 색으로 물들였다.나와 아내는 샛노랗게 변한 딸의 머리가 어색하고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지만, 머리색 만큼이나 환하게 웃으며 ‘어때 어울려?’라고 묻는 딸에게 차마 싫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멋진데. 의외로 잘 어울리네 흐흐’. 입는 옷 취향이나 머리색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간섭하면 당장에 ‘꼰대’라
***시작은 순수했지. 물려받은 묵정밭 농사 짓기는 죽기보다 싫었고 취직도 하기 싫어서 저기에 뭐를 해야 하지? 하다가 그걸 생각해 냈지. 엊그제 뉴스데스크에 나오신 이순자 여사께서 마침 유아교육이라는 화두를 던지셨지. 잘 하면 돈을 불리겠다 싶었지. 아니. 까먹지는 않겠다 싶었지. 하지만 힘들었지. 당장 유치원 인가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원장 자격은 무엇인지. 원아는 어떻게 모집하는지. 교육비는 얼마를 책정하는 게 적정한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았지.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일단 시작했지. 어찌어찌 지목변경하고 건축허가는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