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인지라 굳이 소개를 안 해도 되었지만, 여럿이 모인 자리인 만큼 각자 가지고 있는 콩알만 한 직위라도 소개하며 공적인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KF94 비말 차단 마스크를 야무지게 쓰고서 말입니다.하필 그날은 남편과 동행한 자리였는데, 진행자가 부부 중 한 명만 인사를 하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나서기를 싫어하는 남편이 외부활동이 많은 내게 양보를 했기에, 마이크를 넘겨받고서는 분위기에 맞다 싶은 몇 마디로 인사를 채웠습니다. 짧은 인사 후 진행자에게
졸업과 종업식을 마친 학교는 적막하다. 지난해 봄,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 대한 그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선생님들도 방학을 해서 계시지 않으니 학교는 그야말로 무중력 세상처럼 느껴진다.점심을 먹어야 되는데 아침부터 은근히 걱정이 된다. 워낙 외진 곳이기도 하거니와 이 코로나 상황에서 제대로 문을 연 음식점도 없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이름 있는 배달 업체도 여기까지는 손이 미치지 않으니 개별 도시락 생각도 잠시 했다. 다행히 동네 중국음식점에서 주인장이 배달해 주셔서 오늘 점심은 해결이 되었다.방학을 했으니
'먹거리'라는 표현과 '불고기'나 '비빔밥' 같은 음식이름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이기에 독특함이나 이상함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음식, 식품, 식량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에는 '먹거리' 또는 '먹을거리'가 있다. 나는 습관적으로 ‘먹거리’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짧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먹을거리’가 올바른 표현이라고 한다. 폐친 가운데 한 분은 "이오덕 선생이 살아계실 때 여러 번 제기하신, '잘못 쓰이고 있는 우리말'의 대표적인 용례로 언급하신 게 '먹거리'였
‘매몰비용’은 지출해서 회수할 수 없게 된 비용을 말한다. 이 개념에서 확장된 ‘매몰비용의 오류’는 이미 실패한 또는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에 시간, 노력, 돈 따위를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일을 의미한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지 않고 지속함으로써 누적되는 피해, 파생되는 피해를 계속 감수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누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랴’ 싶지만 의외로 현실세계에서 이런 현상은 자주 목도된다. 흔한 예로 도박꾼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본전생각 때문에 도박판을 떠나지 못하고 가산을 모조리 탕진할 때
장날 / 천지경목을 무릎 사이에 끼운시금치 파는 노파네댓 단인가 남아있다시장 한 바퀴 돌고 그 자리 오니얼굴도 얼고 손도 얼고 다라이도 얼고 삼천 원이던 시금치가 이천 원이란다막차 시간 다 됐소 떨이 좀 해주소어제 산 시금치 집에 그대로 있는데난전 장사하던 엄마 눈을 닮은 노파지갑 여는 내 옆에 서는 중년 여성 한 분아이고 애가 타네요 나도 한단 줘 보세요그녀와 나는 새파랗게 얼은 엄마를한단 씩 안고 마주 보며 웃었다이제 가볍게 막차 타시겠구나파장 직전의 장날이었다 ***** 한파가 시작되어 몹시 춥다. 난전에는 추워서 검붉어진 얼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 소통을 바란다. ‘코로나 19’라는 전염병 재난이 더 그렇게 만들었지만,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큰 몸집으로 소통의 매개 역할을 한다. 서로 마주 앉아 얘기를 해도 너의 마음을 다 알기가 쉽지 않은데, 이런 곳이 과연 창구가 될까.소통의 판을 깔아주는 것과 함께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몸집도 불어났다. 시청률과 조회 수는 바로 돈이니까. 그러니까 소통과 정보는 이제 돈으로 연결되며 바뀐다. 마주 앉아 주고받는 말(언어)로도 걸림돌
2022년 새해가 왔다. 동지도 지났으니 해는 하루하루 길어질 테지만 매서운 추위가 여전히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새해가 되면 저마다 새로운 다짐을 하듯 새해 첫 음악으로 무엇이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인간의 목소리(Les Voix Humaines)”라는 음반을 골랐다.사람들은 인간의 목소리와 비슷한 악기를 얘기할 때 “첼로”소리를 가장 먼저 꼽는다. 어떤 이는 첼로보다 약간 음역이 높은 비올라를, 또 어떤 이는 아예 관악기인 클라리넷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첼로 소리를 좋아하는 분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추천한 음반에는 첼로가
국가에 인격이 있다면, 그리고 그 인격의 의식, 양심, 감정을 상상해본다면학령인구 감소를 앞둔 국가가 “대학정원을 줄이지 않으면 재정지원을 끊겠다”고 발표할 때 마땅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럽고, 국민을 볼 면목이 없을 것 같다.교육은 백년의 큰 계획이건만,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을 설득하고 스스로 시행하려는 노력 없이 모든 책임과 부담을 각 대학에게 넘기고 채찍 들 생각밖에 하지 못하다니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이러한 상황에 놓인 대학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겠는가. 각 학과는 1-2년간의 충원율에 일희일비 할 것이고 과별로
부엌에서 쓰는 칼이 네 개 있다.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칼들이지만 날이 무디어지면 번갈아 쓰려고 항상 순서에 맞게 둔다. 음식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큰 살림도 아니지만 칼은 자주 무디어진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숫돌에 갈아준다. 숫돌에 칼 갈리는 소리를 좋아한다.어릴 때 나무하러 가면 아버지께서 숫돌에 물을 적셔가며 낫을 갈아주시곤 했는데 조선쇠낫으로 나무를 하면 비쩍 마른 참꽃대와 싸리나무 가지들이 쓱쓱 베어지는 소리에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칼가는 일이 의례가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숫돌에 칼가는 일이 드물어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절이 돌아왔습니다. 동지팥죽도 해 먹었고, 빈독에 넣어둔 홍시도 물러진 채 다 떨어져 가고, 동치미는 한창 맛이 들었습니다. 이제 통장에 공공비축미 정산대금만 들어오면 진짜 한 해가 마무리되는 셈입니다. 돈이 들어오면 이자를 해결하는 농가도 있을 테고, 아니면 농약방에 밀린 외상값을 갚아야 할까요? 농가 살림 규모가 클수록 세밑이 무섭겠지요. 암요, 올 한 해도 다들 고생하셨습니다.처음 결혼하고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 선배 언니들이 여성농민을 무급 종사자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말뜻을 몰랐습니다.
1876년 개항 이후 곡물수출이 확대되면서 농촌 내에 새로운 금융 수요를 불러일으켰다. 쌀의 주된 판매자인 지주층은 쌀 가격이 오르자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미곡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토지매입에 열중하는 한편, 소작인에게 전세를 부담시켜 지대수취량을 늘리고 곡물의 계절적 가격 차이를 이용하여 판매수익을 극대화하였다. 이렇게 축적된 자본을 토지에 재투자함으로써 지주들은 부를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반면 대다수의 농민층은 수확기에 소작료, 조세, 부채 등을 갚고 나면 수확을 하여도 1년 동안 먹을 식량조차 제대로 마련할 수
1. 머슴특정한 조직 내에서 매우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꺼리는 일이나 일의 마지막 부분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폄하의 느낌이 살짝 느껴지기도 하는 말이다. 조선 초부터 있어온 제도이기는 하지만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 타파(노비가 사라졌다)가 되면서 농촌경제의 실질적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로서 정상적인 임금 노동자의 우리식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이 단어는 대단히 정치적인 수사로 변화했다. 툭하면 머슴이라고 자칭하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가!현대에는 고용주
토요일 근무는 오후 2시까지다.식당 찾아가는 시간이 있으니 토요일 점심식사는 2시 반부터 시작된다.토요일의 늦은 점심식사는 나에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지난 한 주 동안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과 내일은 휴일이라는 해방감이 함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약간 과식하게 된다. 50대 중반인 나는 당뇨 체질이라 음식을 가려 먹는다. 쌀, 밀 같은 녹말음식을 적게 먹는다. 밥의 양은 줄이고 국수, 라면 등은 피하는 대신 다른 것을 그만큼 더 먹는다. '혈당'할 때 '당'은 '포도당'을 말한다. 포도당은 식물이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한 기사에 달린 단 하나의 댓글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이 댓글을 다수의 말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아마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일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죽도록 노력해서 좋은 대학가고, 어영부영 시간 보내다 허접한 대학 간 거 맞지 않냐’, ‘그렇게 불러주는 게 하나의 보상 아니냐, 그게 공정한 거 아니냐’ 그런 것을 공정한 보상이라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깊은 병은 입시 이후의 노력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번 명문대출신이면 영원히 패스, 지잡대 출신이면 그는 영원히 자기 능력을
살구꽃 바람에 날리고 / 도경회 이 세상에 여자 서러분 기 뭐시냐 하면내 몬사는 거 친정 몬사는 거 시집간 딸년 몬사는기라막내딸 병구완 오신 외할머니허리 기역자로 굽은 외할머니하얀 먼지 길 신작로 따라저 위뜸 외율까지 갔다가 십리 길 되돌아오셨다저만치 물러서는 끝물의 저녁 빛 비스듬히 끌고지팡이를 또닥거리며 찾아오셨다하나둘 꽃스런 등불 켜지고서러움도 그만그만해질 때까지봄마루에 앉아아득히 휘어지며 장독대에 수북수북 날리는 꽃잎살구꽃잎 바라보시다가 ***** 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외할머니가, 어머니가 생각나는 시다. 못 사는
위드코로나 한 달여 만에 일일 확진자가 오천 명대에 이르고 새로운 변이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방역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다시금 다중이용시설 이용제한과 집합금지 조처가 시행된다고 한다. 이런 노력과 고민에는 많은 박수와 찬사가 뒤따라야 할 테지만 그렇게만 상찬하기에는 새로운 방역대책에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새로운 방역대책 중 눈에 띄는 몇 가지는, 이용제한 시설 지정,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소위 백신패스 조치, 그리고 12세 이상의 청소년 백신 접종이다. 다시 모임을 제한하는 시설로는 카페, 식당 따위의
벌써 12월이다.해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음악을 뭐로 하면 좋을까 생각한다.그냥 반사적으로 베토벤의 ‘합창’을 듣지만 추운 러시아의 겨울을 느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몇 년 전 방송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설문조사한 적이 있다.당시 당당히 1위를 한 곡은 의외로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이었다.나 또한 아주 좋아하는 곡이었지만 이 곡이 1위를 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사실, 러시아의 음악은 우리 주변에 많이 들어와 있다.그도 그럴 것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은 많
Music "가황 싱어송라이터 나훈아의 사모곡 '홍시'“최홍기는 1947년 부산의 무역상 선원 집안에서 태어났다. 달리기와 태권도를 잘했던 그는 중고교 시절 야구를 좋아해 전국 대회 우승도 두 번이나 했다. 노래를 좋아한 부모님 영향이었는지 소싯적 최홍기는 부산과 경남지역 가요 경연대회에서 늘 상을 탔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66년, 작곡가 한동훈의 사무실을 드나들며 잔심부름을 하던 최홍기는 또 다른 작곡가 심형섭의 눈에 들어 곡 '내 사랑아'를 취입, 본격적인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최홍기는 이때 '나훈아'로 이름을 바꾼다.
철학에서 쓰는 말로 타자(他者)가 있다. 내가 아닌 다른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도 나를 잘 모를 때 자신도 타자가 될 수 있다. 어쨌든 내가 없으면 타자도 없다. 그런데 타자는 ~이 아닌 존재라는 부정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아무튼 철학의 타자나 타자성(他者性)을 말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정체성과도 관련 있어, 나와 다른 무엇을 통해 자신을 찾게되는 이야기는 영화에서 원재료라 할 수 있다.2011년 이후 윤재근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는, 앞에서 말한 정체성이나 타자성과는 사실 그다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혼자 사는 남성 노인들의 집에 더부살이하려는 여성 노인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온갖 집안일에 농사일까지 하며 살림을 꾸려가거나, 마을주민들과 낯이 익을 때까지 두문불출하고서 살림만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노인 돌봄 노동을 위한 재혼, 혹은 동거를 하게 된 것이고, 이는 마땅한 생활 수단이 없는 여성 노인들의 최후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자녀들이 사회성이 좋은 경우는 어머님 소리도 듣고 존중받으며 살았지만, 간혹 아버지의 재산을 어떻게 할까봐 잔뜩 경계하며 무시당하기도 했습니다.잘 살면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