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어리둥절할 때가 가끔 있다. 누군가의 앞뒤 안 맞는 행동을 볼 때. 평소의 말과 이 순간의 행동이 사뭇 다를 때. ‘내’가 화를 내야 하는데 ‘네’가 화를 낼 때. 배고파 미치겠는데 “배부르니 그 따위 소리나 하지”라는 지청구를 들을 때. 또 있다. 자신은 결코 예쁘지 않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미친(?) 인간이 다가와 불콰한 얼굴로 삿대질하며 “예쁘면 다야?”라고 거세게 따질 때.이럴 때면 모두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게 되고, 일견 기쁘기도 하지만 다음에는 분노의 단계에 자연스레 진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 사람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하여 시민사회의 반대가 거세다. G20 의회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공식방문한 문희상 국회의장이 와세다 대학에서 뜬금없이 ‘1+1(일본기업 + 한국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안’을 제시한 후 ‘1+1+@(일본기업 + 한국기업의 자발적 출연금 + 양국 국민의 성금)안’, ‘2+2+@+화해치유재단의 남은 돈 60억원 (일본 기업의 출연금과 일본 정부[화해치유재단의 남은 돈 60억원을 일본 정부의 출연금으로 친다] + 한국 기업의 출연금 + 한국정부[새로 설립될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든 일단 잘못했으면 주눅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나이 60 훌쩍 넘겨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과거에 잘못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요즘은 하나하나 반추하며 옷깃을 여미는 것은 물론 내 잘못으로 마음이 심히 상했거나 피해를 보신 분들께 속죄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 가운데에는 검찰과 관련한 잘못도 있었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기자들이 검찰을 우습게보기도 했고 검찰은 그 대척점에 서서 여차하면 잡아넣으려고 기자들의 죄악을 차곡차곡 파일에 쌓아놓고 기회만 엿보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나도 두어 번 검찰에
봉곡 로터리에 형형색색의 조명을 넣은 분수대가 세워졌다. 명색이 화단이라 했어도 수년째 켜켜이 먼지 뒤집어쓰고 누더기처럼 웅크리고 있던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꽃나무를 걷어내고 모양지게 잔디도 새로 깔고 조경석도 본때 있게 배치했다. 게다가 두 길도 넘는 높이의 분수에서 갖가지 모양으로 물까지 내뿜으니 우중충하고 썰렁하던 주변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시내 나갈 일 있으면 역부로 봉곡동 쪽으로 차머리를 돌려 공연히 한 바퀴 로터리를 동그라미 친다. 늙숙한 이들은 흑백사진의 아련한 추상에 빠지기 맞춤하고 새파란 이들 눈길 또한 끌기에
항해하던 선박이 조난을 당해 다섯 명만 간신히 살아남게 됐다. 하지만 구명정 승선 인원이 두 명 뿐이라서 세 명은 배에서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살아남을 두 명을 가려낼 방법은 수백 가지가 될 것이다. 키 큰 순으로 할 수도 있고, 몸무게 순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험문제를 풀어 가장 많이 맞힌 두 명을 골라 낼 수도 있고, 성별을 따지거나 외모, 국적 또는 성정체성을 따져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 행실을 따져서 인기투표를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조율을 한답시고, 시험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어둑해진 아파트 앞 길가에 탑차 한 대가 뒷문을 열어제낀 채 서있다. 그 옆에는 뿔테안경을 쓴 깡마른 체격의 오십대 초중반의 아저씨가 허리를 숙이고 박스더미들을 정리하고 있다. 한 손으로는 연신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다른 한손으로 바쁘게 물건들을 분류한다. 짐을 나르다가 전화를 받고는 ‘감사합니다’와 ‘죄송합니다’를 연발한다. 길고 무더웠던 지난 여름 내내 아저씨는 땀에 젖은 런닝셔츠를 걸친 채 같은 모습으로 일을 했다.운전을 하다 보면 무리하게 차 앞으로 끼어들어 곡예하듯 달리는 오토바이를 만날
얼마 전 TV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국정감사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는데, 질의하는 한 국회의원 옆자리에 여성 전신 인형이 조신하게(?)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안경을 쓴 모습은 더 가관이었다. 이 인형은 섹스토이로 분류되는 리얼돌이라는 것이었는데, 그 이미지를 좀 완화 시키려는 의도였을까?리얼돌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것은 세관에서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통관을 보류한 것에 대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국민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2심의 논리를 채택해 수입을 허용하면서부터이다. 이에
돌고 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나간다고 했다. 하루가 쉬우면 다음은 어려운 법. 하루 먹으면 다음 하루는 굶는 법.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그리 하면 죽을 때가 온다고 했다. 세상이 다 그렇다고 했다. 무어 그리 아쉬울 것도, 무어 그리 애달파할 것도, 무어 그리 찾을 것도 없다고 했다. 물레를 돌리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물레방아 밑을 수없이 찾으면서도 그것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산다.모르니 산다. 알면 어찌 살겠는가.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고, 언제 떠날지 모르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산다. 그냥 산다. 대충 산다. 살
“검찰개혁 문제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첫째는 검찰과 손잡지 않는, 검찰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정권이 있어야 하겠죠. 두 번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계획을 가지고 실행할 수 있는 법무부 장관 같은 경우는 법무부 장관이 그걸 시행하게 되면 검찰에서 법무부 장관 뒤를 캘 가능성이 있거든요. 소문으로 흔들어서 이 사람을 낙마시킬 수도 있는 그런 조직이라 봅니다. 그래서 아주 강골인 사람 깨끗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이 들고요, 그다음에 정권 초반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정권 후반 되면 또 다음
한 때는 막걸리로 살았다. 편의점에 천원만 내면 하루 2통씩 공급됐는데 “조금만 줄이시죠 교수님.” “교수님은 아이고오. 그것 비슷하기는 한데... 교수는 아임미더” “그러면 어디서 퇴직하셨는지요.” “말공장인 거는 비슷함미더.” “하여튼 선생님. 조금만 줄이셔요. 매상 안올려 주셔도 괜찮아요.” “낮에 한 통 밤에 한 통. 그 정도는 지불해야 경제가 최소한 돌아가지 않겠심미카.” “그래도 가끔은 건강도 생각하셔야죠. 담배도 줄이시구요.” “살 만큼 살다 가모 그걸로 족하지 하루 더 산들 좋은 세상 본다는 보장 엄따 아임미카.” “
1. 지난 1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퇴하면서 약 2개월여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어놓은 이른바 ‘조국 사태’가 막을 내렸다. 지난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고,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를 거쳐 장관직에 임명된 뒤 35일이 지난 시점이다. 조국을 둘러싼 집권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은 이 기간 동안 정치, 경제, 안보 등 한국 사회 모든 분야의 이슈들을 빨아들인 ‘메가톤급 블랙홀’이었다.조국을 교두보로 삼아 검찰개혁을 추진하려는 집권세력-대통령 문재인과 민주당 등 당정청-과 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최인훈 선생이 선지자 자격으로 말씀하셨던 ‘광장’은 신분에 관계없이 주인이 되는 장이었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모여서 동질감을 느끼며, 누구도 억압받지 않는 공간. 그게 광장이었다. 광장은 밀실의 대척점에 있는, 도달할 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으며 자유의 표상이었으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유토피아였다. 그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에 드디어 우리는 도달했다.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외형적으로 우리는 유토피아에 도달했다. 일방의 전유물
다른 주제를 고르고 싶었지만, 조국 법무부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와 검찰개혁 주제를 모르는 듯 그냥 넘기기가 힘들어 한마디 보탠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윤석열과 검찰이 조국 가족에 대한 수사를 멈춤 없이 끝까지 잘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아마도 그것은 누가 걱정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리라 본다. 그리고 수사 결과 조국이 알았든 몰랐든 상관없이, 정경심이 사모펀드를 운용한 실질적인 주인이고, 국가 정책 사업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관련 회사에 투자해 수익을 올린 혐의가 입증된다면 조국은 법무부 장관직 사임은 물론 처벌을
지리산을 타고 내려온 덕천강은 덕유산에서 넘어온 경호강과 만나 진양호서 잠시 머물러 서로 어루만지다 이윽고 삼계 다리 아래로 흘러 바다에 안긴다. 더위의 시작은 진양호 ‘물’공원 너머 삼계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면 시작되는 진양호반의 배롱나무로부터다. 호수의 시작점인 그곳에서 대평을 돌아 오미에 이르기까지 호반을 감고 늘어선 이 나무의 수효가 무려 수천 그루라. 배롱나무는 한 번에 피고 지는 여느 꽃과는 달리 초하부터 무려 석 달 열흘에 걸쳐 꽃을 피워내는데 온갖 화초가 다 말라 죽는 혹서의 땡볕일수록 더욱 눈부신 선홍빛을 드러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게 있다. 나보다 현저히 없어 보이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일단은 나보다 아래로 보되 약간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내가 가진 것 가운데 당장은 필요 없고 지니기에도 버거운, 가장 값싼 그 무엇을 던져주는 행위의 동인(動因)을 일컫는 말이다.수오지심 시비지심 사양지심과 함께 인간이 인간일 최소한의 조건으로 이를 사단(四端)이라는 이름으로 맹자는 정의했지만 정작 측은지심을 제 때에 필요하게 작동하는 이는 자고(自古)로 드물다. 따라서 인간도 드물다. 아울러 인생의 긴 기간에 지치지 않고 이를 마음에 담아두는 이
과거제를 처음으로 시행한 고려 광종은 아마 우리 역사에서 별 볼 일 없는 가문의 자제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린 최초의 왕이자 대책 없는 사람이었지 싶다. 수많은 선비들에게 정책의 책임은 지지 않은 까닭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 또는 기성사회로 들어가는 관문은 비좁았는데 글 읽은 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이 과거(科擧) 하나로 정해져 있었던 조선조까지 세월이 흐를수록 그 폐단은 참혹을 더했다. 글 읽는 사람이 집안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머지 식구들은 그야말로 희망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2-30년 전까지 틈틈이 불리었던 노래 ‘엽전
동대문구 창신동 ‘언덕 위의 검은 집’. 산비탈 루핑이 너덜거리는 골목길에서 6살 어린이는 노래를 부르며 뛰어놀았다. “네가 좋으면 내가 싫고 내가 좋으면 네가 싫고... 비 오는 날이면 공(空)치는 날이고 달 밝은 날이면 별 따러 간다. 에헤야 데헤야 에헤야 데헤야 에에에에 에에에에 헤야... 네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콕콕 찔렀지 내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콕콕 찔렀나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더 좋더라 에헤야 데헤야 에헤야 데헤야...”(블루벨즈, 열두냥짜리인생) 그 땐 그랬지.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내용의
아베의 “안 팔겠다”에 그럼 “안 사겠다”로 시중의 여론이 형성되자 우선 불매운동에 대한 부정적 된소리가 안팎에서 일었다. “일본 기업들의 한국 매출 비중이 낮으니 해봤자 효과도 없다.”라거나 저쪽도 우리 물건을 안 사겠다 맞불 놓으면 우리 농산물 경작자들의 피해는 어쩌누 라든지 “그런 편협하고 극단적인 국수주의적 발상으로 어찌 글로벌 시대를 꾸려가겠는가” 등의 훈장질까지 다양한 논리가 동원된다.그러나 정작 우리 청년들을 자극한 한마디는 유니클로 일본 본부 간부라는 자의 “한국 불매 운동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특별히
요즘처럼 더위에 부대끼던 74년 여름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철거민들이 모여 가쁜 숨 내쉬던 부산시 사하구 어느 동네 어느 지저분한 골목에서 웃통을 벗어부친 40대 초반의 남자 어른과 꾀죄죄한 몸뻬의 30대 후반 여자 어른이 마치 오늘 당장 세상이 끝나기라도 할 듯 큰 소리로 싸우고 있었다. 몇몇 동네 어른과 까무잡잡 땅꼬마들이 이제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각자 할 일에 몰두하고 있어서 어쩌면 싸우는 소리가 갈수록 더 커져가기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7평 판잣집 텁텁한 방에서 영어단어 외우기에 몰두하던 나는
오랜 세월 지나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그 옛날 일일일식(一日一食)을 자식들에게 철저하게 가르치신 거였다. 돌멩이도 삭일 나이의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아침 한 끼만 차려주셨다. 나머지는 알아서 먹든지 말든지 하라는 건지, 내일 아침까지 참으라는 건지 매우 헷갈렸다. 옥수수 급식빵이 무슨 까닭인지 배달되지 않은 날 학교가 파한 뒤 오뉴월 땡볕을 무릅쓰고 돌아온 집에는 일 나가신 어머니는 당연히 안 계셨고 삶은 보리가 망태기에 담겨 저 높은 시렁에 걸려 있었다.물론 동생과 나는 거기에 손이 닿을 수 있었다. 내가 엎드리고 동생이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