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안 아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 베스트 3를 자체 선정했다. 3위는 “밥 다 먹었니?” 평소에도 행동이 굼뜬 녀석은 방학을 맞아 대놓고 꾸물거린다. 특히 밥상 앞에서 멍 때리기가 특기인데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씩 웃으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엄마, 블리자드가 요즘 너무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거 같아요.” 그럴 때 같이 맞장구 칠 수 있는 건덕지라도 있다면 모자간의 대화가 계속 이어질텐데. 아쉽게도 그 분야는 내가 아는 바가 없다. 다음 말을 기다려줄 여유도 없다. 어서 밥 차려주고 일하러 가야한다. 그렇다고 면전
“돈은 쥐고 있으면 구린내가 나고, 쓰면 향기가 난다” 진주에서 한약방을 해온 김장하 선생님 말씀이다. ‘병자의 돈을 벌어 자신을 위해 써서는 안 된다’는 삶의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진주 살 때 한없는 존경심으로 선생님을 만났었고, 그 삶의 언저리라도 밟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키웠었다.진주에서 오래 전부터 함께 환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모임이 한 달에 한번 있는데, 이번 모임은 김장하 선생님 생일축하잔치에서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벌써 팔순인가? 팔순쯤 되니 잔치판을 벌이는 게 아닐까하는 마음으로 진주로 향했다. 지리산
오후에 밭을 둘러보러 나갔다. 겨울답지 않은 날씨다. 건너편 콩밭엔 거두지 못한 허수아비가 드문드문 서서 빈 밭을 지키고 있었다. 검불 사이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 날아오르고, 따라 나온 꽃분이가 컹컹 짖었다. 참 한가로운 시간이었다.얼었다 녹았다를 거치면서 겉잎이 말라버린 시금치 속잎은 고라니가 다 뜯어먹었다. 따뜻한 겨울날씨에 웃자란 양파와 마늘이 걱정이다. 아직은 푸릇한 봄동이 설렘을 준다. ‘대한 지나면 얼어 죽을 일 없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대한이 낼모레니 겨울도 고비를 넘어선 것 같다.고추 심을 밭이나마 늘려보려 했지만
“뭐, 뭐라고?” “아니, 내 말이 안 들려요? 귀가 가나봐.” “당신이 말을 좀 알아듣게 해야지.” 곁에 앉은 아내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 걸핏하면 이런 모습을 보여 왔다. 특별히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씩은 못 알아듣곤 했었다. 내가 다른 생각에 열중할 때 아내가 느닷없이 말을 해와 못 알아듣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전화통화를 할 때도 ‘뭐라고? 뭐라 했는데?’라며 되묻기 일쑤였다.“당신이 뭔 말을 할 때면 자꾸 목소리가 커지는 거 같아.”
솔라시도~ 아침마다 ‘솔’에서 시작해 높은 ‘도’에서 끝이 난다. 아들을 깨우는 일. 세상 모든 일에 단계가 있듯, 녀석을 깨울 때도 내 목소리는 단계별로 레벨 업 된다. 첫 음은 평화롭게, ‘아들~일어나’ 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좀 더 소리를 가다듬어 ‘아침이야~’, 이때도 나오는 답이 정해져있다. ‘오분만요~’. 그래, 한 번에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밥상을 차리거나 이미 일어나 있는 딸의 머리를 빗겨주며 시간을 벌다가 다시 아들의 방문을 연다. ‘오분 지났어, 일어나, 눈 떠라, 어서’ 역시나 이불 안은 요지부동.잠에서 깨어
또 한 해가 저문다. 내년이면 예순 셋, 환갑진갑 다 넘긴 중늙은이가 되었다. 올해도 잘 지나갔다. 이런 산골에서 꼼지락거리며 사는 것도 일이라고 우리 가족도 이런저런 일을 더러 겪었다. 시끌벅적한 세상, 쓰지 못한 일기를 쓰듯 2018년 기억해야할 몇 가지를 적어둬야겠다. 2018년 우리 집 10대뉴스다.‘서하, 세상을 향해 말을 하다.’함께 사는 손녀 서하가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배냇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훌쩍 커서 골목길을 뛰어다닌다. 말문이 안 터져 속앓이를 했는데 어느 순간 “밥 더 줘.”라고 온전히
“그게 뭡니까?” 마실을 나가는데 이웃집 돌담 안에서 남자어른 둘이 쪼그려 앉아 무슨 일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고라니가 한 마리 걸렸네. 허허.” 골목 끝 박샌이 피 묻은 칼을 든 채 뒤돌아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가죽이 벗겨진 채로 큰 다라에 담긴 고깃덩이가 어깨 너머로 보였다.“이 놈 이거 가는골 콩밭에 콩잎 다 뜯어 먹은 놈이라.” 그의 아내가 빈 물바가지를 고깃덩이가 담긴 다라를 향해 흔들어댔다. 속이 후련하다는 투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올무에 걸려 버둥거리는 고라니의 모습이 떠올라 얼른 자리를 뜨는데 박샌이
실은 나도 눈을 반쯤 감은 채였다. 이제 막 자정이 지났다. 극심하게 몰려드는 졸음에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신문을 넘겼다. 옆에선 아들이 시험공부 중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말고사를 겨우 며칠 앞두고 벼락치기에 돌입한지 이틀째. 아까부터 아들은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었다. 평소 안하던 공부를 억지로 하자니 머리에 쥐가 나는 모양이었다. 밤이 깊을수록 죄 없는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방바닥을 뒹굴었다.전날, 코앞으로 닥친 기말고사에 쫓겨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 내가 문제집 푼 거
새벽비가 내린다.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린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굵은 빗줄기가 텅 빈 꽃밭을 적신다. 마루에 걸터앉아 비 내리는 어둠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어폰을 꼈다. 정태춘씨의 노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와 최백호씨의 노래 ‘하루 종일’을 듣는다. 문득 오래전에 끊어버린 담배를 한 개비만 피웠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서울 안 가?” 며칠 전 밥상머리에서였다. 아내가 나가는 모임이 있는데 매달 그 날이 다가오면 아내가 먼저 챙기곤 했었다. 그 날이 다가와도 언급이 없어 잊고 있나 싶어 내가
“아부지. 저녁은 뭐 먹을까?” 운전석에 앉은 아들 녀석이 백미러로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진주환경연합 후원음악회가 있다고 해서 녀석이 나가는 사무실 활동가들과 함께 진주로 나가는 길이었다. “상봉동에 있는 진가네 돼지국밥이 좋더라. 소면도 무한리필 되고.” “또 돼지국밥?” “그 집 돼지국밥 맛있더라. 왜 싫어?”“아부지. 아부지도 그러면 꼰대 다 된 거예요. 항상 돼지국밥. 그게 꼰대라는 증거라고요. 돼지국밥 아니면 밥맛이 안 나지? 다른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지? 다른 음식점 가볼 생각도 못하지? 삼시세끼 맨날 먹는 밥그릇 한
논밭이 비자 집안이 풍성하다. 아래채 툇마루엔 이런저런 자루가 가득하다. 가을은 그렇게 집안으로 들어왔고, 빈 논밭 고라니 발자국마다 겨울이 조금씩 두께를 더해가는 나날. 얼추 스무 되나 되는 들깨는 잘 말려 김장독 비닐봉지에 갈무리했고, 산마와 토란은 종이상자에 담아 아래채 아궁이 곁에 덮어두었다. 대추는 말려 양파망에 담아 처마 아래 대롱대롱 걸어두었고, 겨우내 먹을 고구마는 안방 구석에 쌓았다.아직 마루에서 뒹구는 누렁호박은 오가리로 만들어야 하고, 채반에 말린 우엉은 볶아 우엉차로 만들어야 한다. 은행과 호두와 땅콩은 너무
‘개꿀~’ 수능시험을 중딩 아들은 이렇게 불렀다. 예비 소집일에는 단축수업으로 일찍 마치고 수능 당일에는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다니. 그 소식을 전하는 순간에도 아들은 신이 나서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곤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느 PC방을 갈지. 마치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갈등하는 직장인처럼 흔들리던 녀석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엄마! 안되겠어요. 친구들하고 그냥 집에서 놀게요, 그래도 괜찮죠?” 컴컴한 PC방을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나는 동네 슈퍼로 향했다. 녀석들이 집에 오면 라면이라
'조금 전에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나도 잠을 깼고요. 그곳 병실도 여기처럼 많이 고요하지요?' 어젯밤 꿈에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고향집도 보았고요. 방죽 옆 우리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어머니, 거머리에 물린 종아리에서 피가 계속 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못줄을 잡다말고 ‘출근을 해야 하는데 깜박 잊고 있었네. 이거 큰일 났다.’며 놀라 꿈을 깼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누워 그을음처럼 어둠이 웅얼웅얼 붙어 있는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집사람이 깰까봐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습니다. 요즘 집사람은 낮잠 자는 서하 본다
"오늘 하루 어땠어?" 퇴근하고 식탁에서 아들과 마주 앉으면 언제나 묻는 말이다. 아들의 하루는 첫마디에 모든 게 담겨있다. 대개는 ‘괜찮았어요’로 시작해 친구들과 장난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다가 선생님들 표정이나 말투를 흉내 내면서 마무리. 그러면 그날 하루는 정말 좋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별로야"가 먼저 나오면 그때부턴 준비가 필요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 소년의 사나운 여정을 수용할 마음의 준비.그날은 두 번째 경우였다. 어쩐지 아들의 얼굴이 평소와는 조금 달라보였다. 약간 부은 거 같기도 하고. "왜? 무
오래전 아내가 속삭인 말이었다. 추운 날 이부자리 속에서였을 것이다. “휘그이 아부지. 이야기 하나 해주께. 오늘 들은 이야기야.” 누워있던 아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려 몸을 돌려 엎드렸다. “실연을 당한 젊은이가 있었어. 그 젊은이가 정처 없이 여행을 하다 강원도 심심산골에서 하룻밤 묵게 된 거야.그 농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단 둘이 사는 집이었어. 옆방에서 잠을 청하는데 두 노인네가 끝도 없이 말다툼을 하는 거야. ‘이 영감탱이가 빨리 안 죽고 사람 고생만 시킨다.’며 할머니가 아웅 거리면 ‘이 할망구가 저나 빨리 죽지 왜 날 빨리
밤이 이슥해 마당으로 나왔다. 써늘한 날씨에 풀벌레 울음소리도 끊겼다. 건너편 다랑이 논에서 고라니가 크게 울었다. 아래채 민박 방 봉창은 아직 불이 켜졌고 도란도란 얘기소리가 새어나왔다. 가끔 깔깔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도 섞여 나와 내 맘까지 푸근해지는 밤이었다.습관처럼 아궁이 불씨를 확인하고, 마당 외등을 끄고 바깥마당으로 나와 밤하늘을 보았다. 발등으로 쏟아질 것 같은 별무리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느새 겨울 별자리가 밤하늘에 가득했다. 따끔따끔 얼굴에 서리가 떨어지는 듯했다.마당 언저리에서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아래채를
“아이고, 사장님. 우리 상아 봉아가 댁에 큰일을 저질렀네요.” 이른 아침 밭을 둘러보고 오다 만난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안절부절이었다. 마을 뒤 언덕바지에 커다란 목조저택을 지어 귀촌한 이웃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침마다 내가 밭을 둘러보러 가는 시각에 운동 삼아 마을주변 길을 걷는데 항상 개 두 마리를 몰고 다녔다. 상아 봉아로 불리는 그 개는 덩치는 작았지만 갈색 털에 눈은 부리부리했고 체형이 다부지게 생겨 꽤 사나워보였다.“아니, 왜요?” “글쎄 내가 줄을 놓쳐서 이놈들이 댁에 마당에 들어가 닭을 물었어요.” “그래요? 어쩌
하늘이 열리던 날, 가족들과 개천장에 나갔다. 굳이 ‘개천장’이라고 적은 이유는 우쭐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예술축제 효시’라는 거창한 설명 없이도 개천장이라고 하면 으레 다 알아듣는, 선 굵은 역사를 우리는 지녔다고 자랑하고픈 마음.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아이들 손을 잡고 밤마실을 나선다.서부시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진주성까지 가는 동안,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걸었다. 제법 쌀쌀한 가을바람에 대비해 가벼운 점퍼를 걸친 옷차림도 대개 비슷했다. 젊은 어른은 아이 손을, 아이는 다시 노인의 손을 잡고 걷는
아침 여섯시를 넘겨 창이 훤해질 무렵 단도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꽃분이가 따라나선다. 멀리 지리산 등성이로 굵은 구름덩이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밭을 둘러본다. 배추와 무는 잘 자라고 있다. 파를 심은 곳은 가뭄을 타는 듯하다. 밤 기온이 낮아 시금치 자라는 속도가 더디다. 찬이슬에 호박덩이는 더욱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발걸음을 옮겨 산으로 향했다. 산밤을 주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부터 묵고 있는 민박손님들이 오늘 떠난다. 다섯 식구 한 가족과 세 식구 한 가족과 부부손님이다. 다섯 식구 가족은 벌써 몇 번째 우리집을 찾
올해 여름엔 귀퉁이방에 민박손님이 들 때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유난히 더운 날씨로 들창을 개봉하면서부터였다. 귀퉁이방은 들창이 하나 있는데 들창 밖이 화목보일러실이고 장작더미가 쌓여있어 창을 밀봉해두었었다. 그 들창을 무더위가 걷어낸 것이다. 막아두었던 합판을 뜯어내고 모기장을 발랐는데 방이 한결 시원해졌다.“아버지. 저 닭들 죽으면 이제 앞으로 닭은 안 키우면 좋겠어요.” 들창을 개봉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보름이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왜?” “민박손님들이 얼마나 괴롭겠어요.”정말 그렇겠다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