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지나 봄으로 가는 길. 묵은 겨울을 털어내고 봄을 보고 싶었다. 지나온 세월의 더께만큼 넉넉한 풍경이 품어주는 공간에서 느긋하게 즐기고 싶었다. 봄 햇살을 길동무 삼아 3월 12일, 천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 산청군 단성면 남사예담촌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다가 나오는 첫 번째 삼거리에서 입석‧청계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시각도 멈춘 듯 천천히 흘러가는 마을을 지났다. 승용차로 10분 정도 들어가면 입석리가 나온다. 입석리는 입석(선돌)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입석마을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
바람이 차다 못해 살을 엔다. 잠바 뒤편에 있는 모자로 머리를 푹 덮어도 차가운 바람을 제대로 막지 못한다. 그런 추위에 2월 5일, 진주시 수곡면으로 떠났다. 가는 동안 만난 진양호 덕분에 마음은 차분해졌다. 지나온 일상들을 가는 동안 곱게 접어두었다. 수곡면사무소 가기 전 요산마을이 나온다.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晋州妙嚴寺址三層石塔)’ 이정표를 보고 차를 세웠다. 마을 경로당 앞에는 어르신들이 의지하면서 함께 온 보행기들이 기다리며 나란히 서 있다. 300여m를 들어가면 10여 채의 주택 사이로 우뚝 솟은 탑이 보인다. 탑
점수 주기 위한 ‘점수 자판기’로 알았다. 누워서 떡 먹다 체할까 도덕 과목은 공부하지 않아도 점수는 많이 나왔다. 한 때는 도덕 과목을 만만하게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안다.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얼마나 어려운지를. 조선시대 도덕 교과서와 같았던 『소학(小學)』을 실천하며 살았던 진짜 ‘소학군자’가 있었다. 소학군자를 찾으러 매서운 바람이 불었던 2월 5일에 차를 몰았다. 진주~하동 국도를 따라가다 진양호를 가로지르는 진수대교를 건너 수곡면 사무소를 지나 산청군 단성면 쪽으로 향하다 대각마을에서 멈췄다. 진주 시내에서 승용차
희망이 넘치는 1월이다. 지난 해보다 더 나은 한 해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고 싶어진다. 지나온 세월의 두께만큼 넉넉한 인심으로 품어주는 공간에서 느긋한 여유 속에 몸을 맡겨보고 싶었다. 1월 5일,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어슬렁거리며 시간 사치를 누리며 평화를 얻었다. 평화 너머 의를 실천한 이들을 만났다. 삼가면 소재지로 들어가는 삼가회전교차로에 서면 어디로 갈지 고민이 생긴다. 대구와 합천 가는 길은 물론이고 합천호 관광지 25km를 비롯해 창의사, 황매산군립공원, 해인사, 오도산자연휴양림, 합천박물관, 이주홍어린이문학
2666대 1. 올해 중국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해 9급 국가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에 17만 명이 몰려 역대 최다 응시인원 신기록을 이뤘다. 나 역시 아이들의 장래 희망과 자질을 고려하지 않고 ‘밥벌이’ 수단으로 아이들에게 슬며시 권했다. 부끄럽다. 부끄러운 마음을 씻고자 1월 5일, 임금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 1501~1572) 선생을 뵈러 경남 합천 삼가로 향했다. 진주에서 합천으로 가는 국도 33호선을 타고 가다 의령군 대의면 대의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인근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外
눈이 내렸다. 솜털 눈이 내렸다. 11월 21일, 산청군 단성면 목화 최초 재배지 앞에 차를 세우고 바라보는 풍경은 따뜻한 겨울이다. 목화 최초 재배지 기념관 앞 목화밭은 팝콘을 터뜨린 듯 환한 목화꽃이 세상을 하얗게 만든다.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하다. 솜털을 입은 듯 따뜻한 기분으로 기념관을 들어섰다. 온통 별들이 땅에 내려왔다. 익어가는 가을 따라 하늘의 별을 닮은 단풍나무 잎들이 카펫처럼 펼쳐진다. 잠시 별들 속에서 지내다 나왔다. 기념관을 나와 인도를 따라 옆으로 따라가다 산청특산물 판매장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차장
고슬고슬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머리를 맑게 한다. 덩달아 걸음을 바삐 옮길 수 없었다. 진주시 금산면 ‘금호지’보다는 ‘금산연못’이 더 친근한 나는 11월 20일, 걷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걸었다. ‘금호지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연못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질정화용 부레옥잠도 갈색빛을 띄우고 잠들었다. 주차장 한 쪽에 인근에서 농사지은 채소 등을 팔려고 나온 아주머니들이 햇살을 등지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외상도 받아준다는 무인판매대에 이르자 진주 정씨 재실인 계양제로 해서 월아산 국사봉으로 가는 길과 연못가 둘레길이
가을이 왔다. 무더운 지난 여름날에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낙엽과 함께 감성도 쌓여간다. 무르익은 가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너무 먼 대상으로 여겨지는 미술 작품의 세계 속으로 길을 나서보라고. 10월 18일 진주시립 연암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진주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이성자의 예술과 삶’ 시간 속에 문신과 이성자 미술관을 가는 탐방시간이 있었다. 하늘은 비라도 내려칠 듯 꿉꿉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길 나서는 시간만큼은 날씨와 상관없다. 연암도서관에서 출발한 버스는
‘진주에 가면’ 막차를 타고 싶다는 이광석 시인의 시처럼 ‘아침이슬보다 더 고운 진주여행’은 지금 절정이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 어화 등등(燈燈) 불 밝혀 온통 붉다. 10월 10일 진주 시민의 날 저녁에 진주성 건너편 망경동 주택가에 차를 세우고 남강으로 걸었다. 촉석루 정면을 바라보는 중앙광장에 이르자 곳곳에는 노랫가락과 함께 정다운 이야기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난다. 간이좌탁을 펼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지만 붉게 물든 강은 훌륭한 안줏거리다. 해학과 풍자의 거리라고 적힌 대숲은 이미 지역 오광대 등이 여기저기 대나무와 어우러져
기다림은 길었다. 드디어 기다린 날이 왔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간절히 빌어야 무엇이 있다면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으로 가볼 일이다. 나 역시 간절한 바람을 안고 음력 3월 3일(3월 30일) 명석면으로 떠났다. 진주에서 산청으로 가는 국도 3호선에서 명석면사무소 이정표를 따라 들어갔다. 명석면 사무소 앞에 세워진 내 간절한 바람을 닮은 주인공이 먼저 반긴다. 우는 돌, 명석(鳴石)이라는 유래를 간직한 자웅석(雌雄石)을 닮은 돌이지만 지날 때 마음속으로 빌었다. 지금은 남양 홍씨 재실로 사용하는 광제서원이 나온다. 서원은 처음에는 홍
낯설다. 3월 10일 초행길이라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길을 찾지만, 못내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사천 곤명면 곤명중학교 지나 하동 옥종면 쪽으로 향하자 ‘고성산 동학로’라는 도로명 주소가 곳곳에 나온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북방마을 못 미쳐 이정표가 나온다. 가파른 길이지만 다행히 시멘트 포장길이라 승용차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5분 정도 올라가자 우뚝 솟은 탑이 나온다. ‘동학혁명군 위령탑’이다. 횃불 모양의 탑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나를 내려다본다. 탑 아래에는 천도교의 둥글고 붉은 표시가
‘공부에도 때가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은 스물여덟에 고향 합천 삼가에서 아버지 삼년 상을 치른 뒤 경남 의령 자굴산 절에서 학문에 정진했다고 한다. 공부는 젊은 시절을 놓쳐버리면 기초를 쌓기 어렵다고 여겨 산으로 들어가 공부했다고 한다.남명 조식의 발자취를 따라서 - 의령 자굴산과 명경대 햇살 좋은 3월 11일,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의령의 진산(鎭山)인 자굴산을 찾았다. 자굴산은 합천 쪽에서는 병풍처럼 보이지만 의령읍을 향해서는 산세는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변한다. 칠곡면 소재지에서 산 쪽으로 들어가면 내조리 내조마을이 나온다.
두툼한 겨울 잠바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봄 냄새 맡아보라는 봄바람의 권유에 햇살이 드는 자리로 3월 5일, 봄 마중을 떠났다.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 중심가를 벗어나 웅석봉 쪽으로 들어가다 멈췄다. 산청청소년수련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 건너편으로 걸었다. 붓 끝을 닮았다는 필봉산(筆峯山)이 보이는 곳에 송귀준 시인의 시 ‘필봉산’이 돌에 새겨져 있다.‘(전략)남명 선생의 단성소/ 필봉산이 가져다/ 쓰셨을 거다/ 목숨은 하늘에 걸어두고/~’ 시 한 구절 읽을 때마다 필봉산 한 번 바
봄이다. 발걸음도 가볍다. 2월 26일, 살포시 숨어 있는 봄의 숨결을 찾아 경남 함양군 병곡면 휴천마을로 아내와 봄마중 나섰다.옛 88고속도로가 지났던 휴천마을로 들어섰다 휴촌(休村)마을은 조선 시대 세조 때 세종대왕의 12번째 왕자인 한남군이 엄천골에 유폐 당해 가다가 하룻밤 머물고 쉬어갔다고 해서 둔터, 쉼터라고 했다. 이것을 한자로 휴촌이라 부른다고 한다. 휴천마을 들머리에 함양 선비 9명이 풍류와 시를 즐겼다는 등구정(登九亭)이 있다. 1932년송평과 휴촌 선비들이 건립했다. 등구정 앞 넓은 운동장은 1931년 등구정 계원
햇살 좋았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제98주년 삼일절. 우리 가족은 이른 점심을 먹고 경남 진주교육지원청으로 향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진주지역 기림상인 ‘평화 기림상’이 이날 오후 2시 제막되기 때문이다.시민 4200여 명 7800만원 모아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평화기림상' 진주교육지원청 앞마당에 세워 오후 1시쯤 도착하자 벌써 식전행사로 꽃길 퍼포먼스를 곁들여 길놀이가 시작이었다. ‘진주는 우리나라 소년운동 발상지’라는 표지석과 함께 소년운동에 앞장선 우촌 강영호 선생의 흉상이 반기는 진주
고성 옥천사와 장산숲바쁜 아이들은 집이 좋단다. 2월 19일, 게임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을 두고 아내와 단둘이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 건지 묻는 아내에게 고성 옥천사로 바람 쐬러 가자 말했다. 옥천사를 들러 정작 아내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달달한 말 한마디 건네기 위해. 경남 진주에서 문산읍을 거쳐 고성군 영오방향으로 가다 영오천을 건넜다. 옥천교에서 2km가량 더 연화산으로 가면 신라 때 만든 옥천사가 있다. 일주문을 지나 좀 더 올라가면 사천왕문이 나온다. 돌계단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간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바람이 불었다. 겨울이 저만치 가면서 자신을 잊지말 라고 흔적을 남긴다. 바람이 세차게 분 날이다. 겨울을 기억하기 위해 바람이 이끄는 대로 2월 10일, 길을 따라 들어갔다. 거울같이 맑은 경호강을 가로지르는 내리교를 지났다.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웅석봉(熊石峰)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자 바람은 멈춘 듯 고요하다. 지당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다 세진교(洗塵橋) 창건비 앞에서 멈췄다. 창건비 맞은편 길 아래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햇살에 물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넓적한 바위가 나온다. 바위에 세진교라 새겨져 있다.
궁금했다. 오가며 보는 저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어떤 모습일지. 2월 15일 당직 휴식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답답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궁금증도 풀고 시원한 풍경을 찾아 경남 산청군 산청읍 성우아파트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꽃봉산에 올랐다. 돌계단을 올라가는데 벌써 저만치에서 반가운 봄소식을 전하는 ‘봄까치꽃’이 반긴다. ‘개불알풀꽃’이라는 거시기한 이름보단 ‘봄까치꽃’이 정겹다. 녀석의 연보랏빛 응원에 힘입어 거의 일직선에 가까운 가파른 길을 올랐다. 숨이 가쁘다. 10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쉬고 싶다. 조그만 고개 하나
겨울은 길을 타고 바람과 함께 들어온다. 절로 움츠러든다. 봄에 들어섰다 믿었다가 이런 낭패가 없다. 길 너머 봄을 향해 가는 내 마음을 멈추게 막지 못한다. 2월 9일,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볕은 따뜻해 길을 따라 산으로 갔다.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 청소년수련관을 지나 경호강을 건너 산으로 들어갔다. 산청 지곡사터를 알리는 곳을 지나자 최근 만들어진 지곡사가 나온다. 지곡사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웅석봉군립공원으로 들어가다 갈림길이 나온다. 심적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오른편으로 올라갔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옆
대전-통영 고속도로 산청휴게소,숨겨진 명소를 찾아라이제 곧 시들어버린 겨울이 샘을 냈다. 바람이 세찼다. 아마도 겨울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싶은 모양이다. 찬바람에도 바로 지금 떠나도 좋을 곳은 많다. 2월 9일, 이날도 쉼 없이 바람을 가르며 차들이 고속도로를 쌩쌩 달린다. 대전-통영고속도로 산청휴게소(상·하)는 쉼 없는 우리에게 찬바람마저 감미로운 풍경과 볼거리를 안겨준다. (상·하남방향) 산청휴게소에는 ‘구암 허준테마공원’이 자동판매기 옆으로 있다. 작지만 그곳에 담은 볼거리를 산청을 오롯이 담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과 산청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