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냉면은 해산물, 쇠고기, 지리산 산채 등으로 만든 고급 육수와 화려한 고명의 메밀국수(였)다. 오늘날은 국수하면 당연히 밀면이다. 밀이 아닌 경우 특별하게 메밀국수, 칡국수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밀가루는 귀한 것이어서 쉽게 접할 수 없었다. 그때는 국수하면 당연히 메밀국수를 의미했다. 냉면에 대한 글들을 보면 ''예전에는 잠자기 전에 배가 출출하면 꼭 냉면으로 배를 채우고 난 뒤에야 잠이 들었다''거나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넣지 않고" 라는 표현 등이 나온다. 서민들이 편하게 즐기던 음식이란 셈이다. 하지만 쇠고기, 해산물 등을
백종원 김밥 / 임성용 편의점 김밥을 고르는데 백종원 김밥이 눈에 띄었다.조리 모자에 위생복을 입고 내 김밥 드시라고 엄지척 한다. 음식 장사로 성공한 백종원은 유명 요리사다.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골목 식당 주인들에게 호통을 친다.이래가지고 장사가 되겠어?나는 그 말이 이래가지고 나처럼 성공하겠어, 라는 말로 들렸다. 새벽, 치킨집 오토바이 한 대가 교차로에 들어섰다,직진 신호가 바뀌면서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왔다.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날아올랐다.통닭이 죽고 오토바이가 죽었다. 누구도 백종원이 될 수 없다. 임성용 시집
세상에는 많고 많은 반장이 있습니다. 생애 최초로 만나는 학급 반장에서부터 방송반, 군대의 내무반장, 일터의 작업반장은 물론이고 농사작목반도 반장이 있습니다. OO반으로 나누는 모든 단위의 책임자는 반장이라고 하니까요. 대관절 반장의 지위와 역할은 무엇이던가요? 아마도 각 단위에서 설정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그 반을 대표해서 거의 모든 것을 감당하는 직위일 수도 있고, 그저 한갓진 감투에 불과한 자리인 경우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책임만큼 수고롭고 영예로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마을에도 반장이 있다는 것 아시지요? 법정리는 물론이고
현재 우리의 주요 이동 수단은 도로, 철도 등의 육상교통과 하늘을 잇는 항공교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통이 발달하기 전 우리의 주요 교통수단은 한강, 낙동강, 대동강, 금강 같은 큰 강을 통해 내륙으로 들어가는 수로와 연안 포구를 중심으로 하는 해운교통이었다. 따라서 대부분 큰 도시의 배후에는 관문 역할을 하는 나루와 항구가 발달하였다. 서울의 관문인 인천을 비롯해 북경의 천진, 도쿄의 요코하마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경남도청의 소재지였던 진주는 육로교통의 오지였다. 따라서 개항 후 바닷길을 통한 관문역할의 항구가 자연스럽게
어느 해부터 4월과 5월이면 눈부신 봄이라는 설렘과 함께 가슴 한 구석에 마음 아픈 역사의 순간들이 떠올라 기분이 묘해진다. 오늘은 내가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하던 30년도 더 된 어느 날 만나게 된 음악을 골랐다. 내가 산 최초의 CD가 아닌가 하는 어렴풋한 기억이 있는 브루노 발터의 지휘반 모차르트 교향곡 제 40번 G단조이다. 그 이후로는 카세트테이프로 카를 뵘의 가장 유명한 연주를 많이 들었다.그러다 전경 제대하고 부산에서 우연히 산 CD가 Enterprise라는 듣보잡 해적판이었는데 세르지우 첼리비다케가 지휘한 슈투트가르
필자가 사는 곳은 진해에서도 신시가지까지는 20분 이상, 구도심까지는 거의 30분이 넘게 걸리는 변두리, 용원이라는 곳이다. 벚꽃 찬란한 구도심을 보통 진해의 전부인 양 여기는데, 진해는 해안선을 따라 나지막한 산들을 거느린 채, 거제를 비롯한 다도해 섬들과 나란히 대거리하며 들쑥날쑥 오밀조밀 조막만한 포구들을 품고 여기, 부산 바로 옆, 용원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바다고장이다. 아니, ‘였다’라고 써야 맞겠다. 진해에서도 변두리인 여기가 요즘 소위 ‘핫한’ 동네가 되었다. 진해 최초의 고속도로 진출입로가 생기고, 김해 장유, 부산
메밀국수인 냉면이 유래한 지역은 평양과 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인 듯하다. 많은 자료들이 거기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평양과는 거리가 먼 한반도의 남쪽 진주가 '평양냉면'과 함께 '진주냉면'이라는 고유성을 획득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역적 차별을 극복하고 중앙에 진출하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공통점과 중앙에서 거리가 먼 변방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두 지역이 접대문화, 교방문화, 기생문화를 발달시킨 것과 관련이 있다. 이들 문화와 교방음식 국수가 만나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의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조선의 멸망으
나는 학교에서 거의 내 삶의 전부를 보내고 있다. 학생으로, 교사로 살아오면서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소통(疏通)’이다. 의사소통의 준말이다. 의사가 서로 잘 교환되고 있으며 그것이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을 의미한다. 참 좋은 말이다. 아마도 2010년 전후로 일부 세력(인터넷 커뮤니티 및 인터넷 미디어 등에서)들이 '소통'이라는 구호를 사회 여기저기에 들이밀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점은 이 ‘소통’이라는 단어가 매우 빠른 속도로 교조화되는 바람에 '소통'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즉시
Music “수수한 영국 뮤지션의 유토피아 같은 음악”마크 노플러는 영국 뮤지션이다. 그는 훌륭한 작곡가 이전에 탁월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한데, 자신의 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1978년 히트곡 ‘Sultans Of Swing’을 통해 그는 뮤지션 겸 기타리스트로서 역량을 아낌없이 증명했다.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1980년작 [Making Movies]에 수록된 ‘Tunnel Of Love’와 ‘Romeo And Juliet’을 지나 밴드의 정점으로 기록된 [Brothers In Arms](1985)를 발매해 ‘Money For Not
진주 초전동 소재 어느 공동주택의 청소노동자가 휴게 공간이 없어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다는 진주시민의 SNS 글을 진주시청 누리집 게시판에 올려봤다. 공동주택 휴게공간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진주시는 이에 『공동주택관리법』에 별도규정이 없어 현황 파악 및 실태조사에 어려움이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답변했다. 고용노동부에서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적용과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등의 업무를 하고 있으니 참고해 달라고도 했다.경남의 다른 지자체는 공동주택 노동자의 노동
진주는 러일전쟁 후 일본인이 대거 이주하면서 전통도시로서의 기능을 눈에 띄게 상실해 갔다. 대표적인 변화는 임진왜란 이후 경상우병영의 군사방어시설이었던 진주성벽의 훼철(毁撤)과 대사지(大寺池)의 매립이다. 초기 진주 이주 일본인들은 주로 외성 북문 밖에서 약제, 도기, 석유, 맥면(麥麵) 등의 장사를 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생활공간과 가까운 대안동 대사지의 동쪽 일부분이 우선 매립되어 대지가 조성되었다. 대안동 매립지는 1907년 조선권업주식회사 진주지점에서 공사를 시작하여 1912년 1차 완공되었다. 훼철된 진주성 북쪽 성벽의 토
인간의 생활방식은 수렵채집에서 정착농경으로의 전환에 의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식물의 재배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재배식물 밀의 발생과 재배 지역은 두 개의 강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여기서 서쪽 방향 이집트, 지중해로 퍼져 나아가며 밀은 '빵'이 되었고, 동쪽 방향 중앙아시아로 퍼져 나아가며 '국수'가 되었다. 그 국수는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 북부에 도착해 중국 북부의 음식문화를 꽃피었다. 이렇게 쌀은 중국 남부의 주식이 되고 밀은 중국 북부의 주식이 된다. 다시 밀의 국수문화는 그
잦은 비로 논밭일을 쉴 때가 많은 이즈음에 마실갔다 집으로 오니 웬 선물상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마른미역 한 봉지와 쇠고기가 들어있었습니다. 뭘까 생각해보니, 축협에서 남편 생일이라고 기념선물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우리 지역은 몇 해 전부터 축협조합원 생일에는 쇠고기미역국 선물세트 배송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겨우내 지겹게 먹던 굴미역국 대신 오랜만에 쇠고기미역국을 끓여 먹으려니 기분이 살짝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그럼 난 뭐야? 나도 가끔 소한테 사료를 주기도 하고, 눈도 맞추고, 부산물 나오면
벚꽃 지기 딱 한끗 전일 때 / 신휘 사는 일 자신없어그만 손 놓고 싶은 심정일 때벚꽃 구경 한번 가 봐라 사람들 다 찾는 한창 때 말고좀 늦었다 싶을 때속는 셈치고 혼자 가 보고 와라 벚꽃은 혼자 힘으로 버티다버티다,더는 어쩌지 못할 때아니,그 손 놓기 딱 한끗 전일때가장 아름답다 우리 사는 일도 어쩜 저 마지막 벚꽃들처럼누군가 몸 흔들어 떨어질 때보다더는 어쩌지 못해스스로 손 놓고 일어설 때아니,그 손 놓기 딱 한끗 전일 때가장 아름답지 않겠느냐 사는 일 자신 없어그만 손 털고 싶은 심정일 땐벚꽃 구경 한번 가 봐라 포기하는 순
봄에 물이 올랐다. 내가 들은 수많은 음악들 중 봄에 관한 음악들을 한참이나 찾았지만 이전에 연재한 음악을 빼고 나니 소개할 만큼 아는 음악이 없어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꼭 봄 음악이 아니라도 되겠다 싶어 이제야 하나 골랐다. 오늘 고른 음악은 학교 음악 시간에 들은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중 한 사람인, 본업은 화학자였던 알렉산드르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공』 중의 ‘폴로베츠인의 춤’이다. 이 곡을 알게 된 건 1994년 나온 대우자동차 아카디아의 광고를 통해서였다. 고급차를 광고하며 뭔가 강력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선 영상미도
ON HUMAN NATURE(인간 본성에 대하여), ANT HILL(개미 언덕) 등의 책을 저술한 애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 1929 ~)이 그의 책에서 사용한 ‘Consilience’라는 단어를 초대 국립생태원장이 된 최재천 교수가 ‘통섭’이라는 말로 번역하면서 우리 사회에 ‘통섭’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Consilience’는 라틴어에서 유래하는데 ‘Consiliere’(英, jumping together, 함께 이리저리 뜀, 즉 이곳과 저곳을 자유롭게 넘나듦)을 뜻하는 단어가 이
3월이 또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묘하게 바로 앞 달인 2월은 쌀쌀한 겨울이란 느낌이 남아있는데 하루 차이로 3월은 설레는 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비단 날씨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3이라는 숫자가 왠지 따스하다. 3, 5, 7로 나가는 인원, 술병 숫자도 이 때문인 듯싶다. 게다가 3월은 뭔가 첫 날부터 열정적이다. 일제치하 그 격렬했던 3.1운동을 기념하는 휴일로 시작하기에 마음마저 데워진 탓일까?그러한 3월인데, 들려오는 소식들은 차갑고 갑갑하기만 하다. 많은 소식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군사주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전
최근 후배가 페이스북에서 '진주냉면' 이야기를 꺼냈다. 관심 있는 주제라 지나간 다큐멘터리 와 음식 관련 책, 면과 냉면에 관한 글들을 찾아봤다. 그러던 중 진주에 '논개시장'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에 '누들로드'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주니까 가능한 일이다. 물론 가보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국수나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의 사전적 의미는 밀가루나 메밀가루 등을 반죽하여 얇게 밀어서 가늘게 썰거나 국수틀로 가늘게 뺀 것 또는 이것으로 만든 음식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밀가루가 흔했기 때문에 '면'하면 당
* 이글은 철저하게 학교내신을 포함한 입시영어에 초점을 맞춘 내용으로 입시제도, 한국의 교육 시스템 나아가 교육가치 전반에 관한 관점이 아님을 밝혀둔다. 우리 아이들의 영어공부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만 최종목적지(finish-line)는 동일하다. 고등학교 영어 1등급. 고등학교 첫 시험, 고1 모의고사에서 70점(3등급) 이상이 몇 명인지 알고 있을까? 한 반에 평균 3~4명이다. 그리고 절반이상은 50점 이하이다.요즘 어릴 때부터 영어공부를 하지 않는 친구는 없다. 초등학교부터(빠르면 영어유치원부터) 1
1편에서 밝혔듯이 일본인의 진주 정착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 개전까지 미약하게 증가하던 일본인의 진주 이주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에는 이주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1913년 무렵 2,300여 명의 일본인이 진주에 거주하게 되었다. 1910년 무렵 진주 중심지에 해당하는 진주면의 인구가 1만 명 정도였음을 감안한다면, 무려 진주면 인구의 1/4 정도가 일본인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이는 경성, 부산, 대구를 비롯해 1914년 부(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