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마을엔 예닐곱 명이 확진되었다. 모두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친 노인네들이었다. 이웃으로 마실 다니는 발자국소리는 끊겼다.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가끔 논밭을 나가는 이웃들은 너나없이 마스크를 꼭 끼고 다녔다.얼마 전 서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보여 손을 짚어봤더니 열이 있었다. 서하가 다니는 유치원 원생 열에 일고여덟이 확진되거나 가족 확진으로 등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덜컥 겁이 났다.“서하 열이 있네. 자가검사키트 한 번 해보지.”예감이 안 좋아 나는 얼른 마스크를 챙겨 꼈다. 할아버지라면서 하는 꼴이 너
내가 이 산골에 들어오기로 작정하고 이삿짐을 쌀 때는 나이 51살이었다. 모두들 한참 일할 나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다고 여겼고, 이후 이 산골에서 진주시내까지 통근했다. 대중교통으로 오가려니 왕복 네댓 시간이 걸렸다.아침 6시 조금 지나 2km를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나갔고,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나오는 첫차를 받아 타고 읍내 버스터미널로 가고, 거기서 진주행 버스를 탔으니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출근길 역순으로 퇴근하면 밤중이었다.그래도 나는 이 집이 좋았다. 직장을 버릴까, 이 집을 버릴까 하는 고민 끝에 나는 직장을 버렸다
봉투엔 삼십만 원이 들어있었다.지난 이틀 고사리뿌리 캐는 일에 날품을 팔고 받은 임금이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 일로 품을 팔아 춘궁기를 넘어왔다. 며칠 뒤에 또 하루 이틀 일감이 있다고 하니 그걸로 이 봄을 넘기기엔 충분할 것 같다.“김 사장. 고사리뿌리 캐는 일이 있는데 어쩔 거여.”열흘쯤 전부터 시끄러비아지매가 일꾼을 구하러 다녔다. 매년 며칠씩 다니던 고사리뿌리 캐는 날일을 지난해는 하루도 나가지 못했다. 농사가 늘었고, 가족의 만류도 심해서였다. 계속 일을 해오던 몸이라면 괜찮겠지만 겨우내 묵혀온 몸에 이른 봄 고사리뿌리
선거가 다가오면 곤혹스러웠다. 이웃들과는 정반대의 정치관을 가져서 무슨 말을 하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이웃들과 함께 사랑방에 모였어도 정치이야기를 할 수준은 아니지만 어쩌다 텔레비전 뉴스채널이라도 켰을 때면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촉촉이 봄비가 내리고, 사랑방엔 어김없이 몇몇 이웃들이 모여 있었다. 군불을 많이 넣었는지 방이 후텁지근했다. 뜨거운 곳을 좋아해서 언제나 내 자리는 정해져 있었고, 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던 아랫담 최 씨가 자리를 비켰다.“김 사장. 대관절 코로나는 어찌 되는 기요?”“아유, 오늘 읍내 확진자가 팔
올해도 표고버섯 심을 참나무 준비하는 걸 놓치고 말았다. 차일피일 미루고, 할까 말까 망설이다 세월만 보내 버렸다.산언저리를 몇 번이나 맴돌면서 몇몇 참나무를 찜해 두었지만 정작 나서지 못했다. 우리 산이 아닌 데다 마을 사람들 눈치가 보였고, 아내의 만류도 심해 나무를 자를 수 없었다. 표고버섯 심을 나무는 12월에 잘라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다 세월은 흘러 어느새 입춘(立春)이 지나 버렸다.소한 대한 지나면 나무가 활동을 시작하고, 수피에 물이 오른다. 그때는 잘라봐야 쓸모가 없다. 그렇게 늦게 자른 나무는 표고버섯 종균을 넣어두어
- 04:20잠을 깼다. 곤히 잠든 아내가 깰까봐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거실은 한기로 가득하다. 찬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내려서자 겨울별자리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천지사방이 고요하다. 입춘(立春)이 닷새도 남지 않았다.다시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내일이 설날이다. 명절이 와도 딱히 갈 곳이 없다. 명절차례를 없애고 기제사만 지내기로 한 탓에 부산 큰집에 갈 일도 없다. 이 나이에 처가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은 집 안팎을 청소하고 명절음식 만드는 아내를 도와야 한다. 해마다 그래왔듯 제사가 없어도 아
새해 들어 노인일자리 문제로 마을이 술렁인다. 지난해 노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해 월30만 원 받았던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연금소득이 꽤 되는 주민이 탈락했고, 부부가 모두 참가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은 탈락했다.그런데 이 탈락기준이 공정한 것도 아니었다. 탈락한 주민보다 더 많은 연금소득을 가진 주민이 그대로 일자리를 꿰차기도 했고, 부부가 다 참가하는 가구라고 모두 탈락하지도 않았다. 안타까운 탈락자도 있었고, 탈락했어도 누구나 수긍할 만한 사람은 탈락하지 않았다.“그 집은 떨어지면 안 되는 집인데 왜 떨어진 거야?”
저녁밥상을 물리자마자 아랫담 최 씨 내외가 찾아왔다. 소주잔을 앞에 놓았다.“김 사장. 내년에 이장 해볼 생각 없는가.”이장을 선출하는 대동회가 열흘쯤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요즘 몇몇이서 말을 맞추고 있네.”“아이고. 그게 몇몇이서 말 맞춘다고 되나요. 나는 들어온 사람인데.”“김 사장 들어온 지 십 년이 넘었잖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맘 단디 묵소.”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최 씨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맘이 영 내키지가 않았다. 주민 성향을 보나 집안을 보나 내가 당선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돈 모으는 데는 저 집 따라갈 수 없다.”시끄러비아지매 집을 두고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시끄러비아지매의 억척스러움은 정평이 나있었다. 젊은 시절 읍내에서 개최되는 군민씨름대회에서 여자부 십 년 연속 우승한 경력을 가졌으니 그 장대한 기골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그 체격으로 농사일을 하니 보통 사람 서넛 몫은 거뜬히 해치우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경운기를 몰고 마을을 누비던 그녀도 어느새 앓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프고 무릎도 안 좋아 앉았다 일어나면서 연신 끙끙댔다. 바깥양반은 무릎 아픈
개울 건너 밭에서 양파모종을 돌보고 있는데 저만치 들길 모퉁이를 돌아 아들이 손수레를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카페 마당에서 뽑은 잡초를 버리러 가져오나보다 했다.“그게 뭐야?”밭이랑 건너에서 큰소리로 물었다. 밭가에 손수레를 놓고 무엇인가를 들어내는데 불그스름한 색이 언뜻 비쳤다.“단호박. 다 썩어버렸어요.”단호박이라는 소리에 나는 헐레벌떡 손수레 쪽으로 달려나갔다. 늦은 여름 백 개가 넘는 단호박을 수확해 붉은 양파망에 넣어 저온창고에 보관한 것이었다. 양파망 한 자루에 열대여섯 개씩 넣어두었는데 대부분 허옇게 곰팡이가 피어 썩
아들 차를 타고 아내와 함께 읍내로 나가면서 언제 말을 꺼내야 하나 주저주저했다. 시각을 확인하니 그 방송작가로부터 전화 올 시간이 되어간다. 답변이야 들어보나마나 하겠지만 그래도 기대하는 마음이 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비에스 한국기행 있잖아. 거기서 작가라며 전화가 왔더라고.”“왜? 텔레비 찍자고?”“응. 이번엔 우리 집에 딱 맞는 컨셉이래. 마음 따라 발길 머무는 뭐라던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좌석에 앉은 아내가 홱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급히 말을 얼버무렸고 일렁이는 아내의 머리카락에서 벌써 찬바람이 났다
“꽝!” 바로 앞 개울 건너 길모퉁이에서 귀청을 찢어놓을 듯 총소리가 났다. 여음이 온 산골마을을 뒤흔들었다. “이게 어디서 난 소리야?” 카페에서 일하던 아들이 놀라 헐레벌떡 뛰쳐나왔다.카페 건너편 길모퉁이를 돌아 낯선 트럭 한 대가 천천히 이동하는 게 보였다. 사냥꾼인 듯했다. 오후 세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저녁나절이 되자 총소리가 났던 밭두렁 근처엔 까막까치가 떼로 날아들었다. 또랑이는 아침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녀석이 추운데 또 어디서 한뎃잠을 잤어?” 아들은 밥그릇에 한가득 사료를 부어놓고 발돋움을 하며
올해 들어 아내는 이웃에 말동무가 생겨 심심찮은 시간을 보낸다.버려진 듯 몇 년째 대문이 굳게 잠겨있던 뒷집에 주인이 지난해 귀향했다. 주인은 아내보다 두 살 많은 또래였다. 알록달록 조그만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왔는데 ‘예삐’라 불렀고,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예삐엄마’라 불렀다.그녀는 서울에서 살다 귀향했다. 읍내에서 여고를 나오고 어린 나이에 이 산골로 시집을 왔는데 농지가 많아 농사일에 매달려 살았다. 그러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이들 교육걱정에 집을 뛰쳐나가다시피 서울로 갔다고 했다.그 사이 시부모도 죽고, 몇 년 전에는
며칠째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겨울을 재촉하는 날씨다. 개울 건너 언덕바지 느티나무 잎이 구름장처럼 날렸다.양파모종 옮겨 심은 밭을 둘러보고 소나무 숲 언저리 모과나무를 살폈다. 올해는 모과가 예닐곱 개밖에 달리지 않았다. 보름이 카페에서 쓸 모과를 어디서 구하나 하는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오늘 읍내 나가?”집으로 들어서자 아내가 물었다.“안과에 가봐야지. 아무래도 가서 진료는 받아봐야지.”그제 비가 내려 바깥일을 할 수 없는 날씨여서 마음먹고 고미 털을 깎았다. 털이 너무 덥수룩하게 길어 방에 조금만 있어도 더워 숨을
동이 터오지도 않은 이른 아침부터 아내는 바쁘게 서두른다. 오늘 여행을 가는 날이다. 여행이랬자 산 너머 산내에 사는 젊은 아낙 둘과 하룻밤 자고 오는 일정이니 굳이 여행이랄 것도 없다.기껏해야 간단한 나들이 정도건만 아내는 많이 설레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는 가을옷을 하나 살까하며 망설이기도 했다. 새 옷은 끝내 사지 못했어도 기분은 무척 좋아보였다.준비에 한창인 아내를 보며 가끔 어디든지 다녀오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수십 년 만에 찾아온 시월 추위에 지붕은 허옇게 된서리가 쌓였다.두툼한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오자 골목 안
이틀째 가을비가 내렸다. 고구마를 캐려고 넝쿨 다 걷어낸 고구마밭이 밤새 걱정이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면 비가 그쳐도 사나흘은 고구마를 캘 수 없을 것이다. “비가 계속 오네.” 창밖으로 똑똑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밤새 이어지고 있었다. 새벽녘 잠에서 깨어 이런저런 걱정에 뒤척이는데 아내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고구마 캐야 하는데 이거 큰일이네”“그거야 며칠 더 말리면 되지. 그런 일로 잠도 안 자?”“걱정이 되니까 그러지. 비 그치면 추워진다는데” 걱정은 비단 고구마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며칠씩 가을비가 내리면
이랑이와 꽃분이가 대문간을 향해 마구 짖었다. 누군가 집에 찾아온 것 같아 밖으로 나가니 이장과 마을수도를 관리하는 젊은이가 마당을 기웃거리고 있었다.“아이구, 이장님께서 어쩐 일이세요.” 슬리퍼를 껴신으며 황급히 문간으로 나갔다. 수도관리 젊은이는 뭔가 장부 같은 것을 들고 이장 곁에 엉거주춤 서있었다.“아, 석봉씨. 왜 있잖아요. 우리 군에 항노화 산삼엑스포 축제하는 거.”“그렇죠. 그거 한다더만. 코로나 3단곈데 하긴 하는 건가?”“인원 통제하고, 일부는 비대면으로 한다네요. 그래서 거기 소망등을 거는데 군민 이름으로 세대별로
산언저리에 붙어있는 밭은 이런저런 잡다한 것을 심었다. 그래서 하루도 발걸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울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는데 중간에 사방댐을 만들어 물웅덩이가 커다랗게 생긴 곳이 있다. 그곳을 지날 때면 사방댐 다리 위에서 물웅덩이를 내려다보곤 한다.지난해 긴 장마에 비가 많이 내린 뒤로 물웅덩이에 피라미가 살기 시작했다. 장맛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물고기 그림자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아래쪽에선 거슬러 오를 수 없을 만큼 댐 석축이 높으니 필경 골짜기를 가득 채운 장맛비에 골짜기 위쪽에서 떠내려왔을 것이다.한 해
“석봉씨. 다음 달부터 노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하지 않을래요?” 이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농사일도 많고, 아직 예순다섯 살이 안 되어 노인이 아니라고 했다. 이장이 내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 듯해 속으로 혀를 찼다.이른 봄부터 마을 이웃들이 노인일자리사업에 동원되고 있었다. 일주일에 사흘, 하루 세 시간씩 마을 골목길 정리와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한창 밭 장만할 시기에 이웃들이 청소한답시고 집게며 빗자루 따위를 들고 골목을 몰려다니는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었다.이 산골 마을에 무슨 할 일이 그리 많다고 여덟이나 되는 이웃 농부들이 하
일주일 전 아침, 그날따라 유난히 눈꺼풀이 무거웠다. 비몽사몽으로 눈을 비비는데 안쪽에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헌데 거울을 보면 바위만한 눈곱이 달린 것 외엔 정상이었다. 기분 탓인가? 게으름에 물을 끼얹으며 세수를 하고 다시 거울을 봤다. 세월을 덮어쓴 눈두덩이가 점점 아래로 쳐져가는 게 보였다. 어제보다 눈이 작아졌다고 느끼면서 별다를 것 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눈 뜨기가 더 어려웠다. 이제는 바늘이 아니라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통증이 심해졌고 눈 주위가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눈두덩