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록걸음은 가을 단풍 한바탕 휘몰아치고 간 가야산 홍류동 계곡 해인사 소리길을 걷기로 했다. 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버스로 해인사까지 이동할 수가 있었다. 소리길은 해인사 입구에서 대장경 테마파크까지 대략 7Km 거리로, 홍류동 옛길을 복원하고 다듬어서 홍류동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수평 탐방로라 할 수 있다. 이 소리길에는 주요 문화자원인 농산정과 더불어 칠성대, 낙화담 등 가야산 19 명소 중 16개 명소가 있으며, 자연과 역사, 경관을 함께 보고 느끼며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며칠 된서리가 내렸다. 서리는 나날이 두터워지고 있다. 이른 아침 밭에 나가니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삶의 막을 내린다. 내내 밭두렁을 뒤덮었던 호박넝쿨 속을 기웃거렸다. 올해 마지막 애호박을 대여섯 개 땄다. 산등성에 비친 아침 햇살이 빠른 속도로 내 발등을 지나 마을까지 밀려내려가는 것이 보인다. 햇살을 가득 담은 감국은 진한 향을 토해내고 개울가 느티나무가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어제 팥을 베어놓은 밭이랑에서 장끼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뒤따르던 꽃분이가 켕켕거리며 밭두렁 끝까지 뛰어간다. 장끼는 건너 굴참나무 뒤로 사라진
올해의 초록걸음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코스나 교통편 결정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낮춰지면서 이번 초록걸음은 전세버스를 이용해 단체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발열 체크와 마스크 착용을 필수 조건으로 하고서.이번 코스는 지리산 둘레길 22개 구간이 아닌 ‘지리산 자락길’을 택했다. 2012년에 개통된 지리산 자락길은 함양군 마천면 주변을 연결한 총연장 19.7Km의 원점회귀 산길로 금계마을에서 출발, 도마마을과 군자마을을 지나 고담사와 고불사를 거쳐 다시 금계마을로 돌아오게
추석이다. 이른 아침 맞은편 산언저리에서 한 움큼 산밤을 줍고 밭을 둘러본다. 지난여름 긴 장마에 습해를 입은 우엉은 대부분 죽었다. 우엉 옆 이랑에 심은 토란은 내 키만큼이나 자라 무성한 잎을 자랑한다. 애지중지 돌본 생강은 그럭저럭 반타작은 될 것 같다. 올해는 생강을 다섯 이랑이나 심었다. 보름이(며느리) 카페에 생강이 많이 필요해서였다. 생강으로 차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라떼라는 것도 만들다보니 생강이 많이 든다고 했다. 지난해는 생강을 많이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었다. 생강 값이 비쌌고, 친환경으로 농사지은 생강을 구하기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여전하지만, 우린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지리산 둘레길을 변함없이 걷기로 했다. 지난 8월 14일, 지역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세워진 산청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산청군 청소년수련관으로 모였다. 수철마을에서 성심원까지 둘레길 6구간 중간지점쯤 되는 곳이다. 이번 초록걸음은 산청읍 조산공원을 출발, 지성마을과 내리저수지 그리고 지곡사와 웅석봉 선녀탕을 지나 바람재를 넘고 내리한밭을 거쳐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택했다.최연소 참가자인 6살짜리 하경이부터 20여 명의 길동무들과 함께 9월 셋째 토요일, 가을빛으로
또다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8월 초록걸음도 급하게 길동무들에게 행사를 취소한다고 연락했다. 하지만 본인 차로 오실 분들이 계시면 함께 걷기로 했다. 집을 나서 의신마을로 가는 길, 남도대교 근처 섬진강 둔치에 쌓아둔 엄청난 양의 쓰레기 더미를 보면서 이번 폭우로 화개면이 얼마나 큰 수해를 입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번에 겪은 54일간의 최장 장마에서 이상기후 정도가 아니라 기후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두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화개장터를 지나왔다. ‘기후악당국가’로 전락한
다시 지리산이 시끄럽다.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하동군이 형제봉과 악양 화개 그리고 청학동까지 연결하는 20.8Km의 케이블카-산악열차-모노레일 건설사업을 강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곳이기에 초록걸음 길동무들에겐 더더욱 안타까운 소식임에 틀림이 없다.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은 구례, 남원, 함양 그리고 산청에서 세 번씩이나 반려를 당했다. 수십 년간 논란이 되어왔던 지리산댐 건설계획 또한 지난 2018년에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건설 백지화 선언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또다시 어머니의
올 초 발생된 코로나19로 둘레길 시작점에 각자 모여 시작됐던 지난 초록걸음과는 달리, 이번 6월엔 올해 들어 처음으로 대형버스를 이용해 출발지인 하동 신촌마을로 향했다. 물론 버스 타기 전 한 사람 한 사람, 체온 체크와 마스크 착용을 확인하였다. 이번 초록걸음엔 지역 케이블 방송사에서 취재를 하겠다고 해서 6mm 카메라를 든 PD도 동행하게 되었다.걸음을 시작한 신촌마을은 하동 적량면의 첫 마을이자 마지막 마을이라 할 만큼 골 깊은 곳에 자리한 마을로 북쪽으로는 구재봉을 경계로 악양면에, 서쪽으로는 하동읍에 접해 있다. 그리고
밤새 잠을 설쳤다. 어제 저녁(18일)은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진주에서 환경운동을 함께 해온 사람들이 여기 지리산까지 온다는 거였다. 지난번 출판기념회로는 모자라다면서 축하하는 자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아내는 하루 종일 음식을 장만하기에 바빴고, 나는 밭일에 매달렸다. 장맛비가 내려 이른 아침부터 우의를 챙겨 입고 서리태를 심었다. 오전에는 양파 캐낸 밭에 들깨모종을 옮겨 심었다. 정오를 한참 지나서야 밭일은 끝났고, 오후엔 음식을 만드는 아내를 거들었다.음식을 만드는 내내 아내는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대상포진으
“거긴 뭐 하러 가요. 그런 사람 다시는 보지도 마소.” 점심 먹고 골목 평상에 나가려는데 아내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오전 밭일 마치고, 점심 먹고, 좀 쉬다 골목 평상에 나가는 것이 요즘 일과였다. 이웃 몇몇이 모여 농사이야기를 나누거나 민화투를 치면서 한더위를 피하는 평상이었다. 오후 네 시를 넘어서면 또 다들 밭으로 나가 텅 비는 평상이었다.그동안 나의 평상 나들이에 아내는 한 번도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안 나가고 뭉기적거리고 있으면 얼른 나가라고 내 쫓기도 했고, 집에 먹을거리라도 있으면
하동군 청암면에 자리한 하동호는 1985년 1월 착공하여 1993년 11월 준공한 농업용 댐에 청학동 계곡과 묵계 계곡의 물들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거대한 산중호수이다. 지리산 둘레길 10구간과 11구간이 연결되는 지점에 있는 이 하동호를 한 바퀴 도는 산중호수길이 새 단장을 하고 올봄에 완성되었다. 총연장 7.5Km에 수평의 길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다.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지리산 둘레길에 포함되지는 않은 상태다.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된 5월 첫 주, 지리산문화예술학교 초록걸
“아버님 오늘은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 돼요.” 보름이가 정색을 하며 다짐을 받으려 했다. “허어, 오늘은 술을 좀 마셔야할 것 같은데. 이거 낭패네.” “여하튼 안 돼요. 오늘은 참으셔야 돼요.” “내일로 미루면 안 돼? 오늘은 멀리서 ‘페친’이 술 가지고 온다는데.” “어제도 오늘로 미루셨잖아요. 안 돼요. 오늘은 꼭 약을 먹어야 해요,”거듭되는 성화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긴 했지만 억울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하가 기생충에 감염되어 온 가족이 구충제를 먹어야 한다는 거였다. 가족이 약을 먹기로 한 날은
* 이 기사는 에도 함께 실립니다. ◇ 칸스크 가는 길, 드넓은 숲과 초원이르쿠츠크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크라노스야르스크까지 가려했으나 결국 칸스크에서 멈췄다. 로시를 지하 주차장에서 꺼내지 못해 출발이 늦어져 크라노스야르스크까지 가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 창고 열쇠를 가진 직원이 늦게 출근하는 바람에 일정이 꼬여버렸다.모든 짐을 챙겨 숙소 마당에 내려놓고 아침 일찍부터 직원이 오길 기다렸지만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하필 내가 출발하려는 날 늦게 출근했다. 이르쿠츠크에서 칸스크까진 약 800킬로미터, 크라노스야르
* 이 글은 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 시리도록 푸른 호수를 지나다드디어 바이칼호를 보았다. 집을 떠난 지 11일만이었다. 유라시아대륙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아직도 원시 상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바이칼호는 눈부시게 푸르고 아름다웠다. 6월이 가까워졌는데도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아 얼음이 호수 가장자리에 밀려와 있었다.바이칼 호수 남쪽엔 설산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태고부터 저 산의 눈이 봄볕에 녹아 숲을 적시고 낮은 곳으로 흘러 지금의 바이칼을 만들었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호수 그 자체가 푸른 보석이지만 가까이 가면
밤새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지난 장날 모종 구해 심어둔 밭이 걱정이다. 조금 일찍 따 먹으려고 조금 일찍 심은 게 욕심이었지 싶다. 올해는 윤사월이 들어 봄이 길 거라는 이웃의 말을 허투루 들었다. 모종을 구하던 날 이웃이 걱정스럽게 말렸지만 서리는 안 내릴 거라고 우겼었다.며칠 전까지 서리가 내렸고, 일찍 심은 청양고추와 파프리카 모종 이파리가 허옇게 말라버렸었다. 산두릅 딴다고 숲을 쏘다녀서 고단한 몸인데도 윙윙 골짜기를 치타는 바람소리에 몇 번이고 바깥을 들락거렸다. 온도가 얼마나 내려가나 확인하기 위해서지만 달리 손 쓸
코점이가 죽었다. 마당 길고양인데 코에 까만 점이 있어 붙여준 이름이다. 코점이는 우리와 여덟 해를 살았다. 코점이 어미는 예삐, 보일러실 입구에 죽어있는 코점이를 거둘 때 예삐가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대략 서른 마리의 길고양이들이 우리 집 마당을 드나드는데 그 중 여섯 마리는 현관문턱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오는 녀석들이다. 코점이도 그 중 한 마리였다. 아주 추운 날이면 그 여섯 녀석은 현관문 밖에 대기하고 있다 문을 열면 들어와 식탁 아래 따뜻한 곳에 올망졸망 모여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코점이는
*이 여행기는 에도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짐 줄이기,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의 기본장거리 오토바이 여행을 안전하고 편하게 하려면 자신만의 짐싸기 법칙이 필요하다. 짐을 실을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경박단소하고 효율 높은 용품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 물건들은 대부분 비싸기 마련이라 어느 선에서 타협해야만 한다. 여유가 있다면야 그런 제품들을 구하겠지만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면 이전 경험에 따라야 한다. 필요 없는 물건은 줄이고 방한 용품은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젊은 스쿠터 팀’이 치타를 향해 떠날 때,
2020년 4월, 코로나에 세월호까지 여전히 침묵의 봄이고 잔인한 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또 발걸음을 내디뎠다. 멀리 원주에서 달려온 길동무까지 20여 명의 지리산문화예술학교 초록걸음반 학우들은 이제 막 새순이 꼬물꼬물 솟아나기 시작하는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에서 걸음을 시작했다.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 대상을 받은 길이지만 지금은 주변 시설들이 방치되다시피 해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수목이나 주변 시설물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이번 구간은 덕유산과 더
* 이 여행기는 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자유시 참변의 현장을 찾다 출발하자마자 주인아저씨가 알려준 에어 펌프가 있을만한 주유소로 갔으나 허탕, 다른 주유소를 찾아나서야 했다. 이른 아침이라 자동차 정비소는 문을 열기 전이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마지막 주유소에 가서도 에어 펌프는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망하긴 일렀다. 휘발유를 넣는 동안 내게 어디서 왔느냐 질문을 던진 노신사가 직원과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자신을 따라오라 했다.비를 피해 하룻밤 보낼 수 있었지만 타이어 공기압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아내는 또 봄나물을 캐러 나갔다. 봄나물이랬자 많이 커버린 쑥과 꽃대궁이 나올 것 같은 냉이와 아직은 어린 머위와 원추리가 전부였다. 아내의 봄나물 캐기는 용돈벌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민박손님도 거의 끊겼고, 통장에 조금 남긴 돈으로 살아가면서 목욕비나 한의원 가는 비용이라도 벌어보자고 시작한 일이 봄나물 캐기였다.서울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요청이 있었다. 봄나물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몇 있으니 캐서 보내달라는 거였다. 며칠 전부터 준비해오던 아내는 엊그제 처음으로 봄나물과 파김치를 담가 보냈다.“내일 성안터에 머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