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전을 부치다 / 신혜경 달전을 부칩니다신혼 때부터 즐겨 먹던 것입니다애호박을 썰어 부친 것을 달전이라 합니다달처럼 둥글다고 해서지요비탈진 언덕 호박꽃 같은 신혼집에서벌처럼 붕붕 대며늦은 저녁과 함께 부쳐 먹곤 했습니다남편은 달전을 먹으며호박처럼 둥글둥글 살아가자고 했습니다보름달처럼 환하게 살자고도 했습니다달덩이 같다는 말은 때때로 뚱똥하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는데내 얼굴이 보름달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어둡고 험한 삶의 언덕 더듬더듬 넘을 때마다달전 부쳐놓고 남편을 기다립니다하늘이 달을 띄워 밤길 열어주듯 밥상 가득 달을 띄웁니다
시골 실업계 고등학교와 농촌 인문계 고교를 거쳐 2017년 인구 40만의 중·소도시 시내 인문계 고교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면서, 교사로서 참으로 생경스런 풍경을 자주 목격했다. 이를테면 이런 일들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학기 중에 ‘공로상’을 준단다. 이유인즉 고3학생들이 학년말이 끝나고 공로상을 받으면 대학 수시 전형에 불리하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란다. 형평을 맞춰야하기 때문에 1, 2학년은 1학기 말에 ‘공로상’을 받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공로상’은 말 그대로 1년 동안 학급 및 학교에 공로가 있는 학생을 시상하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한일병합조약을 발표했지만 조선총독부의 업무 준비는 완전히 갖춰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제는 약 1개월이 경과한 9월 30일 ‘조선총독부 및 소속 관서 관제’를 공포하고 10월 1일부터 이 조약을 시행했다. 아울러 지방제도도‘조선총독부 지방관 관제’에 따라 통일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을 13도로 나눈 ‘도제’는 그대로 유지되나, 도의 최고 직인 ‘관찰사’의 칭호는 ‘도장관’으로 바꾸고 각 도에는 장관관방과 내무부·재무부를 둔다. 둘째, 도 이하 12부 317군 지역은 일제강점 이전
행복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고르라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선택하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렇게 사랑의 기쁨과 먹는 즐거움의 합이 행복의 크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이 떠난 자리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찾기도 하고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맛의 쾌감에 마음을 맡기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을 갈망하고 맛을 추구하며 음식에 중독되기도 한다. 먹는 즐거움과 사랑의 기쁨은 서로를 보완하고 위로한다. 하지만 충분한 보완과 완벽한 대체는 없다. 생존과 생
이번엔 흔히 가곡의 왕이라 부르는 슈베르트의 노래들을 골랐다.최근에 풍월당에서 펴낸 책 슈베르트 평전을 읽었다.내가 좋아하는 작곡가이기도 하고 그의 일생이 궁금하던 차에 선물까지 받게 됐으니 비록 아주 두꺼운 책이지만 그의 일생을 알아가는 것이 즐겁기도 했다.이 두꺼운 평전과는 반대로 그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건 음악사에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짧은 생(1797~1828)을 살면서도 9개의 교향곡과 15개의 현악 4중주곡 그리고 21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남겼다.이 곡의 수로만 보면 정말 초인적인 능력이 아니었나 싶기도
진주시 금곡면 밀알영농조합에서 만든 앉은뱅이 밀국수 세 봉지, 밀가루 두 봉지를 샀다. 아니 열혈농부 김영미 때문에 의무감에 샀다고 봐야 겠다.농식품박람회, 책보따리 행사, 각종 문화 행사 등 안 가는 곳이 없는 그이 발걸음 따라 다니며 눈여겨 봤던 이름은 당연히 앉은뱅이밀이었다.마트에서 가끔 사먹던 하얀 국수와 어떻게 다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어릴 때 먹던 그 국수 맛일까 하는 마음이 더 컸다.국수 맛을 볼 때는 끼미에 멸치육수를 끼얹어 완벽한 상태에서 보는 게 아니라 끓인 국수를 찬물에 헹굴 때 먼저 맛보는 그 찰나를 놓치
가끔 생각한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은 과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만 남긴 채 정직하게 늙어갔을까? 라는 의심이 그 생각거리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거짓말은 늑대에게 득이 되었는데, 만약 양치기 소년이 그 득을 늑대와 은밀히 나누는 내부자였다면? 혹은 늑대를 잡기 위해 가버린 사람들의 빈집을 노리는 도둑과 한패였다면? 일반적이거나 대중적인 생각은 아니다. 그래서 소수의 생각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개연성은 충분하다. 인간은 부정적 신호에 민감하다고 한다.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부정적인 신호를 빨리 알아차리고 기피하는 개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추억이 뭐냐고 물으면 단연코 참깨 수확이라고 말하렵니다. 지난 3일부터 근 보름 넘게 온통 참깨 농사에 매달렸습니다. 폭염이 한창 기승을 부렸던 시기였지요. 그때는 인격을 유지하며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아침저녁의 짧은 그 시간뿐인지라 그동안에 참깨를 베고 털고 말리고 키질을 하느라 영혼이 가출하는 듯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넘길라치면 땀이 비 오듯 해서 더는 움직이기조차 어려웠습니다. 확실히 기후위기가 맞다고, 어떻게 이렇게 더울 수가 있냐고 투덜대면서도 꾸역꾸역 일했습니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농사일을 할 때
결혼해서 생활고로 정신없이 살던 어느 초겨울, 단지 어머니가 보고 싶단 생각에 입던 옷 그대로 작은 애를 둘러업고, 딸애는 걸리고 해서 친정집에 간 적 있다. 반가워하면서도 어머니는 대문 밖을 흘끔거리며 지나다니는 사람 없는지 살피신다.“아이고! 이년아, 친정에 오려면 옷이나 좀 번듯하게 차려입고 얼굴에 화장품도 찍어 바르고 와야지 꼬락서니가 이기 머꼬? 동네 챙피하게"애들에 대한 신경 잠시 끊고, 차려주는 밥 배불리 먹고 낮잠을 잘 수 있는 곳, 동네 창피하지 않게 곱게 화장하고 예쁜 옷 차려입고 가고 싶은 친정집이 이제 없다.
일제강점기 진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업가는 진주조면공장과 조선 각지에 정미소를 운영한 시미즈 사타로(淸水佐太郞)였다. 그러나 시미즈 외에도 양조와 장류를 제조한 장미상점(長尾商店)과 토목·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죽본조(竹本組)는 진주에 본사를 두고 전국적인 기업으로 발전한 회사들이다. 우선 장미상점은 시내로 들어오는 천전리 나루터 언덕에 터를 잡고 1913년 일본식 전통 소주를 제조하는 장미주조장으로 출발했다. 처음 주조장을 설립한 나가오 쵸노스케(長尾長之助)는 카가와현(香川縣) 기타군(木田郡) 출신으로 1913년 진주에 건너와 주조
교육부 표현 그대로 ‘교육 회복’을 위한 백화점식 정책이 망라되어 있는 듯 보인다. 일단 문건 작성을 하신 공무원들의 노고에 찬사를 전하고 싶다. 진심이다.대체로 계획은 언제나 거창하고 멋지다. 하지만 실행을 위한 방법이나 구체적 내용은 현실이다. 현실은 매우 구차하고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따라서 아이러니하지만 거창하고 멋진 계획일수록 현실에서는 실패할 확률도 높아진다. 안타깝게도 계획서 어디에도 현장에서 움직이는 교사의 목소리가 없다. 이 모든 계획의 실행 주체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사람은 현장 교사가 아니던가?대한민국
풀뿌리 민주주의는 소수 엘리트 정치인이 다수 민중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를 멀리하고, 평범한 시민들이 지역사회나 마을공동체의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를 함으로써 지역 공동체와 실생활을 변화시키려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특히 풀뿌리 민주주의는 자치와 분권을 통해 민주주의의 부족함을 채운다. 지역주민들이 지자체 예산 편성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예다. 점점 풀뿌리 민주주의, 즉 주민의 자치와 참여가 중시되고 강화되는 이유는 대의제의 한계와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현재의
음식이란 본래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이다. 맛이나 영양은 그다음의 일이다. 쌀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한반도 북부, 그나마 농사가 가능했던 메밀에서 녹말을 뽑아 만든 음식이 메밀국수였다. 메밀국수의 녹말은 쌀과 밀이 귀한 지역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칼로리 공급원이었다.사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국수는 맛과 영양에 문제가 많은 음식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한 칼로리 공급이 주된 목적인 국수사리는 맛도 없는 탄수화물 편중의 영양 불균형 식재료이다. 그래서 맛과 영양 균형을 위해 육수와 고명이 더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육수에 목숨(?)을
Music "90년대 한국 록 아이콘, 강산에가 추억하는 '할아버지'"강산에를 보면 소설 '임꺽정'과 '장길산'이 떠오른다. 너털웃음 같은 창법, '할많하않' 따위 무시하는 꼿꼿한 직설, 남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움, 타오르는 정의감, 무엇보다 바람같은 활기와 바위같은 '깡'에서 그렇다.강산에는 노래 소재를 잘 찾는 뮤지션이다. 남들은 허투루 보아 넘길 수도 있는 연어의 모습에서 그는 힘찬 인생의 심줄을 본다. 때론 분단의 현실과 부친의 사연에서 '...라구요' 같은 가슴 찡한 이야기를 캐내기도 하고, '삐딱하게' '태극기' '공부
여전히 날씨가 덥다.지난해엔 장마가 너무 길어 힘들었다면 올해는 잠깐 스쳐지나간 장마 이후 불볕더위가 연일 지속되는 바람에 또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다.여름 피서지 하면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가 아마도 시원한 폭포가 아닌가 싶다.그래서 오늘은 시원한, 그것도 폭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관련된 음악을 한번 골라봤다.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은 음악사에 길이 남을 첼로 협주곡을 남겼는데 첼로 협주곡 Op.104번이다.드보르작은 이미 알다시피 최고의 걸작을 미국의 내셔널 음악원장으로 재직 중인 1892년에서 189
1994년 11월 처음 농촌으로 왔을 때,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녀 어른들의 지병이 조금 달랐습니다. 남성들은 주로 술이나 담배로 인한 간이나 폐 등의 질환이 많았고, 여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무릎 등 근골격 질환 등의 고통을 많이 호소하셨습니다. 더 나이 든 분 중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분들이 간혹 있어서 집에서 환자를 돌보느라 온 가족이 고생한다는 얘기들을 종종 듣고 보았습니다. 정확히 27년 후의 지금 농촌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뇌졸중 걸린 어른들은 집에서 모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술 담배를 하는 사람
어떤 현대스포츠든지 대부분 상당한 국가와 자본의 지원과 같은 기반이 갖춰지지 않으면 육성내지 유지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돈 많은 나라가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에서 강세를 보인다. 국제경기를 보면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뒷맛이 씁쓸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올림픽은 씁쓸한 뒷맛의 종합세트라 하겠다.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의 순위권은 소위 좀 산다는 나라들이 싹쓸이 중이다. 대부분의 올림픽 종목은 사회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으면 접근이 불가능한 시설 스포츠다. 우리나라에 박태환 같은
맨날 그럽니다 / 김용만소양에 온 지 삼 년오늘은 꼭 책상에 앉아야지하다가도 또 호미 들고 나섭니다맨날 그럽니다누구는 시집이 다섯 권 째고소설집을 내고무슨 상을 받았다 자랑들 해쌓지만나는 밭이 열 개 아닌가꽃 키우며 수백 마리 벌, 나비와저 앞산 끌어안고살지 않는가 그러다가도뭐 부럽기는 조금 합니다뒤란 화단에 흙을 붓다앞산을 보니잎 떨군 가지마다햇살 눈부십니다저리 홀가분하게 사는 것도괜찮을 듯합니다 *** 나는 이 시가 참 좋다. 평범하게 욕심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 놓은 시다.나는 장례식장에 근무한다. 눈만 뜨
1901년 시작되어 1905년 러일전쟁 승리 후 급격하게 증가한 일본인 이주와 외래 상품의 유입으로 진주의 상권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선진적으로 진주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통감부 시기를 거쳐 약 10여 년간 축적된 자금을 바탕으로 대규모 자본가로 성장하게 된다.통감 정치가 시작된 1906년 이후 진주에 진출한 기업은 본사를 외지에 둔 지점 형태의 회사들이었다. 한국권업주식회사 진주지점(1906년)과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1906년) 진주지점, 경남맥료(합) 진주지점(1914)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1910년대가 되
Music “전자음악, 자연과 음식을 만나다”'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월간 만화지 '애프터눈'에 2002년부터 3년간 연재한 작품이다. 주인공 이치코가 고향인 도호쿠로 돌아와 산나물, 채소 등으로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는 게 기본 줄거리로, 이는 이와테현 오슈시에서 겪은 작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실제 만화에 나오는 요리들 역시 대부분 작가가 만들어본 것들이다.'리틀 포레스트'는 일본과 한국에서 영화로도 나왔다. '중력 피에로', '뱀의 사람'을 연출한 모리 준이치가 메가폰을 잡은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