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우리집엔 일본에서 온 초등학생이 한 명 입주한다. 우리가족은 국제 언어교류를하는 단체 히포클럽 멤버라 매년 여름 방학이면 이렇게 홈스테이를 받는다. 8월에는 경상대학교에서 진행하는 교류프로그램에 참가한 일본 대학생을 3일간 받는다.이번에 오는 학생들과 일본의 부모들이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베의 발언과 반도체 원료 검수 조치로 촉발된 한일간의 대결 국면에서 혹시라도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자녀들이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것이다. 우리쪽 책임자가 한국 가족은 그런 분별력 정도는 있다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귀감(龜鑑)과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차이는 사실 그렇게 크지 않다.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정도를 따져 봐도 그렇다는 얘기이다. 귀감도 필요하고 타산지석도 필요하다는 결론을 웬만큼 나이를 먹으면, 그리고 바보가 아닌 다음에는 쉽게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귀감에서도 타산지석에서도 똑같이 배운다. 그러면서 세상은 조금씩 성숙하는 게 아닐까.잠시 중학교 때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저렇게 해야지”가 귀감이요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는 타산지석이라고. “저렇게 해야지”가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보다 도덕
요즘 ‘토착왜구’라는 말이 유행이다. 역사학자 전우용이 SNS에서 처음 소개한 이 말은 1910년 조선이 일본에 강제로 병탄되는 혼란스런 정국에서 나왔다. 전우용에 따르면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에서 토왜를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人種)’으로 규정하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는 고위 관료층과 일본의 침략과 내정 간섭을 지지한 정치인, 언론인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했다. 대한매일신보는 토왜를 한마디로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라고 정의했다. 이 말이 유행처럼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이 부정적 여론을 덮고 민초의 환심을 사려는 꿍심으로 여러 유화책을 내놓는데 그중 통행금지 해제는 약발 받는 특효의 처방이었다. 일 년에 오직 하루 크리스마스 전날 밤을 제하고는 야간 통행을 금지하는 이 조치는 해방되던 해 맥아더의 포고령에 의해 시행됐다. 표면적인 목적은 변환기의 치안 유지였지만 실제로는 이어지는 정권 내내 백성을 옥죄는 억압의 도구로 쓰였다. 그 가쇄가 풀린 것이 점령군 사령관이 제멋대로 선포해 밤길을 막은 지 36년 만에 보안사령관 출신의 전두환에 의해서니 그 숫자의 생김새나 풀어준 자의
남편의 직장을 따라 진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살아 온 지 올해로 서른다섯 해 째이다. 내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진주에서 보냈다. 진주에서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저 바쁜 대도시에서보다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서 매사에 마음이 조금은 더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진주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바쁘지 않아서 아이들을 덜 재촉하면서 키울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풍부한 자연환경과 역사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고향의 기억을 갖게 해 줄 수 있
연기 자욱한 주방. 열기 가득한 지옥. 온 몸의 근육과 온 몸의 기력을 다 쏟아 부어야 하는 열사의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던 당신들, 사흘이라는 짧은 투쟁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당신들. 앞으로도 당분간은 더 견뎌야 하는 당신들. 지켜질지 모르는 약속 한 마디에 너그러이 투쟁을 접고 아이들에게 돌아온 당신들. 이 땅의 어머니들. 당신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당신들을 존경합니다.덜덜거리며 힘겹게 돌아가는 환풍기의 검은 날개와 그을음이 덕지덕지 묻어 ‘피카소의 추상화’가 그려진 희끄무레한 타일벽을 가끔씩 올려보며 당신들은 목 디스
약산 김원봉 선생은 내가 존경하는 분 가운데 최상위에 위치하시는 분이다. 칼 같은 외모의 장엄한 기품도 그렇거니와 평생을 항일 항제 투쟁으로 일관하신 분. 일신을 초개같이 여겨 풍찬노숙을 수십 년 즐겨 하신 분. 일제로 하여금 최고액의 현상금을 내걸게 하시고 아울러 못 잡아 안달하게 하신 분. 그 거지(?) 같았던 중경 임시정부와 흔쾌히 좌우합작을 이뤄내고 꿈에도 그리던 해방을 드디어 맞아 이제는 민주 조국을 건설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고향(남한)으로 돌아오신 분.하지만 고향에서는 걸맞은 대접을 전혀 받지 못 하신 분. 단지
그때 이후의 한국 축구는 그만저만했다. 그러므로 애어른 할 것 없이 그저 붉은 티 한 장씩 걸치고 팔짝팔짝 뛰던 2002년의 성취는 다만 ‘기적적’이었음을 증명해주는 듯했다. 크고 작은 대회마다 4강이 원대한 목표였으나 4강이란 것이 한번 해봤다고 단골로 오를 수 있는 높이는 아니었다. 당차게 벼르고 장도에 올랐으나 빈번히 16강의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그때의 번뜩이던 기운으로 솟아올랐던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도 이미 은퇴했다. 박항서 감독이 일으킨 바람으로 동남아의 ‘용’이 된 자국의 전사에 환호하며 붉은 대열을 이뤄 경적 울리며
쌍욕(차명진)과 빈정거림(이언주)에 개무시(김문수)까지 당한다면 드디어 그건 당하고 당해서 한 없이 쭈그러든 몸에 모욕의 오물을 마침내 끓어 퍼붓는 것이 될 터. 청정한 마음과 티끌 하나 안 묻은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려 그렇게 애써 왔는데 세월의 더께에 오물이 끼얹어지고 티끌이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면 인간은 드디어 한계에 봉착한다. 그래도 진(瞋)과 치(痴)를 떨쳐야 하는 건 성깔이 없어서도 아니요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그냥 어이가 없어서이다.오랜 세월 수모와 모욕, 무시와 천시를 겪으며 미진수(微塵數)를 하나둘 쌓아왔던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맹렬한 의열단 활동으로 일제의 군경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약산 김원봉 선생을 평가한데 대해 자유한국당(이하 자유당)과 그 기관지 역할을 하는 조선일보 등 수구신문이 일제히 비난을 퍼붓고 나섰다. 이들이 문재인의 연설 중 문제를 삼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임시정부는 1941년 12월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과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습니다. 그 힘으로
봄여름이 가면가을겨울이 온다는 걸저희는 알지 못 합니다 시간은 지남도 없고멈춤도 없고세월은 흐르지도 않고흐르기도 하는 까닭을저희는 알지 못 합니다 오늘 먹으면 내일은 굶고내일의 양식은오늘의 양식이 아닐진대그 아님을저희는 알지 못 합니다. 이 놈이 잡아도 좋고저 놈이 잡아도좋은 세상은 없고없는 것도 없는이치를저희는 알지 못 합니다 같이 사는 게 좋은지우리끼리만 사는 게 좋은지저희는 알지 못 합니다 민주가 좋은지독재가 좋은지우리의 민주가 좋은지님의 독재가 좋은지저희는 알지 못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없어졌는지아직도 있는지저희는 알지 못 합
단디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 새로 대표이사를 맡게 된 강문순입니다. 진작 독자 여러분께 인사를 드렸어야 함에도 이런저런 사정을 핑계로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그동안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게으른 필자로서, 발 빠르게 움직이며 시의적절한 기사를 보내주고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칼럼으로 들려주는 단디뉴스에 고마운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대표이사라는 커다란 직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그 직함의 무게마저 제대로 느끼지 못할 만큼 어리버리한 상태에 있습니다.그러한 상태에서지만 그리고 짧은 기간이긴 하
어렸을 적 원대한 꿈이 있었지. 박정희 대통령 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 공부해야 했지. 무조건 쓰고 무조건 달달 외웠지. 책이 가르쳐 주는 것만 받아들였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었지. 공부 못 하는 짜슥들이 내 앞에서 주눅 드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움이었지. 국정교과서와 정통종합영어, 그리고 해법수학, 아 참. 삼위일체 영어도 목록에 들어가지. 내가 안 읽은 책은 없었지. 문사철(文史哲)은 제외하고. 수학의 정석도 웬만큼은 풀었지.팬맨십과 문천사의 학습지를 꼬깃꼬깃 큰 돈 들여 사 주시던 어머니의 흐뭇한 얼굴을 뒤로 하
그게 실개천이건 은모래 반짝이는 시내이건 각성바지가 모여 이룬 마을이란 대개 강을 끼고 양옆으로 옹기종기 모여 생겨난 것인지라 그걸 탈 없이 건너 오가는 것이 항상 난제였다. 강안의 폭에 따라 징검다리론 턱도 없고 사공을 두기에도 애매한 곳에선 마주 보는 강기슭에 말뚝 세워 철삿줄로 이어 건너는 장력선이 그나마 생강시런 수단이라. 표 받아 벼슬 얻겠다는 출마자들은 응당 “이 몸을 뽑아주시기만 하면 몇 달음에 성큼 건널 ‘다리’를 득달같이 놔 드리겠다!”가 일등 공약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놓는 시늉만 하다 내버려 둔 다리 명색은
진주와 창원에서 연달아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력범죄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신질환을 잠재적인 범죄 유발원으로 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안인득 사건 이후 진주에서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입법과제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진주시에서는 폐쇄회로TV(CCTV) 확대와 비상벨 시스템을 도입해 강력 사건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정신질환과 강력 범죄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검
언어학개론이 ‘개콘’으로 바뀌어 요즘 난무하고 있다. A라고 쓰고 B라고 읽는 것은 버얼써 지나간 얘기이다. A라고 쓰면 A가 되고 만다. 무서운 세상이다. "사랑한다"가 "사랑한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게 무슨 꿍꿍이지?“라고 읽히면 세상은 복잡해지는 법. 그 역(逆)도 성립한다. ”육시(戮尸)를 할 놈!“ 했는데 상대가 좋아서 헤벌레 웃으면 발화자가 헷갈려서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물론 그 다음 행동반경조차 애매해진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요즘 세상이 그렇다.’개콘‘은 최근 그렇게 일반화되었다. 문제는 한 줌
81년 3월 초였나 4월 초였나. 하여튼 박정희가 죽고 온 국민이 엎드려 울었고 5.18이 있었고 최규하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7-8개월 만인가. ‘최초의 평화적인 정부(’정권‘이 절대 아님) 교체’를 명분으로 ‘역사적인’ 사퇴를 했었지 싶다.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10월 유신 뒤 ‘한국적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비웃음 섞어 은연중 가르치던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예비고사에 나오나 안 나오나만이 중요했던 나는, 그 뒤 막연한 정의감을 조금은 갖고 있는, 훗날 절대 돈 안 되는 문리대 학생으로 성장(
지난 11일 오후였다. 시아버지를 치과에 모시고 갔다가 돌아가는 중인데, 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흥분 섞인 목소리로 “자매님 축하드립니다” 라고 한다. 조금 전 치과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던 낙태죄 위헌 선고 뉴스를 순간적으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지라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축하받을 일이 뭐가 있지? “왜에?” “자매님, 축하드린다고요” 자매님이라고 이야기 했을 때 알아챘어야 하는데도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딸은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났어. 7대 2래. 엄마가 기뻐할 것 같아서 바로 알려주는 거야.” “꺄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 자유한국당(이하 자유당) 대표가 자신의 주특기를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성토집회에서 황교안은 "이 정권의 좌파 독재가 끝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이 문재인 정권의 좌파 독재를 기필코 막아내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생전 해보지 않았을, 구호를 외칠 때 허공에 대고 질러대는 주먹질은 아직 어색하지만, 좌파에 대한 가없는 증오가 묻어나는 발언에는 살기가 넘친다. 공안검사를 하면서 사상범과 남파간첩을 많이 상대했을 테니 그럴 만도
지난 17일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방화 살인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두려움과 고통에 떨었을 피해자들과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절로 한숨과 함께 눈물이 난다.사건의 전말은 경찰과 사법당국의 조사가 모두 끝나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 문제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차별과 배제, 편견과 혐오에 관한 문제 말이다.사건이 발생한 17일 새벽, 화재가 나자 어른들은 계단 통로를 이용해 아이들과 노약자들을 먼저 안전한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