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환 경상국립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여행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대학 재직 중 남명학을 연구한 오이환 교수는 국내 및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 여행기록을 모아 [국토탐방], [해외견문록]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편집자 아내와 함께 남해바래길 12코스(남파랑길 44코스) 임진성길 트레킹을 다녀왔다. 오전 9시 무렵 진주의 집을 출발하여, 먼저 처가에 들러 아내가 욕실 수리를 위한 용무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사천시 삼천포와 창선도를 경유하여 11시 무렵 남해군 남면 평산항에 있는 12코스의 출발지점 바래길작은미술관에 도착하였다.평산리를 지
9월 지리산 초록걸음은 올해로 30주년이 되는 진주환경운동연합 창립 기념 행사를 겸해서 진행되었다. 1991년 9월 25일 ‘남강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으로 지역 환경운동을 시작했던 진주환경운동연합이 어느새 30주년이 된 것이다. 필자가 남강과 지리산을 지키는데 나름의 역할을 해 온 시민단체인 진주환경운동연합의 회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초가을의 기운이 바람으로 느껴지던 9월의 초록걸음은 지난해 새롭게 단장을 한 천은사 상생의 길에서 시작했다. 천은사는 화엄사 쌍계사와 더불어 지리산 3대 사찰 중 한 곳인데, 상생의 길은
이랑이와 꽃분이가 대문간을 향해 마구 짖었다. 누군가 집에 찾아온 것 같아 밖으로 나가니 이장과 마을수도를 관리하는 젊은이가 마당을 기웃거리고 있었다.“아이구, 이장님께서 어쩐 일이세요.” 슬리퍼를 껴신으며 황급히 문간으로 나갔다. 수도관리 젊은이는 뭔가 장부 같은 것을 들고 이장 곁에 엉거주춤 서있었다.“아, 석봉씨. 왜 있잖아요. 우리 군에 항노화 산삼엑스포 축제하는 거.”“그렇죠. 그거 한다더만. 코로나 3단곈데 하긴 하는 건가?”“인원 통제하고, 일부는 비대면으로 한다네요. 그래서 거기 소망등을 거는데 군민 이름으로 세대별로
8월 초록걸음은 지리산 둘레길 대신 치유의 길로 알려진 연기암길을 택했다. 연기암은 신라 경덕왕 시절 연기조사가 창건한 화엄사의 경내 암자로서 화엄사의 원찰이기도 하다. 화엄사에서 연기암까지의 계곡길은 원시림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말 그대로 치유의 길이다. 화엄사 계곡 해발 560m에 위치한 연기암에 서면 섬진강 강줄기까지 바라볼 수 있어 또 다른 볼거리가 된다. 원래 이 계곡길은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를 시작할 때 노고단으로 오르는 첫 깔딱고개로 유명하다. 지금은 대부분 성삼재까지 차로 이동해서 종주를 시작하긴 하지만.
산언저리에 붙어있는 밭은 이런저런 잡다한 것을 심었다. 그래서 하루도 발걸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울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는데 중간에 사방댐을 만들어 물웅덩이가 커다랗게 생긴 곳이 있다. 그곳을 지날 때면 사방댐 다리 위에서 물웅덩이를 내려다보곤 한다.지난해 긴 장마에 비가 많이 내린 뒤로 물웅덩이에 피라미가 살기 시작했다. 장맛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물고기 그림자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아래쪽에선 거슬러 오를 수 없을 만큼 댐 석축이 높으니 필경 골짜기를 가득 채운 장맛비에 골짜기 위쪽에서 떠내려왔을 것이다.한 해
유난히 늦은 장마가 끝날 무렵 초록걸음 길동무들은 칠선계곡 들머리 추성리 주차장에서 한 달 만에 다시 모였다. 설악산 천불동계곡과 한라산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 중 한 곳인 칠선계곡, 이원규 시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서 ‘칠선계곡에 오시려거든 아무 죄 없는 나무꾼으로 오시라’던 그 칠선계곡을 걷기 위해서다. 아침부터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장마로 대청소를 마쳤을 옥빛 계곡물과 서늘한 숲의 기운을 만날 생각에 경쾌하게 걸음을 시작했다. 추성마을에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장군목에 다다르는데 여기서부터 두지동마
“석봉씨. 다음 달부터 노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하지 않을래요?” 이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농사일도 많고, 아직 예순다섯 살이 안 되어 노인이 아니라고 했다. 이장이 내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 듯해 속으로 혀를 찼다.이른 봄부터 마을 이웃들이 노인일자리사업에 동원되고 있었다. 일주일에 사흘, 하루 세 시간씩 마을 골목길 정리와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한창 밭 장만할 시기에 이웃들이 청소한답시고 집게며 빗자루 따위를 들고 골목을 몰려다니는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었다.이 산골 마을에 무슨 할 일이 그리 많다고 여덟이나 되는 이웃 농부들이 하
6월 초록걸음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진주에서 자차가 아닌 관광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구례 원내마을로 이동을 했다. 하동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19번 국도를 타고 가는 길, 하동읍에서 악양을 지나 화개장터까지 4차선으로 도로 확장공사가 마무리되어 있었다. 다행히 아름드리 왕벚나무 가로수들을 살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해서 그나마 위안이 되긴 했다. 구례 원내마을에 도착, 초등학교 1학년 나린이와 대전에서 달려온 단골손님 박 교수님 부부 등 이십여 명의 길동무들이 안부 인사를 나누고는 모내기를 마친 유월의 들녘을 가로질러 섬진강 둑길에 이르니
일주일 전 아침, 그날따라 유난히 눈꺼풀이 무거웠다. 비몽사몽으로 눈을 비비는데 안쪽에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헌데 거울을 보면 바위만한 눈곱이 달린 것 외엔 정상이었다. 기분 탓인가? 게으름에 물을 끼얹으며 세수를 하고 다시 거울을 봤다. 세월을 덮어쓴 눈두덩이가 점점 아래로 쳐져가는 게 보였다. 어제보다 눈이 작아졌다고 느끼면서 별다를 것 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눈 뜨기가 더 어려웠다. 이제는 바늘이 아니라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통증이 심해졌고 눈 주위가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눈두덩
지리산의 골골 물들이 흘러드는 진양호, 그 진양호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과 함께 자전거길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번 초록걸음은 진양호 둘레길 중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양마산 물빛길을 걸었다. 양마산 물빛길은 진양호공원에서 출발, 진양호 전망대와 양마산 정상, 명석면 가화마을 지나 다시 진양호로 돌아오는 대략 12Km길이의 길이다. 진양호 탐조대에서 가화마을 가는 길은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진양호 둘레길의 한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출발점은 진양호 안에 있는 가족쉼터로 그곳에서 대숲길을 따라 진양호 안 귀곡동(까꼬실)으로 운행되는
“주민 여러분. 오늘 우리 마을에 가수 남진이 옵니다. 우리 마을을 테레비 방송국에서 촬영하러 옵니다. 아홉시 반까지 회관으로 모여 주십시오.” 동이 트기도 전에 마을 확성기가 골짜기를 울렸다. 아홉시 반이 되도록 서너댓 번은 울렸을 것이다. 어슴프레 날이 밝아올 무렵 밭에 나와 감자밭고랑 김매기를 하는데 아침 내도록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며칠 전이었다. 마을 이장이 전화를 해왔다. “부인이 음식을 잘한다면서요. 방송국에서 우리 마을 촬영을 나오는데 고사리 음식을 찍는대요. 가수 남진이도 온대요. 부인이 고사리 요리를 해주면 좋겠
일흔 넷에 글로벌 스타로 부상한 배우 윤여정 님의 기사는 언제 봐도 기쁘고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브래드 피트보다 빛났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장면을 유튜브로 몇 번이나 돌려보고, 과거 예능방송 출연 장면도 일부러 다시보기 할 만큼. 스스로 ‘생계형 배우’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진솔한 내면을 발견하고, 초보 감독의 독립영화에 과감하게 출연하는 노장의 도전 정신에도 감탄사 연발이다. 옷은 또 얼마나 잘 입는지, 남들 신경쓰지 않고 살아온 소신이 패션에 투영되는 거라면, 나도 항공잠바를 사입어? 잠바라도 따라 입으면 뒤늦게 소신 비슷한
“이거 큰일이네. 이제 어떻게 해요?” 마당으로 들어서자 아내가 걱정스런 말투로 읍내 다녀오는 나를 맞았다. 군청과 농어촌공사 사무실과 농협을 다녀온 나의 어깨도 푹 쳐져있었다. “그러게, 어찌해 볼 도리가 없네. 다들 안 된다고만 하고.”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지만 목돈을 장만할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지들을 생각해봤지만 요즘 세상에 돈을 꾸기가 그리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은 일찍이 하고 있었다. 필경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마을 앞 언덕바지에 있는 농지를 판다는 사실을 우
숨쉬기도 미안하다고 어느 시인이 노래한 그 4월, 여전히 코로나는 온 나라를 점령한 채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초록걸음 길동무들은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걸을 수 있기에 변함없이 지리산으로 모였다. 지리산 댐 건설 계획에 하마터면 수장될 뻔한 엄천강의 중심 용유담에서 4월의 초록걸음을 시작했다. 며칠 전 함양군에서 경관 확보와 쓰레기 불법투기를 방지하겠다는 이유로 도로변 수십 년 수령의 소나무와 참나무들을 무참히 베어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용유담은 2019년 정부에서도 지리산댐 완전 백지화를 선언함에 따라 역사
그날 밤 9시경, 나는 통영에서 진주로 오는 국도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니, 달리는 건 자동차였고,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으며, 혼자였다. 그리고 초보였다. 평소 자동차는 집과 일터를 오가는 출퇴근용이었고, 낯선 길은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진입하는 일이 없었다. 익숙한 길만 골라 다녔기 때문이다. 이 구간을 밤에 달려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취재차 통영에 들렀다 시간이 늦어졌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네비만 잘 따라가면 되겠지. 그러나 가로등이 대낮같은 통영 시내를 벗어나 캄캄한 국도로 진입했을 때야 알았다. 칠흑같은 어둠의
밥솥을 열자 물이 찰랑거렸다. 이런 정신머리하고는. 취사 버튼 누르는 걸 깜빡 하고 말았다. 식탁에선 아이들이 숟가락 뜰 준비를 하고 앉아있었다. 30분 더 기다리자고 하면 민원이 끓어오르겠지. 심심하면 도지는 취사망각 증세를 실토하고, 지갑을 챙겼다. “우리 오늘 김밥 먹을까?” 잠옷을 겸하는 추리닝 복장으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슬리퍼를 끌고 나갔다. 늘어진 무릎 부분이 거슬렸지만 어차피 마스크도 썼겠다, 알아볼 사람도 없는데 뭐. 아파트 상가 분식집에서 김밥을 담은 검은 봉지를 달랑거리며 바삐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00에미야
하동군 청암면에 자리한 하동호는 1985년 1월에 착공하여 1993년 11월에 준공한 농업용 댐으로, 청학동 계곡과 묵계 계곡의 물들이 흘러들어 거대한 산중호수를 만들었다. 지리산 둘레길 10구간과 11구간이 연결되는 지점에 있는 이 하동호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새 단장을 하고 지난해에 완성되었다. 총연장 7.5Km에 수평의 길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긴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지리산 둘레길에 포함되지는 않은 상태다.2021년 춘분날의 첫 초록걸음도 지난해처럼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마스크로
해마다 이맘때면 목련공장이 문을 연다. 전 과정 수동식, 일종의 가내수공업쯤 되겠다. 우선 장롱 안에서 찾아낸 전기장판으로 부지를 조성한다. 그 위에 가로세로 약 1미터 너비의 흰 종이를 깔고, 꽃망울이 터질락말락 하는 꽃송이를 조심스레 올린다. 그러나 이 몇 줄로 전체 공정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급작스럽게 동원된 꽃송이들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낯빛이 노래져서 뻣뻣하게 노려보는데 기세가 여간 아니다. 심상치 않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목련 공장의 본사(?)는 한적한 시골 밭에 위치하
온종일 비가 내렸다. 이웃마을 술동무 연락을 받고 면소재지 내장탕집에 나가 제법 술을 마시고 초저녁 집으로 돌아오자 이제 막 저녁밥상을 물린 식구들이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뭐야, 오늘 국가대표 축구하는 날인가?” 아내의 어깨너머로 텔레비전을 기웃거리는 내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텔레비전 화면 귀퉁이에 ‘윤스테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눈에 들었다.“민박집 이야기야?” “그래요. 구례 쌍산재예요.” 그제서야 보름이가 말을 받았다. “와, 좋네. 집이 대궐이네.” “지난번 가봤는데 완전 고택인데다 대숲이 너무 좋더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난리통에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걸었던 2020년의 초록걸음은, 회남재길을 끝으로 무사히 마무리됐다. 조그만 사고도 없이 함께 걸어준 길동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리산을 지키는 또 하나의 몸짓이란 생각으로 지리산 초록걸음을 걷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10년이 되었다.2020년의 초록걸음은 처음부터 ‘지리산을 그대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걷는 내내 이름조차 생뚱맞은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로 시끄러운 지리산과 함께 했다. 지리산 형제봉 일대를 대규모 산악 관광단지로 조성하기 위해 반(反)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