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섬과 별 다름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벼랑가에 얼마쯤 포전이 있고, 언덕배기에 대부분의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지세다.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 배경에서 통영은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집들이 먼저 그려지는 동양의 나폴리라는 별칭을 안고 있는 도시. 충무 자개와 소반, 통영갓, 통영누비, 통영꿀빵. 바닷가이니 해산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문학, 미술, 음악이 고루 다 갖추어진 도시. 거기에 조선수군의 위용을 가진 역사적인
[편집자 주] 진주지역 청년들(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이 지난해 12월부터 1월말까지 진주중앙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 작은 책자를 펴냈다. 책자 이름은 ‘시장, 추억을 쌓다’이다. 총 8편의 기록을 단디뉴스가 기사화한다. 젊은 청년들의 눈에 중앙시장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옛날부터 진주 장시는 면포, 종이 등 수공업품 생산지로서 지위가 높았다. 그 가운데 종이를 활발히 유통했던 ‘진주 중앙지업사’는 1950년대부터 68년 정도 운영되고 있다. 할아버지에서 친정어머니를 거쳐 조현숙 아지매까지.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
‘오늘 품삯 받는다. 퇴근할 때 족발 하나 사오너라. 실상사 앞 한생명에 들러 서하 좋아할 만한 라면도 좀 사고.’ 오후 쉴참을 먹고 아들께 문자를 보냈다. 내가 처한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려면 어떻게든 판을 만들어야 했다. 엊그제 읍내에 나가 자목련과 백목련을 한 그루씩 사와서 심어준 것으로 아내의 켕긴 마음을 풀어주기에는 많이 모자란 듯했다. “이번엔 여행은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혼기념일 저녁이었다. 밥상을 앞에 놓고 아내가 중얼거렸다. “우짜노, 할 수 없지.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내 목소리엔 피곤함과 짜증이
[편집자 주] 진주지역 청년들(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이 지난해 12월부터 1월말까지 진주중앙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 작은 책자를 펴냈다. 책자 이름은 ‘시장, 추억을 쌓다’이다. 총 8편의 기록을 단디뉴스가 기사화한다. 젊은 청년들의 눈에 중앙시장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진주중앙유등시장에서 30년간 ‘쌀’이라는 품목 하나로 자리를 지켜온 문보금 아지매. 중앙시장만큼이나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켰다. 중앙시장 청년 기록단의 한 명으로 아지매의 시간을 기록하고자, 선봉 쌀 상회를 찾았다.“집에 남편이 도매업으로 쌀장사를
‘언제나 사랑해’ 가끔 아들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마지막에 적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다. 솔직히 나는 아들을 ‘언제나’ 사랑하는 것 같진 않다. 특히 아들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거나 주변을 배려하지 않고 행동할 때, 해야 할 일을 미룰 때, 내 속에서는 불기둥이 솟구친다. 흔히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고 하지만 화가 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분노의 화염 방사기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사랑은 이미 잿더미가 된다.아들이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갔다. 청포도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산 청포도가 3알 남았는데 그것을 10
서하가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세상 밖으로 첫발을 내딛은 셈이다. 아침시간이 급하게 돌아간다. 밥 먹는 시간도 많이 당겨졌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뭐하고 놀았대?” “친구들과는 잘 어울려 지내고?” “오늘 간식은 뭐 나왔대? 잘 먹기는 하고?” 가족이 모인 저녁밥상 앞에서는 온통 서하 어린이집 얘기였다. 혼자 집에만 있다 또래의 아이들을 만났으니 무슨 장난을 하는지, 여전히 잘 웃는지,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하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우리 집으로부터 10km도 더 떨어져 있다.“아버님이세요
설 가까워지면 생각난다. 추워지면 더욱 그리워진다. 진주 시내에서 합천, 의령 방향으로 가려면 넘는 말티고개가 바로 그곳이다. 봉황의 동쪽날개에 해당한다. 진주의 진산(鎭山)인 비봉산은 진주를 봉황이 날개를 크게 펼쳐 에워싼 형상을 한다. 서쪽 날개가 두고개와 당산재이고, 동쪽날개가 말티고개와 선학산이다. 이 고개에는 모진 매를 맞다가 죽은 나막신쟁이에 관한 설화가 깃들어 있다. 찾은 날은 설을 며칠 앞둔 1월 27일이었다. 1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도 지났는데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시내에서 말티고개로 넘어가는 옥봉삼거리에
“이젠 술을 끊든지 해야겠어.” 그렇게 말해놓고 고작 사흘 만에 술독에 빠진 꼴을 보이기 일쑤였다. “얼마간이라도 술을 끊어야지.” 그렇게 다짐하건만 그 얼마간은 결코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몸이 전 같지 않아. 술을 좀 줄여야겠어.” 한 자리서 석 잔 더는 마시지 않을 거라는 약속은 하루에 무너졌다. 무엇을 탓해야할까. 아내는 내 의지 탓이라지만 열다섯 해 동안 피워오던 담배는 단박에 끊어버렸었다. 담배 끊는 사람은 독한 사람이니 가급적 피하라 하지 않던가. 그만큼 나는 독한 사람이었다.술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분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아들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것인가, 원고 약속을 지킬 것인가. 내 안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면 별거 아니야, 그게 뭐 대수라고’ ‘그래도 아들이 나중에 알면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넌 그 소심증이 문제야. 침소봉대가 어째 갈수록 더 커지냐. 겨우 티끌 같은 문제라니까.’ ‘티끌? 요즘 미세먼지가 암보다 무섭다는 거 몰라? 가뜩이나 예민한 나인데~’ ‘그래서 어쩌라고, 커서는 이미 저만큼 가 있는데!’겨울방학동안 아들에게 두 가지 큰 일이 있었다. 하나는 그동안
마당에 내려서자 새벽 별자리는 어느새 봄. 이제 곧 아침이 오고, 세상은 새로운 모습을 내 앞에 펼쳐놓겠지. 내년부터 받는 걸로 알고 있던 국민연금을 올해부터 받게 된다는 사실을 엊그제 알았다. 삼월이 생월이니 사월부터 매달 꼬박꼬박 받게 된다. 이 살림살이에 오십만 원은 큰돈이다. 그것도 내년부터 받을 걸로 알고 있었는데 올해부터로 한 해가 당겨졌으니 일 년 동안 공돈처럼 받게 된 셈이다.“이십 년 된 저 냉장고부터 바꾸자.” 그런 사실을 알고 아내와 맨 처음 나눈 말이 이랬다. 오래 되어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웅웅거리는 소리
방학동안 아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 베스트 3를 자체 선정했다. 3위는 “밥 다 먹었니?” 평소에도 행동이 굼뜬 녀석은 방학을 맞아 대놓고 꾸물거린다. 특히 밥상 앞에서 멍 때리기가 특기인데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씩 웃으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엄마, 블리자드가 요즘 너무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거 같아요.” 그럴 때 같이 맞장구 칠 수 있는 건덕지라도 있다면 모자간의 대화가 계속 이어질텐데. 아쉽게도 그 분야는 내가 아는 바가 없다. 다음 말을 기다려줄 여유도 없다. 어서 밥 차려주고 일하러 가야한다. 그렇다고 면전
“돈은 쥐고 있으면 구린내가 나고, 쓰면 향기가 난다” 진주에서 한약방을 해온 김장하 선생님 말씀이다. ‘병자의 돈을 벌어 자신을 위해 써서는 안 된다’는 삶의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진주 살 때 한없는 존경심으로 선생님을 만났었고, 그 삶의 언저리라도 밟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키웠었다.진주에서 오래 전부터 함께 환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모임이 한 달에 한번 있는데, 이번 모임은 김장하 선생님 생일축하잔치에서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벌써 팔순인가? 팔순쯤 되니 잔치판을 벌이는 게 아닐까하는 마음으로 진주로 향했다. 지리산
오후에 밭을 둘러보러 나갔다. 겨울답지 않은 날씨다. 건너편 콩밭엔 거두지 못한 허수아비가 드문드문 서서 빈 밭을 지키고 있었다. 검불 사이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 날아오르고, 따라 나온 꽃분이가 컹컹 짖었다. 참 한가로운 시간이었다.얼었다 녹았다를 거치면서 겉잎이 말라버린 시금치 속잎은 고라니가 다 뜯어먹었다. 따뜻한 겨울날씨에 웃자란 양파와 마늘이 걱정이다. 아직은 푸릇한 봄동이 설렘을 준다. ‘대한 지나면 얼어 죽을 일 없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대한이 낼모레니 겨울도 고비를 넘어선 것 같다.고추 심을 밭이나마 늘려보려 했지만
진주 나들이를 계획하며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남강과 진주성, 논개 등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떨까? 바로 진주성 내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을 찾으면 옛날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진주 도심 속에 있는 진주성은 접근이 쉽다. 정문에 해당하는 공북문을 들어서면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이 우리를 반긴다. 진주성을 에둘러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며 성곽을 따라 걸으면 당시의 총통들이 화약에 불을 붙이면 바로 적들을 향해 날아갈 듯 서 있다. 총통 전시물을 지나 2018년 11월 말, 10년 만에 재단장한 국립진주박물관
희망을 나누는 1월이다.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한 해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고 싶을 때이기도 하다. 단숨에 산정에 올라 탁 트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진주 도심에 있다. 선학산 전망대가 바로 그곳이다.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오전 6시 40분. 말티고개 봉황교 아래에 차를 세웠다. 비봉산과 선학산을 연결하는 봉황교에 올라 진주 시내를 바라보자 까만 도화지 속에 먼지가 내려앉은 듯 드문드문 하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비봉산 쪽을 바라보자 대봉정도 조명에 의지해 존재를 드러낸다. 가로등과 달빛에 의지해 산을 올랐다. 마치 거
“뭐, 뭐라고?” “아니, 내 말이 안 들려요? 귀가 가나봐.” “당신이 말을 좀 알아듣게 해야지.” 곁에 앉은 아내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 걸핏하면 이런 모습을 보여 왔다. 특별히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씩은 못 알아듣곤 했었다. 내가 다른 생각에 열중할 때 아내가 느닷없이 말을 해와 못 알아듣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전화통화를 할 때도 ‘뭐라고? 뭐라 했는데?’라며 되묻기 일쑤였다.“당신이 뭔 말을 할 때면 자꾸 목소리가 커지는 거 같아.”
솔라시도~ 아침마다 ‘솔’에서 시작해 높은 ‘도’에서 끝이 난다. 아들을 깨우는 일. 세상 모든 일에 단계가 있듯, 녀석을 깨울 때도 내 목소리는 단계별로 레벨 업 된다. 첫 음은 평화롭게, ‘아들~일어나’ 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좀 더 소리를 가다듬어 ‘아침이야~’, 이때도 나오는 답이 정해져있다. ‘오분만요~’. 그래, 한 번에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밥상을 차리거나 이미 일어나 있는 딸의 머리를 빗겨주며 시간을 벌다가 다시 아들의 방문을 연다. ‘오분 지났어, 일어나, 눈 떠라, 어서’ 역시나 이불 안은 요지부동.잠에서 깨어
또 한 해가 저문다. 내년이면 예순 셋, 환갑진갑 다 넘긴 중늙은이가 되었다. 올해도 잘 지나갔다. 이런 산골에서 꼼지락거리며 사는 것도 일이라고 우리 가족도 이런저런 일을 더러 겪었다. 시끌벅적한 세상, 쓰지 못한 일기를 쓰듯 2018년 기억해야할 몇 가지를 적어둬야겠다. 2018년 우리 집 10대뉴스다.‘서하, 세상을 향해 말을 하다.’함께 사는 손녀 서하가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배냇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훌쩍 커서 골목길을 뛰어다닌다. 말문이 안 터져 속앓이를 했는데 어느 순간 “밥 더 줘.”라고 온전히
화개동천 벚꽃 십 리길, 겨울 칡꽃 핀다는 화개동천 가는 길, 꽃비 나리는 사월도 비켜가고 만산홍엽 그 황홀한 단풍철도 에돌아가고 우린 을씨년스럽게 밤색빛 겨울 나절을 따라 마실을 갔다. 신선이 노닌다는 옛 말을 위안 삼아 그래도 좀 낯익은 하동 포구길 끝자락 화개장터로 조잘대며 가는 시간 내내 차창 밖 날씨는 맑지 않았다.장터로 가는 길 얼마만인가, 대학 3학년 때 교지 기자로 화개장터 취재갔던 기억을 더듬어 오랜 손 때 묻은 한 척 짜리 자로 모시천을 팔던 노인, 호미, 괭이를 팔던 대장간 같은 철물점, 붓을 현란하게 놀리던 민
“그게 뭡니까?” 마실을 나가는데 이웃집 돌담 안에서 남자어른 둘이 쪼그려 앉아 무슨 일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고라니가 한 마리 걸렸네. 허허.” 골목 끝 박샌이 피 묻은 칼을 든 채 뒤돌아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가죽이 벗겨진 채로 큰 다라에 담긴 고깃덩이가 어깨 너머로 보였다.“이 놈 이거 가는골 콩밭에 콩잎 다 뜯어 먹은 놈이라.” 그의 아내가 빈 물바가지를 고깃덩이가 담긴 다라를 향해 흔들어댔다. 속이 후련하다는 투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올무에 걸려 버둥거리는 고라니의 모습이 떠올라 얼른 자리를 뜨는데 박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