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숨 한번 돌릴 때다.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을 이겨낸 열매들이 여물대로 알차게 여문 요즘 부지런히 내달려온 나와 아내를 특별히 위로하기 위해 특별한 동네, 산청군 특리에 있는 동의보감촌을 10월 3일 찾았다. 9월 30일부터 시작해 10월 10일까지 ‘산청 한방약초축제’가 그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산청읍 내를 지나 금서면 특리로 가는 굽은 길가에는 들국화라 불리는 구절초가 하얗게 피어 바람에 일렁이며 반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동의보감촌으로 타박타박 두 손 잡고 걸었다. 비가 내렸다. 근처
“진주에는 관련된 11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에 현재 생존자는 없다. 우리가 미숙해 이들을 돌보지 못했고 쉴 수 있도록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반성해야 한다."27일 오후 7시 진주 YWCA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상 건립을 위한 진주시민 토론회가 열렸다.“산 역사의 현장에 뛰어든 이 자리에 함께한 많은 분과 내년 3월 1일 제막식에서 다시 뵙기”를 청하는 건립추진위원회의 인사말로 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상 건립을 위한 진주시민 토론회 27일 오후 7시 진주 YWCA에서 열려경상대학교 김준형
온 누리를 물들일 가을 햇살이 너무 고와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발 닿는 곳마다 온통 붉게 물들 가을을 앞두고 조붓하게 걷고 싶었다. 느긋하게 다가올 가을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래서 경남 산청으로 9월 20일 길을 떠났다. 경남 산청여행의 일 번지는 동의보감촌이다. 불교 신자라면 성철스님의 생가터에 세운 겁외사가 먼저고 조선 선비의 기개를 찾는다면 남명 조식 선생의 산천재가 좋다. 아름다운 경치 구경하기에는 내원사 계곡이 딱 맞다. 나는 산청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조각공원과 목아전수관, 산골박물관을 다녀왔다. 함양에서 산청
바야흐로 떠날 때다! 가을, 어디로든 떠날 때다. 성큼 다가온 가을을 즐기기 위한 특별한 방법을 찾아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특별한 동네를 9월 20일 찾았다.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면 경남 산청군 특리에 있는 동의보감촌이 딱이다.경복궁 근정전을 닮은 동의보감촌 동의본가 동의전에 이르자 마치 임금이라도 된 양 기분이 좋다. 기와 담장 아래 하얀 구절초가 소담하게 피었다. 동의전 뒤 북쪽 산기슭에 있는 가락국 제10대 왕의 능이라 전하는 ‘전(傳) 구형왕릉’에서 유래한 왕산이 있다. 왼편으로는 산봉우리가 붓끝을 닮았다는 필봉산이 감싸고 있
위로가 필요로 한 나를 위해 이 가을 훌쩍 떠나고 싶다면 경남 함양 상림으로 가자. 누군가 못내 그리워지는 이 가을, 붉은 마스카라 칠한 여인의 속눈썹처럼 요염한 유혹에 즐겁게 넘어갈 수 있다. 붉은 물감을 확 뿌려 놓은 듯 붉게 빛나는 꽃무릇 레드카펫에 이르면 이 세상의 중심에 선 기분을 느낀다. 민족의 명절 추석 다음 날 아침부터 비가 주적주적 내렸다. 경남 함양 상림공원에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로 붐볐다. 근처 비 내리는 하늘을 향해 호미를 힘차게 움켜쥔
눈을 뜰 수 없었다. 하늘은 시리도록 새파랗다. 바람은 등을 떠밀 듯 시원하게 불었다. 등 떠밀 듯 시원하게 부는 바람 덕분에 소담소담 걷기 좋은 산청 남사 예담촌 돌담길을 찾아 8월 29일 나섰다.진주-산청 일반국도에 차가 오르자 곧 명석면 소재지를 지나자 급할 게 없는 나는 차를 세웠다. 용호정원으로 걸어갔다. 담벼락의 주황색 능소화를 지나자 연꽃들이 파란 하늘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진분홍빛 색을 더해가고 벌들이 향을 찾아 날아들었다. 연잎에는 밤새 내린 물방울들이 알알이 맺혀 움푹 패인 곳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당
덥다고 선풍기, 에어컨 바람에 취하기 싫었다. 시원한 계곡에 발 담근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콩닥거린다.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귓속에서 졸졸졸 젖어든다. 8월 14일 우리 가족 모두는 경남 산청 송정숲에서 흐르는 물에 발 담그러 갔다. 더위를 내려놓고 자릿세 걱정 없이 시원하고 좋은 추억만 담아 왔다. 산청군 삼장면 삼장초등학교에서 현수교처럼 생긴 예쁘장하게 생긴 다리를 건너면 송정숲이다. 우리 가족은 이른 시간에 출발해 도착했지만 송정숲 계곡 옆에는 벌써 사람 반 물 반이었다. 4만3500㎡ 규모의 자연 발생 유원지인 송
몸이 파김치처럼 축축 처지는 날. 문득 궁금했던 그곳을 찾아가고 싶었다. 힘을 채워보고 싶었다. 남해고속도로 동진주(문산) 나들목과 문산휴게소 뒤편 언덕을 내달리는 하얀 말들이 내게 힘을 전해줄 듯싶었다. 달리고 싶었다.경상남도 진주시 혁신도시 충무공동사무소 주차장에 들어서자 방긋 웃는 논개 캐릭터 아래에는 큰 칼 왼손에 꽉 쥐고 오른손으로 전투를 지휘하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유등이 먼저 반긴다. 주차장 뒤편으로 걸어가면 산양을 닮은 조형물이 작은 언덕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양새가 눈에 들어오는 하얀울 공원이 나온다. 더위에도
한창 더위로 숨이 턱턱 막힌다.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일하는 나를 위해 떠났다. 쉬고 싶을 때는 숲으로 간다. 흐르는 물살에 발 담그고 있노라면 어느덧 초록빛이 친구처럼 찾아드는 곳을 찾아 8월 4일 경남 함양 상림공원으로 길을 떠났다.상림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냉커피를 샀다. 마치 소풍 나온 아이처럼 설레며 상림의 초록빛 가득한 숲으로 들어갔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해 이달 2일까지 열린 ‘함양산삼축제’의 흔적의 공원 입구부터 가득했다. 여기저기 행사장을 정리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많다. 상림
더위에 숨넘어간다.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일할 때면 시원한 바다와 계곡이 나도 몰래 떠오른다. 도심에서 멀리 가지 않아도 마음마저 시원하게 씻어주는 풍경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진주에서 사천으로 가는 길 경상대학교 가좌캠퍼스를 지나 정촌면 예하리 예하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강주연못이 나온다. 강주는 진주의 옛 지명이다.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 강주(康州)를 진주로 개칭해 현재에 이른다. 이곳 강주 연못은 군대가 머물렀는데 강주 진영(陣營)이 있던 자리다. 강주 연못은 정확하게 언제 축조되었는지 알 수 없다. 강주라는 지명
마흔다섯, 죽음을 선택한 그에게 같은 나이인 나는 묻고 싶었다. 모진 고문 속에 천주교를 버리고 목숨을 구걸하라는 종교 배반과 알고 있는 천주교 신자를 털어놓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배신을 마다하고 기꺼이 죽음을 맞았는지 알고 싶었다. 더구나 고려 말 충신으로 이름 드높은 정온의 18대손 후손으로 나라에서 금지한 서학(천주교)을 받아들였는지 궁금했다. 그는 정찬문 안토니오다. 그는 성인의 바로 아래 단계인 복자로 2014년 우리나라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식에서 선포되었다. 후덥지근한 11일, 아침을 먹기 바쁘게 부랴부랴
올해 초 백일기도로 왕이 된 조선 시대 인조의 흔적이 머문 경남 진주 성전암으로 가는 길에 ‘평촌리 은헌고택’을 지났다. 다음 기회에 하면서 미룬 게 여러 달이 가버렸다. 마치 빌려준 돈을 꼭 찾을 요량처럼 6월 23일은 점심을 먹기 부리나케 길을 나섰다. 진주에서 창원 마산으로 향하는 진마대로 이반성 교차로에서 빠져 이반성면 소재지가 나온다. 면 소재지를 지나 좀 더 올라가면 옛 평촌역이 나오는 삼거리를 지나면 은헌고택이 있는 중도마을이 나온다. 개망초가 하얗게 무리 지어 핀 길을 지나자 고택으로 가지 않고 오른편으로 나도 모르게
“아빠 휴대폰 좀 가져다줘~”3주 전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중에 급하게 아이를 찾았다. 참가비 무료에 선착순 마감이라 적힌 경남도민일보 기자와 독자의 만남 이벤트 알림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진주지역 경남 최초를 찾아서’라는 주제였다. 문자로 참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새신랑처럼 6월 18일을 첫날밤처럼 기다렸다. 6월 18일 30여 명의 참가자와 함께 진주시 문산읍에 있는 문산성당을 먼저 찾았다. 문산시장 근처에 버스는 멈추고 50m가량 골목길을 지나자 한적한 기와집 뒤로 뾰족한 고딕 건물이 나오는 데 바로 문산성당이다. 문산
“~나병 판정을 받던 날 내 인생의 곡(哭)소리는 울리고・・・/ 부모 형제를 고향에 두고 깨어진 운명의 조각을/ 안고 광야를 찾아 나설 때 아~ 하늘이시여! / 통곡도 했습니다.// ~내일은 언제나 희망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아 ~ 이제는 나는 많은 이들 가운데에서 / 가장 풍요로운 축복을 입었노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성심원(원장 오상선 신부)에서 4일부터 6일까지 열린 제5회 성심인애축제 시문학 콘서트에서 영화 처럼 곡소리 토해내듯 낭송한 중 일부다. ‘비
5월 나흘 연휴 동안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해 가볍게 길을 나섰다. 벼랑이 병풍처럼 남강을 에워싸는 봉우리가 일곱 개라는 칠봉산을 5월 9일 찾았다. 산을 본 적은 무수히 많다. 정작 칠봉산에 오른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진주 시내에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닌 이들이라면 누구나 소풍 장소로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굴바구’, ‘굴바위’라고도 부른 산 아래 모래밭에서 놀았지만, 산에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큰 바위의 산이었다. 진주시 하대동 집을 나서 평거동 희망교를 지나 내동면 독산리 휴먼빌 아파트 정문 앞을 지
“의병, 의무병 아닌가요?”사회복지시설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는 20대 청년의 의병에 관한 대답이다. 그러나 의병(義兵)은 ‘옛날에 나라를 지키려고 백성들이 스스로 일으킨 군대(『보리 국어사전』)’를 뜻한다. 민중 스스로 외적에 대항해 싸운 구국 민병인 셈이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과 구한말 을미사변과 국권 상실 전후의 의병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 의병을 기념하는 의병축제가 열리는 경남 의령으로 22일과 24일 다녀왔다. 22일은 내가 일하는 산청 장애인생활복지시설 내 장애인 11명과 나들이였다면 24일은 아내와 막내아들과 함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사막여우가 왕자에게 한 말이다. 나도 직장 나들이 장소가 결정 나면서 행복해졌다. 그리고 기다려졌다. 기다리는 동안 『이순신평전』과 『인간 이순신평전』 두 권의 책을 번갯불에 게눈 감추듯 읽었다. 장소는 다름 아닌 경남 통영. 통영이라는 이름처럼 조선 수군 통제영이 있던 곳이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데래야 델 수 없는 이순신의 흔적이 짙게 드리운 곳이다. 즐겁게 기다린 그 날은 비가 내렸다. 봄비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지난 7일 내렸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일본 제국주의 강제 점령기에 일본인들은 몰랐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몰라서는 안 되는 역사의 현장이 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키고자 했던 김준민 장군의 결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3월 30일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로 향했다. 진주에서 옛 마산으로 가는 ‘진마대로’를 타고 가다 월성 교차로 지나 발산리에서 빠져나오면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발산리는 진주와 창원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발산고개를
달이 뜬 자리에 해도 뜬다. 두 봉우리 사이로 뜨는 달과 해는 천하일품이다. 두 봉우리는 낙타 쌍봉을 닮았다. 봉긋 솟은 여인의 젖가슴 같은 두 봉우리 사이로 ‘휘영청 둥근 달을 토해놓는 풍경이 아름다워 아산토월(牙山吐月)’ 이라했다. 산 이름도 ‘월아산(月牙山)’이다. 달음산이라고도 한다. 아침 해돋이도 아름답다. 해돋이는 경남 진주 8경 중 하나다. 금호지(금산연못)에 비친 달과 해의 모습은 언제나 사람들을 푸근하게 한다. 봄 햇살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가만히 잊지 못하게 하는 봄바람에 달이 뜨고 해가 뜨는 아름다운 풍경
볕 좋은 날이었다. 바람 한점마저 엉덩이를 들썩들썩 이게 하는 날이었다. 어디론가 훌쩍 봄 마중 떠나고 싶은 3월 3일 들썩이는 마음은 봄 마중을 마다하고 경남 진주 진성면 용고미 마을로 향하게 했다. 아내를 아홉 번이나 내쫓고도 나라에서 칭찬을 받은 사내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금산면 월아마을 입구에서 월아산을 넘어 진성면으로 가는 길가에는 나무들이 민낯이다. 한 달 뒤쯤 봄이 농익어갈 무렵이면 하얗게 필 2,000그루의 벚나무들이 터널을 이룰 것이다. 이 고갯길을 하얗게 물들일 그때를 떠올리니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