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면 브람스의 곡들을 떠올리게 된다.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는 생애 동안 독신으로 살며 스승 로베르트 슈만의 미망인을 평생 마음에 품고 있었다 한다. 그 슬픔이 배어든 것일까? 사람들은 가을의 쓸쓸한 정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곡가로 브람스를 꼽는다.브람스는 네 개의 교향곡과 수많은 곡들을 남겼는데 나 역시 가을만 되면 길바닥에 서걱이는 낙엽을 생각하며 네 번째 교향곡을 자주 듣는다. 세 번째 교향곡의 세 번째 악장은 또 어떤가? 마치 낙엽 쌓인 공원에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홀로 산책하는 느낌이랄까? 이렇듯 브람
봉곡 로터리에 형형색색의 조명을 넣은 분수대가 세워졌다. 명색이 화단이라 했어도 수년째 켜켜이 먼지 뒤집어쓰고 누더기처럼 웅크리고 있던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꽃나무를 걷어내고 모양지게 잔디도 새로 깔고 조경석도 본때 있게 배치했다. 게다가 두 길도 넘는 높이의 분수에서 갖가지 모양으로 물까지 내뿜으니 우중충하고 썰렁하던 주변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시내 나갈 일 있으면 역부로 봉곡동 쪽으로 차머리를 돌려 공연히 한 바퀴 로터리를 동그라미 친다. 늙숙한 이들은 흑백사진의 아련한 추상에 빠지기 맞춤하고 새파란 이들 눈길 또한 끌기에
사람 몸에는 물이 70%인데 사람이 가진 것 가운데는 플라스틱이 70%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니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들을 떠나서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다. 눈으로 먼저 판단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눈은 언제나 옳다고 할 수 없다. 더러 눈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가 하면,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도 있다. 보기에는 시원찮고 투박해 보여도 보기와는 달리 실속이 있는 경우에
학도(學徒)는 무엇을 이루려 공부하는 사람이다. 학자(學者)는 일정한 단계를 이룬 뒤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하려 애쓰는 사람이다. 아울러 그 길을 일관되게 가는 사람이다. 학도와 학자를 같은 뜻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겸손한 사람은 학도라며 자신을 낮추고 자신 있는 사람은 자신을 학자라 칭하며 은연중 자신을 학도와 구분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실 두 단어가 같은 뜻이라는 데에 통시적으로는 나도 동의한다. 서두에 설명이 이처럼 늘어지는 건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어떤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학도와 학자를 구분하는 방식이 유효할 듯싶어서이다.
항해하던 선박이 조난을 당해 다섯 명만 간신히 살아남게 됐다. 하지만 구명정 승선 인원이 두 명 뿐이라서 세 명은 배에서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살아남을 두 명을 가려낼 방법은 수백 가지가 될 것이다. 키 큰 순으로 할 수도 있고, 몸무게 순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험문제를 풀어 가장 많이 맞힌 두 명을 골라 낼 수도 있고, 성별을 따지거나 외모, 국적 또는 성정체성을 따져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 행실을 따져서 인기투표를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조율을 한답시고, 시험
10월이면 유등축제를 시작으로 개천예술제가 열린다. 진주시민 중 1인으로서 느끼지만 축제라 해서 특별히 설레거나 어디를 가고 싶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다. 다만 교통체증의 안 좋은 기억만 떠올릴 뿐이다.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변함없는 프로그램과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위생 상태와 국적을 알 수 없는 먹거리 장터의 현금거래 음식판매 전쟁. 먼지투성이 속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고기와 술을 즐기고, 무분별한 흡연과 노상방뇨, 남강 물에 그대로 버려지는 오폐수, 항상 길게 늘어서 있는 여자화장실의 불편함과 발 딛기가 무서울 정도의 이동
단디뉴스의 "술딴지"는 한 달에 한 번 쓰고 있다. 약속을 따로 정한 것은 아니지만 원고마감은 보통 매달 10일쯤으로 주말에 담당자에게 넘긴다. 격렬하게 돈을 벌지 않는 삶을 표방하며 조그만 술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영세자영업자에게 월말은 늘 두렵고 살 떨리는 시기이다. 월세, 공과금, 거래처 물품대금. 매달 갚아 나가는 채무까지 해결해야 하는 일은 늘 어렵고 머리 아프다.몇자 되지도 않는 글을 한 달에 한 번 쓰는 것이 뭐 그리 어렵냐 할수도 있겠지만 글의 주제가 화수분처럼 늘 샘솟는 직업 글쟁이도 아니고 여유롭게 미리 갈무리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어둑해진 아파트 앞 길가에 탑차 한 대가 뒷문을 열어제낀 채 서있다. 그 옆에는 뿔테안경을 쓴 깡마른 체격의 오십대 초중반의 아저씨가 허리를 숙이고 박스더미들을 정리하고 있다. 한 손으로는 연신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다른 한손으로 바쁘게 물건들을 분류한다. 짐을 나르다가 전화를 받고는 ‘감사합니다’와 ‘죄송합니다’를 연발한다. 길고 무더웠던 지난 여름 내내 아저씨는 땀에 젖은 런닝셔츠를 걸친 채 같은 모습으로 일을 했다.운전을 하다 보면 무리하게 차 앞으로 끼어들어 곡예하듯 달리는 오토바이를 만날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일 서울 인사동 마루갤러리에서 열린『시민포럼 2019, 다음 100년, 새로운 상상. 지평을 그리다』에서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불평등 문제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기본소득 제도의 한계 등에 관해 논했다. 김 교수의 양해를 구해 2부에 걸쳐 당시 발표문을 싣는다.관련기사 : “불평등에서 경제민주주의로, 그리고 소유권의 재편으로”[1] 낡고도 새로운 문제틀: 불평등에서 경제민주주의로앞의 논의가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또는 도입이 점차
유전자의 입장에서 개체의 존재 이유는 유전자의 불멸을 보장하는 것이다. 결국 개체의 존재 이유는 번식하여 후손을 남기는 것이다. 후손을 남기려면 ‘자연선택’되어 생존할 수 있어야하고 ‘성선택’되어 생식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므로 유전자는 우리 신체의 품질을 생식가능연령 까지는 보증(해야) 한다.하지만 그 이후의 품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생식을 통한 번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품질보증 기간이 지난 이후의 신체 변화가 노화다. 유전자 입장에서는 품질보증이 안 된 노후한 개체보다는 품질이 보증된 젊은 개체를 통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일 서울 인사동 마루갤러리에서 열린『시민포럼 2019, 다음 100년, 새로운 상상. 지평을 그리다』에서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불평등 문제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기본소득 제도의 한계 등에 관해 논했다. 김 교수의 양해를 구해 2부에 걸쳐 당시 발표문을 싣는다. ‘불평등’이라는 문제틀경제적인 측면에서 오늘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순적 성격은 ‘불평등’이라는 한 단어로 흔히 요약되는 것 같다. 주류, 비주류
경상대와 경남과기대의 통합 문제로 찬·반의견이 분분하다. 통합 문제의 정답은 무엇일까? 먼저 두 가지 사례에서 힌트를 찾아보자.경남지역 소재 대학출신 10명을 선발하는 2013학년도 경상대 의학전문대학원(MEET) 지역전형 선발에서 합격자가 미달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왜일까?당시 지원자격으로 텝스 651점 이상, MEET성적 백분위 40점 이상 이라는 조건이 있었는데, 이 시험을 준비했던 학생들 일부가 이벽을 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이 전형은 경상대 학생들만의 리그로 알려졌는데도 말이다. 다음
얼마 전 TV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국정감사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는데, 질의하는 한 국회의원 옆자리에 여성 전신 인형이 조신하게(?)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안경을 쓴 모습은 더 가관이었다. 이 인형은 섹스토이로 분류되는 리얼돌이라는 것이었는데, 그 이미지를 좀 완화 시키려는 의도였을까?리얼돌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것은 세관에서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통관을 보류한 것에 대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국민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2심의 논리를 채택해 수입을 허용하면서부터이다. 이에
러시아 음악엔 항상 우수가 배어 있다. 심지어 흥겨워야 할 왈츠에서조차 그 짙은 우수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쇼스타코비치(D. Shostakovich)의 누구나 다 아는 그 유명한 왈츠도 그렇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쓰이기도 했고 그 외 수 많은 영화에서 쓰였으니 다들 알 것이다. 오늘 소개할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y Rachmaninov)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 또한 예외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수만 있는 건 아니다. 환희의 감동도 함께 한다. 내가 이 곡을 처음 듣게 된 건 1989년이었으니 거의 30년
돌고 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나간다고 했다. 하루가 쉬우면 다음은 어려운 법. 하루 먹으면 다음 하루는 굶는 법.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그리 하면 죽을 때가 온다고 했다. 세상이 다 그렇다고 했다. 무어 그리 아쉬울 것도, 무어 그리 애달파할 것도, 무어 그리 찾을 것도 없다고 했다. 물레를 돌리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물레방아 밑을 수없이 찾으면서도 그것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산다.모르니 산다. 알면 어찌 살겠는가.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고, 언제 떠날지 모르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산다. 그냥 산다. 대충 산다. 살
16살 스웨덴 소녀가 UN에서 한 연설이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소형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2주 만에 건너 8월 28일 뉴욕에 도착했다. 소녀는 9월 23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소녀의 이름은 크레타 툰베리! 지난해부터 어른들에게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며 금요일마다 ‘등교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학생이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오르면서 툰베리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 소녀의 연설 몇 대목을 함께 들어 보자.“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위에 올라와 있으면 안 돼요. 저는 대
모든 주스는 인스턴트 식품이다. 인스턴트 식품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간단히 조리할 수 있고, 이미 물리적 화학적 변형을 가하여 저장, 휴대, 섭취가 편리하도록 한 가공식품을 말한다.''라고 되어있다. 굳이 말하자면 주스는 식재료에 물리적 변형을 가한 인스턴트 식품이다.요즘 상품화된 주스는 설탕이나 소금 또는 MSG 등을 첨가하여 맛과 향을 증진시켜 상품성을 높인다. 상품성을 높인다는 것은 결국 식재료를 변형하고 무언가를 첨가하여 많이 먹고 많이 마시게 한다는 것이다.오렌지 쥬스를 생각해보자. 예전에
“검찰개혁 문제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첫째는 검찰과 손잡지 않는, 검찰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정권이 있어야 하겠죠. 두 번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계획을 가지고 실행할 수 있는 법무부 장관 같은 경우는 법무부 장관이 그걸 시행하게 되면 검찰에서 법무부 장관 뒤를 캘 가능성이 있거든요. 소문으로 흔들어서 이 사람을 낙마시킬 수도 있는 그런 조직이라 봅니다. 그래서 아주 강골인 사람 깨끗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이 들고요, 그다음에 정권 초반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정권 후반 되면 또 다음
한 때는 막걸리로 살았다. 편의점에 천원만 내면 하루 2통씩 공급됐는데 “조금만 줄이시죠 교수님.” “교수님은 아이고오. 그것 비슷하기는 한데... 교수는 아임미더” “그러면 어디서 퇴직하셨는지요.” “말공장인 거는 비슷함미더.” “하여튼 선생님. 조금만 줄이셔요. 매상 안올려 주셔도 괜찮아요.” “낮에 한 통 밤에 한 통. 그 정도는 지불해야 경제가 최소한 돌아가지 않겠심미카.” “그래도 가끔은 건강도 생각하셔야죠. 담배도 줄이시구요.” “살 만큼 살다 가모 그걸로 족하지 하루 더 산들 좋은 세상 본다는 보장 엄따 아임미카.” “
1. 지난 1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퇴하면서 약 2개월여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어놓은 이른바 ‘조국 사태’가 막을 내렸다. 지난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고,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를 거쳐 장관직에 임명된 뒤 35일이 지난 시점이다. 조국을 둘러싼 집권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은 이 기간 동안 정치, 경제, 안보 등 한국 사회 모든 분야의 이슈들을 빨아들인 ‘메가톤급 블랙홀’이었다.조국을 교두보로 삼아 검찰개혁을 추진하려는 집권세력-대통령 문재인과 민주당 등 당정청-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